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윌 스미스와 톰 홀랜드가 목소리 연기로 호흡을 맞춰 화제가 된 애니메이션 ‘스파이 지니어스’(닉 브루노& 트로이 콴 감독)는 주인공이 그리 많지 않아 몰입도가 좋고, ‘맨 인 블랙’을 연상케 하는 스케일에 눈이 즐겁다. 14년 전 경찰인 엄마를 잃고 홀로 자란 월터는 스파이 에이전트에 입사한다.

이 조직은 전 세계를 위협하는 무기 M9어쌔신의 거래 첩보를 입수하고 최정예 요원 랜스를 일본으로 파견한다. 야쿠자 기무라는 세계 정복의 야욕을 불태우는 슈퍼 빌런 킬리언에게 어쌔신을 넘긴다. 그러나 랜스는 수많은 야쿠자를 물리치고 킬리언으로부터 어쌔신이 든 가방을 탈취해 복귀한다.

본부에서 가방을 연 젠킨스 국장은 경악한다. 어쌔신이 없는 것. 감사팀의 리더 마시가 들이닥쳐 랜스가 어쌔신을 빼돌렸다며 일본에서 찍힌 CCTV를 보여주는데 랜스가 어쌔신을 탈취하는 장면이 있다. 랜스는 체포하려는 감사팀을 피해 탈출, 방금 전에 자신이 해고한 월터의 연구소로 달아난다.

때마침 월터는 몸을 은폐하는 약을 발명해 실험을 하던 중이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랜스는 목이 마르다며 그 약물을 들이마시곤 비둘기로 변한다. 랜스는 해독제를 요구하지만 월터는 아직 개발 중이라며 18시간이 지나야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 랜스는 할 수 없이 월터와 파트너가 되기로 한다.

킬리언의 정체를 알 길 없는 랜스는 그와 거래한 기무라를 찾아간다. 그런데 랜스가 범인이고, 월터까지 그를 돕는다고 단정한 마시 일행은 그들이 가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추적한다. 월터는 별나지만 뛰어난 발명 능력을 지닌 천재인지라 여러 가지 발명품으로 위기에 닥칠 때마다 도움이 된다.

과연 랜스는 결백을 증명할 수 있을까? 아니, 사람으로 되돌아올 수나 있을까?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완벽한 스파이 랜스가 불의의 사고로 비둘기로 변해 무기력해진 상상력이 타 스파이 영화와의 차별화에 공헌한다. 또한 그에게 추파를 던지는 암컷 비둘기부터 동료 비둘기들의 도움이 신선하다.

워싱턴 D. C. 한가운데 지하 깊은 곳에 스파이 에이전트의 본부가 있다는 설정은 ‘맨 인 블랙’이나 ‘엑스맨’을 연상케 하고 랜스와 월터의 공조는 ‘킹스맨’에서 본 듯하지만 애니메이션 특유의 유머가 차별화를 지향한다. 저마다의 상처가 있는 랜스와 월터의 갈등과 화해가 플롯의 큰 축을 형성한다.

두드러지는 가장 큰 주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함무라비 법전과 ‘이직보원 이덕보덕(정직함으로 원한을 갚고 덕으로 덕을 갚는다)’의 ‘논어’-‘헌문편’과의 대립, 선과 악의 경계를 묻는 질문이다. 랜스는 “불에는 불로 맞선다”고 응징을 주장하지만 월터는 “그러면 다 탄다”며 화해와 타협을 외친다.

랜스는 “허그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고, 월터는 “무조건 싸우기보다 설득한다”고 대립한다. 지금껏 전설의 요원으로 불린 랜스는 “나 혼자 해결한다”는 지론으로 활약을 독과점 했다. 사람들을 위해 희생한 엄마를 둔 월터지만 복수심보다는 평화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대화와 타협을 믿는다.

결국 그들은 독점보다는 공조가, 아집보다는 변화가 바람직하다는 걸 깨닫는다. 자신의 과학을 맹신했던 월터는 선배들을 인정하고, 자신의 커리어에 자만했던 랜스는 타인의 능력도 제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시인해, 그걸 조직에 요구한다. 19C 말~20C 초의 생디칼리슴의 색채가 꽤 짙다.

의회주의를 부정하고 노동조합을 주체로 한 직접 행동으로 자본주의를 타도해 혁명을 달성한다는 이 노동조합주의에서 이념만 뺀 노동자의 주도적 자립에 의한 체제다. 젠킨스가 기존의 상명하복식의 체계나 선후배의 위계 대신 각자의 능력에 따른 탄력적인 조직으로 수평화했다는 게 포인트다.

또 하나의 이념은 다른 건 틀린 게 아니라 개성이고 발전 가능성이라는 획일주의와 전체주의에 대한 반발이다. 어릴 적 월터는 별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다. 엉뚱한 실험으로 집안 살림살이를 엉망으로 만들지만 홀어머니는 유일하게 그를 위로하고 응원해준다. ‘별난 게 어때서’라며.

작전 때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는 랜서는 연예인으로 치면 방탄소년단 수준인데 흑인이다. 월터는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있다. 마시는 히스패닉 계열이다. 유럽의 주류 민족인 인도유럽어족 중에서 게르만, 브리튼, 라틴족 등이 아닌 민족이다. 디즈니의 모든 관객을 아우르고픈 세계관이 드러난다.

평범함이 좋긴 하지만 보편타당에서 벗어났다고 모두 이단이 아니라는 이념이다. 특이함도 비범함처럼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인류의 행복에 이바지할 수 있다면 배격할 게 아니라는 메시지다. 그래서 월터의 엄마는 “사람들은 별난 게 필요하다”며 아들에게 ‘쓸모’를 일깨워주며 세상 밖으로 내보낸다.

인트로의 일본 야쿠자들의 은신처에 펼쳐지는 랜스의 활약은 살짝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의 기시감이 엿보인다. 그런데 킬리언의 정체는 무엇일까? 랜스는 킬리언을 모르지만 킬리언은 랜스를 알고 있다. 왜 그는 어쌔신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려 할까? 월터는 선과 악의 경계를 묻는다.

월터의 발명품 중 큰 충격을 완충시키는 ‘부푸는 포옹’이란 보호 장치가 있다. 그는 이걸로 먼저 자신과 친구들의 생명을 구한 다음 나중엔 이해가 쉽지 않은 선행을 베푼다. 그가 만든 강력한 무기 중 하나는 새끼 고양이의 환상이다. 새로운 방식과 별난 사람을 외치는 주제가 신선하다. 22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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