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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까지 30분’, 시나리오, 음악, 색감의 감동 3박자 [유진모 칼럼]

기사승인 20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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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안녕까지 30분’(하기와라 켄타로 감독)은 추억과 시간에 관한 영화다. 록 무비처럼 화려한 음악이 펼쳐져 귀를 호강시켜주는 한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지표를 잃은 현대 젊은이들에게 방향 표시등을 켜준다. 2013년 고교 3학년 아키는 친구들과 링고 페스티벌에 갔다 카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아키를 리더로 5인조 록밴드 에콜이 결성돼 링고 페스티벌을 목표로 매일 트레이닝을 한다. 아키는 카세트테이프에 음악을 녹음해 카나에게 선물해 주는 한편 자작곡 역시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는 버릇이 있다. 2018년 평소처럼 카세트 플레이어를 들으며 길을 걷던 그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1년 후. 22살의 대학 4년생 소타는 중학교 때 피아노 교사였던 엄마를 잃고 아버지와 둘이 살며 수시로 취업 면접시험을 치르지만 매번 불합격한다. 소심한 성격 탓이다. 그날도 면접에서 떨어진 뒤 폐수영장을 홀로 거닐던 그는 오래된 카세트 플레이어를 발견하고 플레이 버튼을 누른 뒤 기함한다.

플레이어가 작동하는 30분 동안 죽은 아키의 영혼이 소타의 몸을 빌려 환생하는 것. 게다가 아키의 영혼은 유일하게 소타의 눈에만 보인다. 그렇게 두 존재의 공존이 시작되고, 아키는 소타를 통해 카나와 밴드 멤버들을 만난다. 멤버들은 밴드를 해체한 뒤 식당, 막노동, 레슨 등으로 생계를 잇고 있다.

멤버들과 카나는 아키가 들어간 소타를 미친놈 취급하지만 엄마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피아노 연주 솜씨가 뛰어난 소타는 아키의 도움까지 받아 상당한 수준의 음악성을 보여 멤버들을 사로잡게 된다. 카나 역시 순수하면서도 어딘지 아키의 그림자가 엿보이는 소타에게 점점 이끌려 데이트까지 한다.

멤버들은 소타와 무대에 서본 뒤 그의 출중한 실력에 자신감을 얻어 밴드를 재결성하고, 그들의 실력에 반한 매니저까지 생겨 링고 페스티벌에 설 기회를 얻는다. 그들은 카나까지 합류시켜야 완전한 밴드가 된다는 생각에 카세트에 소타가 작곡한 신곡을 녹음해 소타를 통해 카나에게 전달하려 한다.

한편 카세트 플레이어를 재생해 아키가 소타의 몸을 빌리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영혼이 바뀌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소타가 카세트테이프를 보자 절반 이상이 투명해졌다. 그걸로 미뤄 플레이어를 몇 번만 더 재생하면 아키의 영혼은 사라질 것이 뻔해 소타는 재생 버튼 누르는 걸 거부하려 하는데.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크게 장 자크 루소, 추억, 그리고 시간이다. 소타의 교수는 대놓고 루소를 말한다. 루소는 일반의지, 문명 비판, 모순으로 대표된다. 이 작품의 일반의지(공동의 이익)는 에콜 멤버 5명과 소타의 최선책이다. 에콜은 행복했지만 아키의 죽음으로 4명의 인생이 크게 바뀌었다.

카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키가 생각나기 때문에 미친 듯이 달리거나 무심하게 일을 한다. 나머지 셋은 작곡과 가창 실력이 떨어지기에 밴드를 지속할 수 없어 돈을 버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소심해서 친구나 연인을 사귀는 걸 피해 산 소타는 전형적인 ‘루저’로서 앞날이 불투명하긴 마찬가지.

그러나 소타가 아키의 카세트 플레이어를 손에 쥠으로써 저승에 못 가고 이승을 떠돌던 아키도, 소타도, 카나도, 나머지 셋도 모두 희망을 품게 된다. 아키는 생전에 그토록 서고 싶었던 링고 페스티벌 무대에 설 수 있고, 멤버들은 에콜을 재결성하며, 소타는 음악을 하며 취업도 꿈꿀 수 있게 된다.

루소의 문병 비판은 인간은 원래 선했지만 문명적인 사회생활로 인해 악해졌으니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주장이다. 소타는 중고생 때 원하지 않았지만 선생의 권유로 인해 친구들의 동정을 받고 살아왔다. 그게 싫어 그는 친구나 연인 사귀는 걸 거부한 채 홀로 폐수영장에서 별을 세거나 작곡을 했다.

CD도 구시대의 유물이 돼버린 이 시대에 카세트테이프가 중요한 저장 매체로 등장하는 건 바로 루소의 자연회귀주의, 즉 아날로그 정서다. 교육의 바이블이 된 ‘에밀’을 쓴 루소는 그러나 정작 자신의 다섯 자식은 고아원에 맡겼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모순을 의미한다. 소타와 아키의 만남이 그렇다.

소타는 자기 몸을 아키에게 무기한 빌려주노라 약속하고, 아키는 수시로 소타의 몸을 빌어 에콜 멤버들과 연주하고, 카나와 데이트를 한다. 하지만 그 횟수와 시간이 늘수록 아키의 영혼은 점점 희미해져가고, 카나는 소타에게 호감을 품게 된다. 소타와 카나의 데이트를 바라보는 아키는 모순이다.

그런데 루소는 낭만주의자다. 현실성 없는 열정적 몽상가다. ‘미쳐버린 디오게네스의 개’다. 매우 현실주의적이었던 소타는 아키의 영혼으로 인해 자신의 내면에 갈무리했던 음악성을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게 된다. 그 열정과 낭만은 ‘연인은 가성비 꽝’이라던 믿음을 깨고 카나를 사랑하게 만든다.

루소는 다양한 직업을 가졌었는데 한때 악보 필경사도 했다는 건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주인공들의 직업이 록 밴드이기에 루소가 거론된 것이다. 죽는 별을 뜻하는 초신성을 설명하는 강의가 나오는 것도 자연주의적 루소다. 별은 잡을 수 없는 비현실이지만 정서적 친구로서 희망이 돼준다.

소타는 아키의 영혼이 영혼이 아니라 추억이라고 깨닫는다. 생전의 아키는 한 개의 카세트테이프에 계속 반복해서 녹음을 했다. 즉 앞서 녹음한 음악이 지워지고 계속해서 다른 음악이 덧씌워진 것. 하지만 주인공들은 새로운 음악에 덮여 지워진 음악은 사라진 게 아니라 추억으로 남았다고 깨닫는다.

추억과 시간이다. 사람은 기억하는 만큼 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문으로 쫓겨난 추억은 나도 모르는 사이 창문 틈새로 기어들어와 다시 기억이 되곤 한다. 소타는 아키와 그의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그걸 깨닫게 된다. 카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키를 못 잊는 건 아키를 기쁘게 하는 게 아니란 걸.

아키는 수시로 ‘내게 열지 못할 문은 없다’라고 언명한다. 불가능은 없다는 이 테제가 사랑하는 카나를 두고 떠난 그리움, 링고 무대에 서지 못한 아쉬움을 모두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딱 한 번 준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키의 주의주의는 소타라는 소심한 ‘N포세대 루저’의 낭만주의를 되살려줬다.

추억과 시간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존재자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을 통해 ‘사람이란 현존재는 죽음으로 맞을 도래적 존재에 의해 본래적 존재로 되돌아가는 시간성으로 존재한다’고 언술했다. 이 작품은 그 어려운 논증을 ‘추억이란 시간에 의해 지워지지 않고 저장된다’고 설명한다.

그건 카나가 엄마와 함께 운영하는 헌책방에서의 거풍과도 연결된다. 쌓아둔 책을 양지바른 곳에 펼쳐놓고 숨을 쉬게 만드는 이 행위는 바로 잊힌 기억을 되살리는 추억의 습작인 셈이다. 세 주인공을 연결하는 시나리오도, 그들 배경의 색감도, 에콜의 음악까지도 아름다운 판타지 영화다. 14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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