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아리아나 그란데 공연(현대카드 페이스북 페이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지난 15일 광복절을 맞아 열린 아리아나 그란데(24)의 첫 내한공연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25 아리아나 그란데’는 비난만 남겼다. 그란데는 지난 2월 시작한 월드투어의 일환으로 이번 공연을 가졌다.

2만 장의 티켓이 금세 매진됐듯 그녀는 공연 3시간 전인 당일 오후 5시에 입국해 공연을 끝내고 잠시 숨만 고른 시각인 자정에 서둘러 출국했다. 리허설은 없었고 공연 직전 그녀는 SNS를 통해 공연장 화장실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공개하면서 ‘화장실 리허설’이라는 논란만 낳았다.

누가 봐도 무성의한 내한공연과 달리 그 직전 가졌던 일본 공연을 위해선 이틀 전 입국했다. 당연히 리허설은 존재했다. 공연의 질이 확연히 달랐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한국 공연 시간은 1시간 30분이었다. 딱히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콘서트의 러닝타임은 희한하게도 영화와 비슷한 2시간이다. 실질적으로는 좀 더 길어지는 게 다반사.

그란데는 153㎝의 단신이지만 뛰어난 가창력만큼이나 독보적인 미모를 자랑한다. R&B를 기본으로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냄으로써 ‘팝의 요정’ ‘차세대 디바’ 등으로 불리는 가운데 연기활동까지 병행 중이다. 하지만 이번 내한공연의 무성의하고 오만한 행적만큼이나 인성문제가 거론될 정도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동을 보인다.

▲ 사진=아리아나 그란데 인스타그램

대표적인 예가 2015년의 ‘도넛 사건’. 당시 그녀는 남자친구였던 백댄서 리키 알바레스 등과 함께 한 도넛 매장을 방문했는데 점원이 한눈을 파는 사이 도넛에 혀를 대거나 심지어 침을 뱉는 등의 만행을 저지르는가 하면 그 과정에서 “난 미국인이 싫어. 미국이 싫어”라고 지껄였다. 이게 CCTV를 통해 알려지면서 그는 미국인의 공분을 샀다. 그녀의 본명은 아리아나 그란데-부테라. 성에 근거할 때 이탈리아 출신이다.

논란이 커지자 그녀는 “난 미국과 미국인을 사랑하며 애국심도 충분히 갖고 있다. 정말 죄송하다”라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도넛을 혀로 핥은 행동에 대해 “건강한 식습관을 지지하는 내게 음식은 굉장히 중요하다. 미국이 세계에서 아동 비만율이 가장 높다는 것이 나는 불만스럽다. 우리는 과식의 위험성과 몸에 넣고 있는 독의 위험성에 대해 아이들을 더 교육할 필요가 있다”라는 궤변을 늘어놓아 욕만 더 먹은 바 있다.

그녀가 사진촬영을 거부했다든가, 공연을 끝마치자마자 출국했던 점 등은 일견 이해는 된다. 최근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배치문제로 한반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데 대한 국내와 국외의 체감온도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물정을 제대로 배울 기회나 연륜이 적었을 그녀로선 충분히 가능한 행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값비싼 콘서트를 여는 주인공으로서 리허설을 생략한 점은 무성의를 떠나 오만방자한 만행에 다름없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콘서트는 충분한 후반작업을 하는 영화와 달리 현장상황이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따라서 사전에 음향 조명 무대장치 등의 제반장비를 충분히 점검하고 가수의 동선이나 목 상태 등과 맞춰 모든 여건의 디테일을 맞추는 게 지극히 당연하다. 그래도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하곤 하는 게 콘서트다. 관객들이 지불한 돈만큼의 완성도 높은 공연을 추구하는 건 주인공의 당연한 의무이자 장인정신이다.

▲ 사진=아리아나 그란데 인스타그램

1차적인 책임은 당연히 그란데에 있지만 주최 측인 현대카드 역시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보다 더 많은 관객들이 선호하는 연주자를 무대에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성실한 무대를 꾸미고, 관객들에게 얼마나 예의를 갖출 줄 아는 연주자를 초청하는지도 그 이상으로 중요한가를 간과했다. 눈앞의 이익과 화제성만을 좇았다는 질타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인구는 적지만 대한민국과 한국인이 전 세계 대중문화계의 중심이 된 지 꽤 됐다. 톰 크루즈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 할리우드의 초특급 스타들이 최대 2000만 관객도 안 드는 흥행성적에 불과한 한국에 오는 이유는 그만큼 아시아지역의 여론형성에 끼치는 파급력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그 상징성에서 각별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연예인 역시 할리우드 스타가 부럽지 않을 만큼 세계적으로 추앙받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란데처럼 인성이 검증이 안 된 스타를 모셔오기 급급했던 결과는 아쉬움을 넘어 국민의 분노를 자극하고, 자존심에 상처를 내기에 충분하다. 그녀가 한국인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리허설조차 안 했고, 한국을 얼마나 하찮게 봤으면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식으로 일본공연을 위한 ‘알바’ 수준의 내한공연을 가졌는지 짐작하는 게 어렵지 않은 상황이다.

▲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스틸 이미지

영화 ‘스파이더맨’은 ‘위대한 힘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뒤따르기 마련’이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정치가나 재벌뿐만 아니라 그들 못지않은 부와 권력이 부여되는 유명 연예인에게도 이 충고가 적용되는 현대사회다. 브래드 피트가 ‘빵오빠’로 불릴 정도로 우리 국민에게 겸손하고 친근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진짜 우리 국민을 사랑하는지의 여부를 떠나 일단 잘 보이는 게 상책이기 때문이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예술을 돈으로 환산하려들고, 과학이 발달할수록 신화를 멀리하는 대신 대중예술인과 체육기능인을 우상화하는 게 자본주의시대의 현상이다. 적지 않은 사람에게 종교가 일상화되는 대신 드라마가 믿음의 자리를 파고듦으로써 연예인이 신격화되다시피 하는 게 현실이다.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과학은 사람으로 하여금 시간과 공간의 신묘함을 안 믿는 대신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힐 듯한 미디어 속의 우상을 맹신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실이 힘든 사람일수록,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 큰 사람일수록 그런 환상의 폭은 더욱 확장되기 마련이다. 그런 이들에게 휴 잭맨은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이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안 되는 게 없는 전지전능한 사람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언론은 연예스타들의 가면을 벗기는 데 혈안이 되기 십상이다. 그건 언론의 사명이자 수입이기 때문이다.

대중도 연예스타의 진면목을 알고 싶어 한다. 대중의 지지도만큼 스타에게 부와 명예가 주어지기 때문에 제공자로서의 당연한 알 권리다. ‘유명해졌더니 사생활이 없어졌다’라는 스타의 불만이 포만감에 따른 하품에 불과한 건 여기에 근거한다.

▲ 영화 <내부자들> 스틸 이미지

대중의 일부는 ‘연예교’라는 종교의 광신도이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똑똑하고 냉정하다. 그란데의 형편없는 행동에 맹렬하게 비난을 쏟아낸 미국인들과 부도덕한 행동을 하거나 명백한 범죄를 저지른 연예인을 지상파 방송사의 ‘출연금지’ 명단에 올리게끔 여론을 형성하는 한국인들의 대응이 그 증거다. 문제는 대기업이다.

현대카드는 이번 그란데의 태도를 기업의 측면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혹시라도 재벌이라는 이유로 국민을 내려 본 것은 아닌지 곱씹어볼 일이다. 그란데의 태도는 누가 봐도 최소한 ‘너흰 평민, 나는 귀족’이란 우월의식에서 비롯됐다. 그녀의 대중예술적 능력이 월등한 건 사실이지만 그게 인격의 클래스마저 높일 순 없다. 영화 ‘내부자들’의 이강희의 “어차피 대중은 개, 돼지”라는 발언을 연상케 하는 아주 불쾌한 오만과 불손이었다.

현대카드에겐 그란데의 그런 비뚤어진 의식세계와 시각을 같이하거나 최소한 묵인했기 때문에 그녀의 내한공연을 굴종의 태도로 유치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럼으로써 향후 어떤 성향과 인성의 해외스타를 초청할지에 대한 진지한 고뇌를 거칠 때 재벌이 대중 위에 군림하는 기업이 아니라 대중의 소비를 진심으로 고마워할 줄 아는 낮은 자세의 기업이란 인식을 소비자에게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