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훈아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나훈아가 15년 만에 KBS에 출연한다고 해서 화제다. MBC에 출연한 지는 14년 됐다. 나훈아는 TV는 물론 대중 매체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 대표적인 스타다. 안성기는 지금까지 드라마에 단 한 번도 출연한 적이 없다. 조용필과 서태지는 ‘선언’까지는 안 했지만 노골적으로 TV 출연을 멀리해왔다.

나훈아, 조용필, 서태지는 초기에 TV를 통해 활동 무대를 가졌고 그래서 인기를 높인 대표적인 스타다. 그런데 왜 정상에 올라간 뒤 TV를 꺼렸을까? 안성기는 왜 평생 영화에만 출연했고, 앞으로도 드라마 출연 계획이 없을까? 정우성과 황정민이 TV 드라마에 출연하는 게 왜 그토록 화제가 될까?

KBS와 MBC는 1961년, 1969년에 각각 개국했고 컬러 TV는 1980년 12월 1일부터 방송이 시작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영화와 공연이 펼쳐지는 극장이 꽤 강세를 보였지만 컬러 TV의 보급 이후 판세는 급격하게 바뀌었다. 연예인은 TV를 통해 유명세를 높임으로써 밤무대 개런티를 높일 수 있었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껌값’의 방송 출연료는 문제가 안 됐다. 드라마나 쇼를 통해 지명도와 인기를 높여 밤무대나 행사 개런티를 상향 조정했고, CF에도 출연할 수 있었다. 특히 연말의 10대 가수상은 가수에게 최고의 영광이자 밤무대 개런티에서 고점을 찍을 수 있는 기회였기에 경쟁이 치열했다.

1980년대를 휩쓴 조용필은 아마 그런 케이스의 최대 수혜자였을 것이다. 그런데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를 기점으로 TV에서 그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당시 댄스뮤직의 최고봉에 오른 서태지 역시 방송 출연 중단과 더불어 새 앨범 준비 단계의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 송강호(오른쪽)와 봉준호 감독.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런 변화는 가수의 주된 수입원이 밤무대 개런티에서 앨범 판매 및 저작권료로 옮겨가면서 자연스레 형성됐다. 또한 매체의 다양화로 지상파 TV가 홍보의 최고 효과를 보장하는 시대가 마감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케이블TV가 정착함으로써 대중음악 전문 채널이 자리를 잡은 것도 한몫 크게 했다.

배우의 경우는 약간의 자존심 혹은 편견이 개입된 걸 부인할 수 없다. 시장 규모에서 우리나라와 비교도 안 되는 미국의 경우도 영화배우는 따로 ‘Movie star’라고 구분한다. TV 드라마를 통해 성공한 배우는 자연스레 영화로 진출하는데 드라마로 복귀하는 경우는 드물고 쇼에 출연하는 정도다.

물론 모두 그런 건 아니다. 한동안 드라마와 거리를 뒀던 장동건이나 전도연 같은 ‘탤런트 출신 영화배우’들이 드라마 출연을 병행하는 게 대표적. 이는 외주 제작의 활성화로 드라마의 완성도와 스케일이 웬만한 영화를 뛰어넘을 정도로 급성장한 데다 TV라는 접근성은 여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개런티도 무시 못 한다. 주연배우의 경우 1년에 3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하는 건 터부다. 편당 10억 원 기준 연 수익은 20억 원. 드라마 미니시리즈는 보통 1시간 10분 기준 20회로 보는데 톱스타는 회당 1억 원 정도 받는다. 1년에 영화 2편 찍나, 미니시리즈 한 편 찍나 돈 버는 건 별 다를 바 없다.

단, CF라는 부수입을 놓고 볼 땐 드라마에서 가능성이 더 높다. 물론 여기서도 예외는 있다. 안성기는 드라마 경력 한 편도 없이 그 나이에 아직도 광고업계에선 스테디 셀러다. 원빈은 영화 ‘아저씨’(2010) 이후 ‘백수’지만 꾸준히 CF로 큰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굳이 드라마에 출연할 이유가 없다.

▲ 안성기. 영화 '종이꽃' 스틸.

TV는 인기와 돈벌이만 놓고 본다면 가장 확률과 가능성이 높고, 비교적 운신의 폭이 넓은 매체다. 그러나 자신의 예술 세계가 까다로운 연예인에게 있어서는 불편한 ‘동네’다. 나훈아는 콘서트에 오케스트라를 동원하고, 조용필도 그에 못지않은 자신의 대형 밴드와 어우러져 사운드의 향연을 펼친다.

그들에게 있어서 방송사의 작은 스튜디오와 그런 작은 쇼에 길들여져 타성에 젖은 PD들의 연출은 양에 안 차기 십상이다. 혹여 PD 자체의 역량이 뛰어나더라도 환경과 여건이 그에 따르지 못하기 마련. 이미 먹고살 만큼 벌었고, 유명세도 누릴 만큼 누린 그들에겐 돈 몇 푼보다 자존심이 중요하다.

나훈아가 KBS2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에 출연하며 개런티를 단 한 푼도 안 받았다는 게 그 증거다. 그들은 자신들을 지금까지 지탱해 준 팬들에게 완벽에 가까운 음악을 서비스함으로써 보은함과 동시에 자신들이 그 정도 수준의 뮤지션이란 걸 입증하는 게 최종 목적이다.

영화만 고집하는 배우도 그와 비슷한 심리다. 시청자는 매달 소정의 TV 수신료만 지불하면 무제한의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다. 차를 타거나 발품을 팔 필요 없이 거실 소파에 누워 리모컨만 누르면 된다. 하지만 영화는 각종 정보를 통해 고르고 이동해 표를 끊은 뒤 심지어 웬만큼 기다려야 한다.

안성기, 송강호, 박해일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자신들의 희소가치를 입증하는 동시에 그들을 만들어 준 팬들의 선택이 그르지 않음을 담보해 주기 위해 고집을 지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아집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일관성의 가치는 있다.

고대 밀레토스학파에서 시작된 일원론은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를 거쳐 계승되고 있다. 코로나19가 바꾼 대중문화 감상의 패러다임을 통해 이제 영화와 드라마와 콘서트, 그리고 TV와 극장이 일원론 아래 크로스오버 되며 합일화를 시도하고 있다. TV 관계자들의 사상이 크게 바뀔 때가 됐다는 것.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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