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디지털장의사 박용선의 ‘잊혀질 권리’] “디지털장의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십니까?”

가끔 처음 만나는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묻는다. 그러면 보통 “디지털장의사요? 장례업자 아닌가요?…”라며 말끝을 흐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쩌면 당연한 지도 모른다. 디지털장의사라는 명칭이 정식 직업군으로 편입한 게 10년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아직도 제대로 의미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디지털장의사는 ‘인터넷장의사’, ‘디지털리무버’, ‘디지털세탁소’ ‘디지털청소부’ 등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점차적으로 ‘디지털장의사’로 통일되는 분위기다.

디지털장의사는 원래 미국 등지에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생전에 인터넷에 남겨 놓은 ‘디지털 유산’을 청소해주는 업체에서 출발했다. 온라인 상조회사로 불리는 라이프인슈어드닷컴(lifeensured)이 그 효시다. 이 회사는 생전에 300달러(한화 약 35만원)를 내고 회원가입을 해 놓으면, 죽은 이후에 회원과 관련된 인터넷정보를 샅샅이 뒤져서 삭제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개인 계정들과 직접 올린 게시물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사람의 글에 올린 댓글까지 없애 준다.

미국 뿐 아니라 일본 등지에서도 이와 비슷한 업체들이 생겨났고, 이는 세계적인 추세로 봐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은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디지털세상이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연예인들의 평판을 관리해주는 업체가 2008년 등장하면서 첫 관련 비즈니스가 시작됐다. 당시에는 평판관리 위주와 라이프이슈어드닷컴과 같은 서비스가 주였다. 현재는 전국에 약 50여개의 업체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이 중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업체는 2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분명 디지털장의사가 하는 일이 죽은 사람들의 흔적을 지우는 일이기 때문에 일종의 ‘장례업자’라는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죽은 자보다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디지털 흔적지우기’ 요청이 더 빈번해지고 강력해지고 있다.

온간 정보를 검색하고, 쇼핑하고, 각종 소셜 네트워크로 관계를 맺고, 다양한 글쓰기가 가능한 디지털 세상이기 때문에, 어쩌면 지금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세대가 인터넷에 자신의 삶이 자연스럽게 기록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것은 가상의 삶이 아니라, 실제의 삶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실제로 죽의 자의 인터넷 데이터를 삭제해 달라는 요청은 전체의 5%도 안 될 만큼 그 수요가 적은 편이다. 삭제를 원하는 것도 다양하다. 단순히 자신의 계정과 글을 벗어나 원치 않는 뉴스와 동영상 삭제, 댓글 삭제, 평판을 저해하는 각종 게시물 삭제 등이 주를 이룬다. 모두 살아있는 자들의 요청이다. 대부분 이들은 이러한 자신의 실수이든 아니든, 인터넷에 남아있는 글과 이미지, 영상 등으로 인해 극심한 정신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분들이다. 또한, 이런 고통이 심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는 된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디지털 세상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죽어서 디지털 유산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디지털의 잔재 때문에 우리의 삶과 죽음이 뒤바꿀 수 있는 매우 중대한 문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래서, 디지털장의사는 장례업자가 될 수 없다. 디지털장의사는 철저히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가 되어야 한다.

디지털 세상에서 개인의 정보를 자기 자신 이외에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이 그 누구에게도 없다. 순전히 자신만의 몫인 셈이다. 이 ‘잊혀질 권리’를 위해 외로운 싸움을 하는 사람들에게 디지털장의사는 기꺼이 동반자가 돼야 한다.

▲ (주)탑로직 디지털장의사 대표 박용선

[박용선 탑로직 대표]
-가짜뉴스퇴출센터 센터장
-사회복지사, 평생교육사
-(사)사이버1004 정회원
-인터넷돌봄활동가
-서울대 AMPFRI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고려대 KOMA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마케팅 애널리틱스학과 대학원 졸업
-법학과 대학원 형법전공
-전)희망을 나누는 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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