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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천하대전’, 인생의 행복과 목표에 대한 대서사시 [유진모 칼럼]

기사승인 202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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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홍콩 출신 리옌쿵(이인항) 감독은 국내 관객에겐 멜로 ‘성월동화’(1999)가 유명하고, 최근 작품으로는 ‘에베레스트’(2019)가 떠오를 것이지만 ‘초한지: 천하대전’(2011)이라면 그의 필모그래피 중 단연 앞에 내세우기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삼국지, 수호지와 함께 중국 3대 소설인 초한지를 각색했다.

BC 3세기 말 진나라가 쇠락해가던 때. 진의 폭정에 항거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군사 세력들은 초나라 출신의 항우를 중심으로 뭉치게 되고 한나라 출신 유방은 제2세력으로 부상한다. 항우에 의해 옹립된 회왕은 상징적인 자신의 존재를 확고히 다지기 위해 이 둘을 이간질 시킬 계책을 세운다.

진의 수도 함양을 먼저 차지하는 자에게 진나라의 왕관을 씌울 것이라고 선포한 것. 항우는 북쪽에서, 유방은 동쪽에서 각각 진군해 나갔는데 항우가 진나라 군대와 전면전을 펼치는 사이 유방이 함양성에 입성하자 항우는 분노해 40만 군사를 일으키려 하고 20만 군사의 유방은 화해를 요청한다.

항우에겐 범증이란 노련한 책사가, 유방에겐 다소 젊지만 결코 범증에게 뒤지지 않는 장량이란 책사가 각각 있어 뛰어난 지략을 펼친다. 항우는 유방을 제거하고자 홍문으로 그를 부른다. 범증과 장량의 목숨을 건 바둑 대결이 펼쳐지고 장량이 패배하지만 회왕의 어명으로 유방이 위기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유방은 항우에게 장량을 빼앗긴다. 삼국지로 치면 제갈량과 방통을 양손에 쥔 항우는 그들과 천하쟁패를 논의하는데 두 사람은 번번이 부닥친다. 유방에 비해 행동주의자인 항우는 점점 더 장량을 신뢰하게 되고, 그렇게 범증은 은퇴한다. 마침내 해하에서 패한 항우는 우희와 함께 자결한다.

역사 혹은 소설로서 매우 널리 알려진 유방과 항우 두 영웅의 패권 다툼, 그리고 그 전쟁의 와중에 핀 패왕별희(항우와 우희의 애틋한 사랑) 얘기를 리 감독은 최근 ‘초한지’의 중요 부분만 다이제스트한 작품 중 단연 돋보이는 수작으로 완성했다. 물론 역사에 해박한 이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겠다.

기존의 이미지대로 항우를 머리보다는 주먹이 먼저 나가는 인물로 설정하긴 했지만 굳어진 천하장사로서의 강인함보다는 사랑에 올인할 줄 아는 사랑주의자로서의 캐릭터를 부각시킨 게 돋보인다. 또한 한낱 거리의 비파 연주가 출신인 우희를 그에 못지않은 낭만과 배포를 가진 호걸로 승화시킨다.

의형제를 맺은 항우는 출정에 앞서 유방에게 우희를 맡기지만 유방은 그의 믿음을 저버리고 함양을 차지한다. 하지만 우희는 결코 안달복달하지 않고 의연하다. 그렇다고 항우를 배신하고 유방에게 꼬리치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영웅은 정세의 흐름을 상세하게 읽으면서 때를 기다리는 그녀였던 것.

역사는 승자의 몫이니 당연히 유방을 우호적으로 전승하고 있지만 이 작품은 결코 그런 상투적인 표현법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월하다. 모든 면에서 항우가 우위였다. 개인적인 전투력이 최강인 데다 장군 중 가장 많은 군사를 거느렸다. 책사 범증은 그의 결정적인 핸디캡을 보완해 줬다.

유방이 항우에 비해 똑똑하고 민심을 더 얻은 것은 맞지만 군사력에서 한참 뒤졌다. 그런 그에게 책사 장량과 대장군 한신의 합류는 천군만마였다. 여론은 점점 더 항우에게서 멀어졌다. 그럼에도 아직 항우를 대적하기에는 역부족. 홍문연의 일대 결전이 그 증거인데 사실상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다.

목숨을 건 범증과 장량의 바둑 대결. 4판은 범증이 이기고 마지막 판은 미결로 남는다. 유방은 간신히 목숨을 건지는 대가로 장량을 빼앗기지만 이 모든 건 사실상 장량의 계략. 날이 갈수록 장량에 대한 항우의 신뢰는 커지지만 그만큼 범증에 대한 불신과 거리감도 불어나 그를 은퇴하게 만든다.

이 작품의 백미는 홍문연 시퀀스와 더불어 유방이 패권을 잡은 이후에 있다. 부하 한 명이 항우의 거처에서 서신 한 통을 발견해 유방에게 건넨다. 범증이 항우를 떠나면서 마지막 순간에 펼쳐보라고 했던 마지막 충고인데 사실상 장량을 이기기 위한 최후의 신의 한 수였다. 마치 이이제이 같은 수.

유방은 천하를 얻었지만 그 과정이 순리적이지 않았기에 사람을 믿는 능력을 잃었다. 대부분 결과를 위해 과정을 무시하지만 이 작품은 과정에 집중한다. ‘악목도천 무위자연’(길이 아니면 가지 말고 섭리를 거스르지 말 것)이다. 전쟁 끝내고 고향에서 술잔을 기울이자는 약속을 잊었냐는 번쾌의 절규!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인생의 목표와 삶의 가치를 묻는 인식론의 질문! 유방은 현실로 치면 대통령 혹은 제1의 재벌기업 회장을 꿈꾸고 그걸 이뤘다. 그 과정에서 라이벌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조력자를 희생시키기도 했다. 그 결과 과연 만족할까? 암살 공포에 떠는 황제 유방은 행복할까?

항우는 비록 패해 자결했지만 그의 죽음엔 그토록 사랑했던 연인 우희가 동반했다. 사람은 결국 죽는다. 진시황의 불로장생이란 허황된 과대망상에서 봤듯 부자나 평민이나 살고 죽는 건 대부분 ‘거기서 거기’다. 공황장애에 시달리며 원앙금침에서 식은땀을 흘리느냐, 연인과 행복하게 죽느냐의 차이.

유방과 항우의 대립 구도는 이원론도 일원론도 아닌 숙명적 대결론이고, 두 가지 꿈의 병립불가론이다. 심신대결론이기도. 유방이 조금만 욕심을 내려놨다면 두 영웅은 공존할 수 있었지만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다. ‘내면을 파고들어 자아를 탐색함으로써 인식의 문을 열라’는 인생론의 교훈이 멋지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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