[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반도’(연상호 감독)는 지금까지 한국 영화계 상업용 블록버스터의 스케일과 메시지를 모두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K-좀비라는 표현을 넘어선 한국 영화의 일대 약진이다. ‘부산행’의 석우가 좀비들과 사투를 벌일 즈음 정석(강동원)은 누나, 매형, 조카와 함께 홍콩행 배를 탄다.

미국이 한국의 생존자들을 홍콩으로 피신시키려는 것. 그러나 지하 객실에서 감염자 한 명이 등장해 정석의 누나와 조카 등 다수를 감염시키고, 한국의 주변국들은 이를 계기로 더 이상의 한국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4년 후 홍콩의 조폭 두목이 정석과 매형 철민(김도윤) 등 한국인 4명을 부른다.

한국에 2000만 달러가 든 트럭이 있으니 그걸 가져오면 1인당 250만 달러씩 주겠다는 것. 홍콩 주민들에게 바이러스 유포자라고 차별받으며 살던 그들은 인생역전을 노리고 지긋지긋한 한국에 다시 들어온다. 트럭을 확보하고 위성전화로 신호를 하면 인천항 인근에 정박 중인 배에 태우는 작전.

정석 등이 우여곡절 끝에 트럭을 찾은 순간 갑자기 631부대원들이 공격한다. 원래 민간인을 보호했던 이 군대는 이젠 좀비보다 사악하게 변했다. 겉으로는 서 대위(구교환)가 지도자이지만 사실은 황 중사(김민재)가 최고 권력자다. 정석이 이들에게 당할 무렵 준이(이레)와 유진(이혜원)이 구해준다.

이 자매는 엄마 민정(이정현), 자신이 유엔군과 밀접한 관계라고 주장하는 전직 군 간부 김 노인(권해효)과 함께 살고 있다. 이들은 원래 631부대원들과 함께 생활했으나 인간성을 상실한 그들에게서 이탈한 것. 정석은 빼앗긴 트럭을 되찾으면 이곳을 탈출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민정은 받아들인다.

정석과 민정은 631부대에 침투하고 준이 등은 근처에 잠복한다. 631은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축해놓고 살아가고 있다. 좀비와 민간인을 잡아 분리 사육하면서 매일 밤 그들의 생존 대결에 내기를 걸며 즐기지만 내부적으로는 식료품 공급 권한을 쥔 서 대위와 작전권을 쥔 황 중사의 갈등이 심한데.

‘레지던트 이블’의 좀비 바이러스가 엄브렐러 제약회사에서 흘러나왔듯 ‘부산행’의 그것 역시 한국의 한 바이오 공장에서 시작됐다. 631은 ‘부산행’의 좀비에 버금가는 빌런 용석보다 더 위험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조선인, 중국인, 몽골인 등을 마루타 생체실험에 이용한 일본군 731부대의 조롱이다.

외형적으로는 무차별 인간을 물어뜯는 좀비의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생존을 그리지만 내부적으로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지옥에서의 악마처럼 사악해진 인간과 도덕적인 인간 사이의 대결이다. 일반적 상업영화는 선과 악의 양쪽으로 나뉘지만 ‘반도’는 4군데로 갈라져서 더욱 재미있다.

정석 일행, 좀비, 서 대위, 황 중사다. 서 대위와 황 중사는 한 부대원이면서도 서로 협력하지 않고 반목하며 호시탐탐 상대방을 제거할 빈틈을 노린다. 631이 좀비와 민간인을 투견 기르듯 사육한다는 설정도 놀랍다. 성선설도, 성악설도 맞다. 아니 둘 다 틀리다. 적어도 여기선 경험적인 선택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은 하느님의 피조물이기에 근원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어 악을 저지를 가능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많은 죄를 짓는다는 것. 631이 처음부터 악이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변화된 환경에서 내면의 선과 악이 치열하게 다툰 끝에 악시 승리한 것뿐이다.

라이프니츠는 죄를 ‘신의 조건부’로 인식했다. 죄를 지음으로써 뉘우치고 반성하며 선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신이 미리 의지를 심어놓았다는 것인데 그건 정석이다. 4년 전 철민, 누나, 조카를 태우고 승용차를 운전하고 가는데 밖에서 민정이 어린 유진만이라도 태워달라고 애원했지만 정석은 외면했다.

난민선 객실에서 조카와 다른 승객이 물렸을 뿐 누나는 멀쩡했었다. 정석은 적극적으로 누나를 피신시키지 못했고, 누나는 변해가는 아들을 끌어안은 채 좀비들의 집단 공격을 그대로 받았다. 문밖으로 나간 정석은 문을 열고 객실로 들어가려는 철민을 막았다. 그래서 둘은 홍콩에서 등돌린 채 살았다.

정석은 꿈을 꾼다. 4년 전 그날이다. 누나가 “왜 너만 살아있어?”라고 묻는다. 철민은 정석에게 “그냥 포기했기에 너도 괴롭잖아”라고 4년 전을 추궁한다. 자신에 대한 고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타인의 희생 앞에서 정석은 “그냥 포기해서 괴로운 것. 상식적인 선택이 모두를 위한 최선”이라고 외친다.

정석은 “왜 나를 구했어?”라고 묻고 준이는 “유진이 구하자고 해서요”라고 답한다. 유진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자 “하늘나라에 계신 아빠가 힘없는 사람 도와주라고 해서요”라고 말한다. 4년 전 자신의 승용차 밖에서 피투성이인 채로 어린 딸만이라도 구해달라고 애원하던 민정의 남편의 유언이다.

칸트의 실천철학인 ‘결과를 생각할 필요 없이 이성의 가르침에 따라 옳은 행위를 하려는 의지’인 ‘선의지’다. 이 영화의 가장 큰 교훈. 김 노인은 “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라고, 유진은 “우리 가족이 있는데 왜 지옥이야?”라고 각각 말한다. 행복은 공간이 아니라 가족에 있다는 메시지다.

정석보다 세 여성의 활약이 더 두드러진 페미니즘 필름. 구교환과 김민재의 악역은 정말 소름 끼친다. 플롯, 스토리, 액션 어느 것 하나 나무랄 게 없는데 특히 카체이싱과 비주얼은 단연 압도적! 관객들이 작품성에 있어 감사해야 할 감독으로 앞줄이 봉준호라면 흥행력의 앞줄은 연상호다. 15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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