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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클랩튼: 기타의 신’, 음악은 그를, 그는 블루스를 살렸다 [유진모 칼럼]

기사승인 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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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록계엔 ‘세계 3대 기타리스트’로 분류되는 기타의 거장이 있다. 27살에 요절한 미국의 지미 헨드릭스, 그리고 영국의 제프 벡과 에릭 클랩튼이다. 헨드릭스가 세상을 떠난 후론 그 자리에 영국의 지미 페이지를 대신 넣기도 한다. 헨드릭스는 피드백 주법 등 일렉트릭 기타의 모든 테크닉을 완성했다.

또한 치아로 현을 물어뜯고, 누워서 연주하는 등 다양한 퍼포먼스로 파격의 끝을 달렸다. 벡은 ‘면도날’로 불릴 정도로 날카롭고 정확하며 실험적인 음악을 추구한다. 페이지는 레드 제플린의 불후의 명곡 ‘Stairway to heaven’의 트윈 기타에서 보듯 비교적 교과서적인 스타일이 트레이드마크다.

속사포 기타리스트라는 닉 네임으로 불릴 정도로 속도를 쪼개고 쪼갠 바로크 메틀로 잉베이 맘스틴이 유명했다면 클랩튼의 별명은 ‘Mr. Slow Hand’다. 수많은 기타리스트들이 니콜로 파가니니를 배우는 이유는 테크닉과 더불어 속주를 익히기 위함이다. 하지만 클랩튼은 느림보의 미학을 걷는다.

‘에릭 클랩튼: 기타의 신’(릴리 피니 자눅 감독)은 그런 클랩튼의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는 1945년 3월 30일 영국 리플리에서 태어났다. 미술적 재능이 뛰어났기에 킹스턴 에술학교에 입학했지만 기타를 사랑한 나머지 학업을 포기하고 일련의 밴드를 거쳐 역사적인 야드버즈를 결성한다.

그러나 날로 상업적인 색채가 짙어지는 데 실망해 65년 4월 존 메이올의 블루스 브레이커즈로 이적한다. 여기서 명실상부한 영국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인정받은 그는 이듬해 7월 탈퇴해 진저 베이커(드럼), 잭 브루스(베이스)와 함께 전설적인 트리오 크림을 결성, 영국에서 블루스의 전성기를 연다.

68년 말 고별 공연 뒤 크림을 해체한 그는 진저 베이커, 트래픽을 해체한 스티브 윈우드(키보드), 릭 그레치(베이스)와 블라인드 페이스를 결성한다. 미국과 영국에서 한 차례씩 순회공연을 하고 앨범도 한 장만 발표한 이 팀은 그러나 이름답게 맹신할 수 있는 음악성을 보여주고 1년 만에 해체한다.

70년 미국으로 간 클랩튼은 올맨브라더즈의 두에인 올맨 등과 함께 데릭 앤드 도미노즈를 결성한다. 클랩튼과 올맨의 트윈 리드기타는 록계의 전설로 남아있다. 71년 발표한 데뷔 앨범 타이틀곡인 ‘Layla’는 블루스록에서 빠질 수 없는 명곡이다. 두에인은 27살 생일을 한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난다.

1년 전 지미 헨드릭스을 잃은 데 이어 두에인을 보내는 등 여러 가지 충격으로 거의 폐인에 가까워진 클랩튼은 은퇴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다가 74년 첫 솔로 앨범 ‘461 Ocean boulevard’로 재기에 성공한다. 이때부터 그는 기타리스트보단 작곡가 겸 가수로서의 재능을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한다.

이 앨범의 히트곡 ‘I shot the sheriff’는 레게록의 효시인 밥 말리의 오리지널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그런데 클랩튼은 자신의 기타를 제2의적으로 한걸음 후퇴시키는 한편 특유의 느릿느릿하지만 끈적거리고, 폭발적이진 않지만 굉장히 감정적인 특유의 보컬로써 유니크한 가수로서 각인되게 된다.

대부분의 실력파 뮤지션들이 그랬듯 그의 성장기도 불우했다. 그는 9살 때 재혼해 이부동생들을 데리고 온 엄마 팻을 만나기 전까지 그녀가 누나였고, 외조부모가 친부모인 줄 알았다. 게다가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재혼 남편이었으니 피 한 방울 안 섞였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에릭을 매우 사랑했다.

생모를 만나기 전까지 “부모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고 자부했던 에릭은 엄마에게 “엄마라고 불러도 되냐”고 묻지만 단칼에 거절당한 뒤 삶 전체를 거짓말처럼 느끼게 된다. 또 이부동생이 자신의 기타를 밟아 네크를 부러뜨린 이후 아무도 안 믿기로 작정한다. 그 후 오직 블루스와 기타뿐.

블루스는 17세기부터 미국으로 끌려온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의 전통음악에 고통과 한의 정서를 담고 유럽 음악을 접목해 형성돼 미시시피 델타를 중심으로 유행됐다. 기타와 하모니카의 간단한 편성이던 블루스에 현지 백인들이 타악기 등의 편곡을 더해 리듬앤드블루스로 재편하며 전 세계에 퍼졌다.

클랩튼은 크림 해체 후 비틀스의 조지 해리슨과 어울리며 고독을 달래다가 그만 그의 아내 패티 보이드를 사랑하게 됐고, 그래서 명반 ‘Layla’가 탄생하게 됐다. 73년 헤로인은 끊지만 다시 알코올에 빠졌을 때 만난 로리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 코너를 위해 치료센터에 들어가 새사람으로 거듭난다.

그러나 코너는 4살 때 사망한다. 신은 클랩튼을 저주하는가, 아니면 그런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그러나 그는 기적적으로 그 고통을 이겨낸다. 이번엔 약물도 알코올도 손에 안 대고 음악으로 이겨낸다. 그는 음악이 자신을 살렸다고 술회한다. 그는 쾌활한 염세주의자인가, 우울한 낙천주의자인가?

그는 “알코올 중독 때 자살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죽게 되면 술을 못 마시게 되니까”라며 “블루스처럼 살려고 술을 마셨다”고 회고한다. 새로 결혼한 아내와의 사이에 세 딸을 두고 평안하게 살고 있는 75살의 그는 안티구아섬에 약물과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는 크로스로드 재활센터도 설립했다.

B. B. 킹에게 영감을 받아 블루스 뮤지션이 된 그가 걸은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과 더불어 유니크한 기타 테크닉이 돋보이는 음악도 풍부하게 담았다. 곡의 장르와 각 프레이즈의 분위기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피킹, 능란한 초킹, 현란한 해머링 주법, 긴박한 런 주법 등에 빠져드는 그루브! 23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유진모 ybacchus@naver.com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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