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김정하 청춘칼럼] 재수생이 되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친구, 연애, 여행, 스마트폰. 이 많은 유혹들을 뿌리쳐야만 한다. 단 하루의 시간조차도 허투루 보낼 수 없다. 20살의 달콤한 첫 경험을 시도해보는 것은 그저 한낱 꿈에 불과할 뿐이다. 오롯이 공부에 투자해야만 성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 테니까.

재수생의 생활은 죄수생이나 다름없었다. 재수생의 하루는 집과 도서관이 전부이다. 길거리에 흩날리는 벚꽃 잎을 바라보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하는 것도, 모든 것이 사치로 다가왔다. 하루는 은행에 카드를 발급하러 방문했던 적이 있었는데, 직업란에서 재수생이라고 쓰는 내 현실이 초라했다. 나는 분명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그들에게 실패자로 낙인찍히는 기분이 들었다. 주변 친구들이 웃으며 즐거운 대학생활을 만끽하고 있을 때, 나는 누추한 모습으로 입시에 연연했다. 거울에 비친 나의 초라한 모습을 보자니,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려보겠다고 이러고 있는 것인지. 한창 즐기고 있어야 할 젊음을 입시에 쏟아 붓고 있는 내 삶이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특히, 명절이 다가오는 순간이 싫었다. “넌 어느 대학에 합격했니?” 친척들의 관심은 온통 나의 대학이름에 집중되어 있었다. 대학이름으로 나를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합격’이라는 나의 발언에 친척 중 한 분은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차라리 전문대 간호학과나 지원해서 취업이나 해라.” 그 발언은 3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내게 가시처럼 여전히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고 있었다.

나도 고등학교 땐, 인서울 대학을 꿈꿔왔던 순간이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원서만 내면 입학할 수 있을 거라고, 무모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이 곧, 안일한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현실은 냉정했다. 입시경쟁이라는 울타리에서 나는 그 현실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절대로 재수는 죄가 아니다. 남들보다 뒤처졌다고 해서 실패자가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대학교에 와서 느껴본 바로는 재수생이었다고 해서 얻는 불이익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재수를 했다고 하면, 다들 대단하다고 격려해주는 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한 해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부족한 지식을 함유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따뜻한 봄날을 가장 춥게 보내고 있을 재수생과 n수생들. 지금 이 순간도 한 문제, 한 문제 풀어나가고 있을 입시생 분들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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