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박은혜의 4차산업혁명 이야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인 로봇의 시대가 머지않았다. 우리가 로봇이라는 존재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중요한 이유들 중 하나는, 로봇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나 두려움 때문이다. 과연 로봇과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어떤 과학자는 로봇에 이름을 붙이고 애정을 주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는가 하면, 또 다른 과학자는 그것을 경멸하기도 한다. 서로를 모방하는 관계에 있어서도 로봇이 사람을 모방하기도 하지만, 사람 역시 신체를 바꾼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로봇을 모방해 간다고 말할 수 있다. 흔히 공상과학 소설에서처럼 로봇은 과연 인간에게 위험한 존재가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을 때, 결론부터 말하자면 로봇이 군대를 일으켜 인간을 공격하거나 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로봇의 위험성은 오히려 인간과 같이 생활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요소들의 문제인 것이다.

로봇과 우리의 관계,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삶

로봇 공학자들이 생각하는 미래는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와는 차이를 가지고 있다. 로봇 공학은 마치 인간의 진화처럼, 더 나은 부분을 취사선택하면서 빠르게 발전해가고 있다. 인간의 삶에서 점차 로봇이 차지하는 비중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빠른 변화 속에서 과연 로봇이 우리의 시중을 들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로봇의 시중을 들게 될 것인지, ‘로봇공학이 나아가는 방향은 과연 어디인가’에 관한 질문을 던지며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로봇은 이미 옛날부터 차 시중을 드는 기계, 춤을 추는 기계들로서 존재해 왔다. 종교적 존재였던 골렘이라든지, 혹은 소설 프랑켄슈타인 같은 이야기 속에서도 존재해 왔다. 로봇이란 단어는 1920년 카렐 차펙이 「RUR」이라는 희곡을 쓰면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대에 들어서는 공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로봇뿐만 아니라, 1940년대 이후부터는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도 시작되었다. 이제 로봇은 생각을 한다. 그러나 로봇이 가지는 생각의 수준은 작업 내용에 따라 얼마나 혹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가 결정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휴머노이드, 즉 인간을 닮은 로봇 역시 이러한 인간의 예측불가능성을 따르기도 한다. 실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더욱 인간과 유사해지는 더 높은 차원의 기술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로봇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으며,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관한 문제가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가 곧 다가오고 있다.

이제 우리는 로봇 공학을 통해서 새로운 삶이라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로봇 전문가들에게 미래는 놀라운 상상력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그러나 다른 일각에선 이러한 기술들은 우리 정도의 지적 수준을 가진 종족에게 너무 과도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대량 살상 무기가 쉽게 보편화 될 지도 모르고, 나노기술의 발달로 인해 사람들의 사생활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로봇고양이와 함께 비행기에 탑승을 하려던 승객이 탑승을 거부당하는 일이 벌어진 적도 있다. 어떤 전문가들은 ‘생물학적 종으로서의 호모사피엔스는 사라지고, 새로운 종족인 사이보그가 이것을 대체할 것이다’라고까지 말한 바 있다. 로봇이 지구상의 유기제와 대립관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와의 결합을 지향하게 될 것이란 말이다.(다음편에 계속)

[박은혜 칼럼니스트]
서울대학교 교육공학 석사과정
전 성산효대학원대학교부설 순복음성산신학교 고전어강사
자유림출판 편집팀장
문학광장 등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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