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고부갈등’으로 인한 부부갈등은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줄어들기는 했으나, 아직까지도 상담실의 사례들 중 꽤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결혼하는 것을 ‘독립한다’라고 쉽게 말하기도 하는데, ‘건강한 독립’을 하지 못하면 ‘효도’가 가정불화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혼 4년 차 부인이 상담실을 찾았습니다.

부인은 가족 간의 관계가 썩 좋지 않은 친정에서 자랐는데, 소개로 만나게 된 남편은 가족 간의 우애가 깊고 자신과 다르게 남편이 부모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점에 끌려서 결혼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경제적인 기복이 심했던 친정과 달리 시댁은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서인지 생활이 안정되어 보인 것도 좋았지만, 심지어 남편이 대학에 진학할 때 부모님의 부담을 줄여드리기 위해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선택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가정을 무엇보다 가장 소중하게 생각할 거라고 믿었고, 사실 남편은 결혼 후에도 누구 못지않게 가정적이라는 점에서는 전혀 불만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혼하여 살다 보니 밖에서 보던 것만큼 좋지만은 않았다고 했습니다. 부인을 우선 당황하게 했던 것은 시어머니의 간섭이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수시로 신혼집을 드나들며 부인의 서툰 살림 솜씨를 지적하곤 했습니다. 반찬이나 빨래해놓은 것을 보면서 “네 어머니한테서 뭘 배운 거냐?"라고 하거나, 부인이 남편에게 사준 옷들에 대해서는 “남편이 힘들게 벌어온 돈을 이런 데다가 쓰니?”와 같은 말을 예사로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부인은 처음에는 자신이 예단 등을 충분히 해오지 못한 것 때문에 시어머니가 타박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그래도 우리 부부 사이엔 문제가 없으니까 조금만 참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넘기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참고만 있으니까 바보처럼 보였는지’, 시어머니의 ‘월권’이 점점 더 심해졌다고 했습니다.

결혼한 지 일 년쯤 되었을 무렵 부부가 출근한 집에 시어머니가 왔다 가셨는데, “옷장이 하도 지저분해서 정리 좀 해줬다” 면서 며느리인 부인의 속옷을 꺼내놓고 “이런 걸 어떻게입니? 버릴까 하다가 그래도 네 거니까 물어보고 버리려고 거기 놔뒀다.”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부인은 자신이 직접 시어머니에게 따져 말할 수는 없으니, 남편이 대신 나서서 대처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남편은 “어머니가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깊어서 그런지 좀 심하다는 건 나도 알아. 그런데 원래 그런 분을 우리가 어떻게 고치겠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알고 당신이 좀 참아주면 안 돼? 내가 더 잘할게.”라고 말할 뿐이었다고 했습니다.

부인은 남편이 효자인 것은 좋은데, 자신은 그런 남편과 사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를 상담자에게 듣고 싶어 했습니다.

사실 필자는 이보다도 훨씬 심한 사례를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이 정도라도 말해주는 남편도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인 역시 그런 남편에게 적잖게 실망했지만, 나름대로 좀 더 참고 지내려고 했습니다.(다음편에 계속...)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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