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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일의 썸머’, 운명론이냐, 주의주의냐? [유진모 칼럼]

기사승인 202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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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500일의 썸머’(2009)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 2편을 연출하기 직전의 마크 웹 감독의 데뷔작으로 전형적인 멜로와 달라서 꽤 흥미롭다. 톰(조셉 고든 래빗)은 원래 건축가를 꿈꿨지만 지금은 엽서 만드는 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있다. 어느 날 서머(주이 디샤넬)가 사장 비서로 입사한다.

그녀는 남자 사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지만 도도하게 군다. 우연히 엘리베이터 안에 톰과 서머 단둘이 타게 되고 그걸 계기로 친해진다. 노래 클럽에서 열린 회식에서 만취한 톰의 친구 매켄지가 서머에게 톰의 속내를 알려준다. 톰의 마음을 확인한 서머는 친구를 하자더니 제가 먼저 입을 맞춘다.

그렇게 연인이 된 두 사람은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서머는 “진지하게 만날 생각은 없다”며 그저 가볍게 잠자고 함께 영화나 보는 사이로 선을 긋는다. 그러나 그녀가 그렇게 거리를 두면 둘수록 톰의 사랑은 깊어져만 간다. 만난 지 9개월이 될 즈음에 톰은 바에서 서머에게 집적대는 남자와 싸운다.

이를 기점으로 서머는 톰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그와도 헤어진다. 톰은 다른 여자를 만나보지만 서머를 잊을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서머는 자기 아파트에서 열리는 파티에 톰을 초대한다. 하지만 톰은 서머의 손가락에 있는 커플 반지를 확인한 뒤 뛰쳐나오는데.

인생에서 철학을 배우는가? 철학으로 인생을 개척하는가? 종교에서 가장 많은 이론이 일신론과 범신론이라면 사상에선 이원론(이항대립)이 압도적일 것이다. 톰은 운명론자였기에 서머를 처음 보는 순간 그녀가 반쪽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주의주의자인 서머는 운명 따윈 구실이라 여겼다.

당연히 그녀는 아무개의 연인이나 유부녀라는 구속에 강한 거부감을 가졌다. 오죽하면 대학 때 별명이 ‘미친 결벽녀’였다. 부모는 물론 많은 사람들의 이혼을 보며 사랑은 결혼이란 과정을 거쳐 결국 파국을 맞는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사랑은 환상이라 결론짓고 심각한 관계를 철저히 지양해왔다.

이 대립항은 그들이 보는 ‘반 뱀파이어, 반 거인’이란 노골적인 영화 제목으로 잘 드러나있다. 첫 만남부터 동상이몽이었다. 톰은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하리라 믿었지만 서머는 사랑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제자리걸음을 하며 적당히 찰나의 행복을 즐기다가 우연히 만났듯 필연적으로 헤어질 걸 내다봤다.

서머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니 너랑 만날 때 몰랐던 걸 깨달았어. 식당에서 책을 읽는데 어떤 남자가 다가오더니 책 내용을 묻더라. 만약 내가 그 식당을 안 갔다면 그를 만날 수 있었을까?”라고 떠난 이유를 털어놓는다. 그러나 톰은 “내가 화나는 것은 네 말이 전부 옳았다는 것”이라고 절규한다.

서로 다른 이론을 가졌던 두 사람은 이별을 전후해 서로에게 배운다. 이제 톰은 기적도 정해진 게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된 반면 서머는 우연도 우주의 이치라고 전향했다. 이 운명론(결정론)과 주의주의(의지가 최고)의 대립 혹은 교환 혹은 변전은 “인간은 의식을 가진 기계”라고 말한 대니얼 데닛이다.

심리학자들은 자폐증을 상대방의 표정이나 동작에서 그 심리를 알아채는 능력이 결여된 병으로 읽는다. 데닛은 그런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데 대한 인지 연구의 선구자다. 상대방의 행위에서 욕구와 믿음을 읽는 지향적인 태도 이론을 발전시켜 운명론과 주의주의의 화합을 시도한 다윈주의자가 그다.

변신론자 라이프니츠는 예정조화 이론을 통해 강하게 결정론을 설파했다. 낙관주의자였던 그는 현재 이 세상이 신이 창조한 가장 조화로운, 살기 좋은 세계라고 했지만 그건 종교적 입장일 뿐.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이면서도 의지가 삼라만상의 본질이라는 형이상학적인 주의주의 사상에 투철했다.

감독은 두 주인공을 애초부터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지 않았듯 결론은 관객의 상상력에 맡긴다. 사실 톰은 어느 정도 루저다. 건축가의 꿈은 실력이 모자라 갈무리했다. 연애도 제대로 못 해봤고, 그래서 로우틴 여동생 레이첼(클로이 모레츠)에게 번번이 상담을 한다. 친구들도 변변치 못하긴 마찬가지.

맥켄지는 술만 마시면 주위에 민폐만 끼치는 ‘진상’인 데다 여자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하다. 그건 게이 친구 폴도 유사하다. 아니, 어쩌면 여자에 대한 울렁증 때문에 게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톰이 할 수 있는 건 고작 ‘김국환의 접시 깨뜨리기’.

영국 펑크록 그룹 섹스 피스톨스의 멤버 시드 비셔스는 난봉꾼이고, 그의 연인 낸시 스펑겐은 악명 높은 그루피였다. 시드는 낸시를 살해한 뒤 자살했다. 서머는 헤어지자며 그 이유를 “우린 시드와 낸시 같아”라고 말한다. 톰이 자신과 시드가 닮은 게 없다고 하자 그녀는 자기가 시드라고 정정한다.

그들은 시작부터 화성과 금성에 따로 있었다. 헤어질 즈음엔 금성과 화성으로 서로 바꿨다. 헤어지고 나면 상대방의 흠이 더 잘 보이기 마련. 서머는 “너 발냄새 심했어”라고 말하고, 톰이 “피곤해서 그랬을 것”이라고 항변하자 “매번 그랬어”라고 못을 박는다. 그들의 가장 큰 동상이몽은 ‘졸업’이다.

마이클 니콜스 감독의 1967년 작품인 이 영화는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려운 젊은이들의 암울한 현실을 대변한다. 마지막 두 주인공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서머는 울지만 톰은 그걸 이해 못 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톰은 훌훌 털고 건축회사 면접을 통해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를 시즌을 만난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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