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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들’, 여성 착취의 자본주의 고발하는 재미 갖춘 다큐 [유진모 칼럼]

기사승인 2021.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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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가는 ‘암살자들’(라이언 화이트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도 충분히 재미있고 손에 땀을 쥐게 해 줄 수 있다는 걸 입증한다.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두 여인이 김정남을 살해한다.

현지 경찰에 검거된 용의자는 인도네시아 국적의 시티 아이샤와 베트남 국적의 도안 티 흐엉. 두 여인은 동시에 김정남의 앞과 뒤에서 그의 눈에 맹독성 화학 무기 VX 신경 작용제를 발랐고, 김정남은 1시간도 안 되어 숨졌다. 이런 내용은 CCTV에 그대로 찍혔다. 말레이시아에서 살인 혐의가 입증되면 사형이다.

두 여인은 수감되고 재판이 2년간 진행되는데 그녀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영화는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취재에 나선 워싱턴포스트의 베이징지부장 미국인 안나 파이필드와 말레이시아의 비나르 뉴스의 하디 아즈미 기자가 이끄는 식으로 진행된다. 두 용의자의 가족과 친구, 지인, 그리고 다섯 변호사가 인터뷰에 응해 이해를 돕는다.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세상은 떠들썩했다. 북한과 대치 중인 우리나라는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의 주적인 미국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어느새 사건은 잊혔다. 두 여인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이 사라졌다. 김정은의 ‘정치 쇼’도 한몫했을 터이지만 자본주의 체제가 얼마나 취약 계층, 특히 여성을 착취하는가에 대한 증거일 수도 있다.

김정일은 무용수 출신 고영희와의 사이에서 김정남을 낳는다. 다시 유명 배우 출신 성혜림과 결혼해 김정은을 얻는다. 북한에는 백두 혈통에 대한 전설이 통용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권력 서열 1위는 김정남. 하지만 성혜림은 수완이 좋고 정치력이 막강했다. 김정남은 일찌감치 마카오로 이주했다. 2011년 김정일이 사망하자 25살의 김정은이 ‘왕좌’에 앉는다.

이미 김정남은 날개가 꺾인 상황. 그러나 김정은은 안팎으로 감도는 회의론에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이 확실했다. 그는 자신에 대해 확고한 충성심을 보이지 않는 낡은 군부 요인들을 숙청했다. 심지어 좋아하는 고모의 남편인 장성택마저 잔인하게 살해했다. 김정남은 여전히 마카오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언론과의 접촉 때 대놓고 3대 세습과 독재를 비난하며 김정은에 대해 좋지 않은 말들을 쏟아 냈다. 김정은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는 김정남이 그에게 보낸 편지에 ‘나를 죽이려 하지 마’라는 글이 담긴 것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마카오는 중국 영토이다. 북한의 최고 후원국은 중국이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마카오에서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중국 역시 김정은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 경우의 히든카드로 김정남을 갈무리하고 있어야 했으므로 그를 지키려 했을 것이다. 감독은 지난한 취재와 인터뷰 등을 통해 두 용의자가 아주 평범한, 그래서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딸이었음을 증명해 준다.

시티는 가난한 집에 보탬이 되기 위해 자카르타의 의류 공장에 취업한다. 같은 목적으로 17살에 공장 사장과 결혼하지만 아이 하나를 낳고 이혼한다. 그녀는 연예인이 꿈이었다.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 그리고 집에 한푼이라도 보태 주기 위해 유흥업소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다. 도안 역시 사정은 매한가지.

영화는 처음에는 시티와 도안이 진짜 살인자인지, 정말로 고도의 킬러 교육을 이수했는지 등에 대한 궁금증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렇게 감독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진실에 한 걸음씩 접근하게 된다. 그녀들은 사건 당일까지도 일면식도 없던 사이이다. 각자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에게 조종당했을 뿐이다.

‘그들’은 연예인을 꿈꾸는 그녀들의 약점을 이용해 SNS용 ‘몰래카메라’를 찍자고 접근했다. 그걸 통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수 있다고 유혹한 것. 그래서 그녀들이 배운 킬러용 교육은 연기였다. 거리의 사람들에게 갑자기 다가가 돌발적인 행동을 가해 그들을 당황케 만드는 것.

‘그들’은 그녀들에게 김정남을 다른 상황인 줄 착각하고 촬영에 응하는 배우라고 소개했다. 김정남의 얼굴에 ‘베이비 로션’을 바르는 것이라고 속이며. 영화가 전개될수록 그림은 더욱 커진다. 북한 내부의 권력 다툼인 줄만 알았던 사건의 배후에는 북한과 미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과의 정치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켰음을 잘 보여 준다.

김정남은 사실상 CIA 요원의 끄나풀 역할을 했다. 그렇잖아도 폐쇄적인 북한 사회이기에 더 깊은 구중궁궐의 김 씨 일가의 내막은 더욱 오리무중이다. 그러니 백두 혈통인 김정남은 미국에겐 더없이 좋은 정보 제공원이었던 것. 실제 김정남의 사후 그의 가방에서는 13만 달러 이상의 미국 화폐가 발견됐다.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크게 4개이다. 첫째는 하디의 “기자는 진실을 알리는 직업.”이라는 코멘트. 말레이시아 정부는 언론에 재갈을 물렸다. 그러나 하디가 소속된 언론사는 국내의 간섭을 받지 않는 국제적 존재이기에 그는 소신을 갖고 취재에 나설 수 있었다. 국내 언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둘째는 세습과 독재 정치. 전 세계적으로 왕정 시대에 정권을 놓고 형제가 다투는 일은 일상적이었다. 심지어 부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르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창세기의 카인과 아벨, 로마 신화의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각각 형제임에도 형이 동생을 죽였다. 질투와 욕심이 낳은 폭력성이다. 모든 동물에게 살상의 목적은 생존이지만 인류만이 과욕과 감정으로 살인을 한다. 타 종에 대한 살상의 이유는 어처구니없기까지 하다.

셋째는 이 영화의 종착역인 체제, 단체, 권력 등의 여성에 대한 악용과 착취이다. 북한 공작원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의 배후가 김정은이든, 아니든 간에 그들은 한푼이 아쉬운 두 여인의 궁핍한 처지를 악용해 ‘몰래카메라’로 위장한 살인을 교사했고, 목적은 성립되었으며, 완전 범죄로 끝났다. 사건 이전에도 이미 남자들은, 자본주의는 돈으로 그녀들을 유린했다.

넷째는 이 세상에 대한 냉철한 판단력이다. 우여곡절 끝에 국가 간 타협으로 풀려난 도안은 베트남에서 스타 대접을 받고 언론 인터뷰에서 하고 싶은 일이 배우라고 답한다. 하지만 이내 여론은 살인자가 스타 대접을 받는다는 식으로 흘러가면서 그녀는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표피적으로는 연예인에 대한 허황된 꿈을 가진 청소년, 특히 일부 여자들의 섣부른 환상에 대한 경고이다.

더 파고들자면 ‘세상은 생각처럼 만만치 않다’이다. 도안은 “세상을 좋게, 사람들을 착하게 봤는데 이젠 사람을 잘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시티는 “이제는 이해한다.”라고 말한다. 권력과 정치이다. 하디는 “결말 옳은가? 정의는 실현되었는가?”라고 묻는다. ‘그녀들은 본의 아니게 큰 장기판의 말이 됐다’라는 마지막 자막은 참혹하다. 내달 12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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