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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 분노의 추적자’, 노예제도 난도질하는 통쾌한 복수극 [유진모 칼럼]

기사승인 202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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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는 세르지오 코르부치 감독의 ‘장고’(1966)를 모티브로 출발하지만 복수극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매우 다른 내용이다. 남북전쟁 발발 2년 전인 1858년 남부. 킹 슐츠 박사가 이동 중인 노예상 스펙 형제 앞에 나서 장고(제이미 폭스)를 구해준다.

슐츠는 전직 치과의사지만 지금은 현상금 사냥꾼으로 큰 현상금이 걸린 브리틀 3형제를 쫓는 중인데 장고가 그들의 얼굴을 알기 때문에 찾았던 것. 농장 노예였던 장고는 거기서 브룸힐다와 결혼했지만 주인의 눈 밖에 난 탓에 아내와 각각 다른 곳으로 팔렸고, 그녀를 찾는 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독일 출신인 슐츠는 브룸힐다가 독일인 주인에게서 노예 신분을 초월한 정을 받으며 자랐다는 점과 장고가 기개가 넘치고 의외로 타고난 명사수라는 점에 매료돼 한겨울 동안 동업을 제안하고, 그게 끝나면 함께 아내를 찾아주겠노라 약속해 브리틀 형제 등을 제거하는 등 많은 현상금을 챙긴다.

드디어 봄이 오고 그들은 브룸힐다가 미시시피 캔디랜드라는 농장에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농장주 캔디(리어너도 디캐프리오)는 매우 가학적인 인물로 만딩고들의 격투기를 좋아한다. 슐츠는 돈 많은 격투기 마니아로 위장한 뒤 캔디에게 그가 소유한 뛰어난 만딩고를 거액에 사겠다고 접근하는데.

영화 ‘그린북’은 남쪽에서 얼마나 인종차별이 심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남북전쟁은 노예제도 문제가 가장 첨예했다. 그 직전의 미시시피라면 흑인 노예에 대한 백인들의 인식이 어땠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법하다. 그러니 슐츠와 함께 말을 타고 다니는 장고에 백인들이 분노하는 게 당연하다.

북극성이 길라잡이가 돼 주는 건 남쪽의 노예제 폐지 반대가 얼마나 정도와 다른 길이었는가를 은유한다. 슐츠는 “노예상은 산 사람을 팔고, 나는 시체를 판다”고 한다. 얼핏 듣기에 자신이 더 나쁜 사람일 수도 있지만 그건 반어법이다. 자신은 범죄자의 단죄를, 노예상은 흑인의 영혼을 판다는 뜻.

영화는 캔디와 장고라는 극단의 이항대립주의자와 그들을 중재하려는 중용주의자 슐츠가 세 축을 이룬다. 캔디는 아버지에게서 농장을 물려받은 전형적인 귀족주의자다. 농장 내에서 하인과 노예를 부리며 왕처럼 군림하고 만딩고들을 고대 로마시대의 글래디에이터보다 더 하찮은 물건처럼 취급한다.

사이코패스 성향의 그는 잘난 체를 즐기고, 가학적인 행위로 쾌락을 느낀다. 그 폭력성은 신대륙을 개척한답시고 원주민들을 무참히 도륙한 이주민을 의미한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신대륙에 끌려와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만딩고 중의 한 명인 장고는 캔디와 대척점에 선 인간성 회복의 기수다.

캔디는 슐츠와 장고 앞에서 흑인 노예의 스컬을 가르며 흑인은 노예근성 때문에 뇌에서 복종의 부위가 매우 크다고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캔디와 그의 집사 스티븐의 계략에 빠져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장고는 다른 백인들의 도움을 받아 곤경을 쉽게 빠져나갈 수 있었음에도 자립을 선택한다.

흑인을 경멸하는 백인, 백인을 두려워하거나 증오하는 흑인. 그 중간계에 속한 슐츠는 노예제도를 반대하고, 흑인의 동등한 인권을 주창한다. 그런 그가 참을 수 없는 건 자신의 화해와 중재의 노력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방통행이다. 캔디와 합의가 이뤄져 큰돈으로 브룸힐다를 인수하기로 계약했을 때.

갑자기 캔디는 “남부에선 계약이 성립된 후에라도 서로 악수를 안 하면 무효”라며 슐츠에게 브룸힐다의 목숨을 담보로 악수를 강권한다. 그건 선택의 기로다. 기존의 보수적 편견에 굴종하느냐, 아니면 슐츠가 그리던 인권평등의 이상향이냐의 문제. 합리론과 경험론을 화합하려 했던 칸트가 엿보인다.

칸트에 의하면 ‘도덕 법칙은 정의를 요구하고 덕에 비례하는 행복을 추구’한다. 또 ‘자유가 꼭 필요한데 그건 자유가 없으면 덕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슐츠는 아들과 밭을 가는 현상수배범을 쏘길 망설이는 장고를 닦달한다. 애먼 데서 죽느니 아들 품에서 죽을 수 있는 아량을 베푼다는 인식론.

도덕을 바로 세우기 위해선 정의가 필수라는 논리다. 또한 그의 자유정신은 장고가 물려받는다. 광산에 끌려갈 때 장고는 특유의 말솜씨로 백인 이송자들을 현혹시켜 말머리를 돌린다. 그렇게 그들의 도움을 받아 손쉽게 목적을 이룰 수 있었지만 다른 길을 택한다. 자신과 다른 노예의 자유를 위해.

그 배경은 게르만족의 지크프리트의 전설의 한 지류다. 신 중의 신 보탄의 딸인 브룸힐다는 왠지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 불의 산에 갇혀 불을 뿜는 용의 감시를 받는다. 그러나 영웅 지크프리트가 나타나 용을 죽이고 그녀를 구해준다는 얘기. 장고는 편견에 의해 억압받는 노예를 구하는 영웅인가?

이토록 이 작품은 미국의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에 대해 아주 현란하게 메스를 휘두른다. 겨우내 현상금 사냥을 하느라 야영이 일상이었던 두 사람의 야영지를 어느 날 밤 KKK 단이 습격한다. 그들은 두건에 구멍을 잘못 뚫어 앞이 잘 안 보인다며 그 작업을 한 사람을 힐난하는 등 어수룩하게 그려진다.

세 주인공의 연기도 명불허전이지만 스티븐 역으로 잠깐 등장하는 새뮤얼 L. 잭슨은 그에 못지않다. 집사인 그는 노예 중 최고 권력자로 심지어 캔디에게 잔소리를 해대는데 노예들에게 제일 가혹하다. 이른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Frenemy’ 심리다. ‘킬 빌’ 못지않은 타란티노식 복수극의 절정!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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