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픽사베이

[미디어파인 칼럼=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초등학교 미술 교사인 딸과 대학 재학 중인 아들 남매가 부모님의 이혼을 막아달라며 부모님의 상담을 요청해왔습니다. 남매는 자신들이 어렸을 때 아버지는 물론 조부모와 본가 친척들이 어머니에게 잘못한 것이 너무 많아서 어머니를 불쌍하게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아버지가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함부로 대하고 화를 참지 못하여 싸움이 그치지 않아 이혼 위기까지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삼 형제의 중간이지만, 형을 대신해서 자신이 집안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집안의 대소사에 찾아다니고, 부인의 의견을 구하지 않은 채 경제적 부담을 떠안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몇 해 전 퇴직을 하기 전까지 대기업에 근무했는데, 여러 이유로 술자리도 잦았고, 유흥업소 여성과 잠자리를 가졌다가 부인에게 성병을 감염시킨 적도 몇 차례 있었다고 합니다. 또 집안일은 부인에게 맡겼다가 뭔가 잘못되면 부인을 타박했고, 언어로나 신체적으로 폭력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동안 부인의 힘들다는 것과 불만을 무시하며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되는 건 줄 알았다. 퇴직하면서 받은 돈은 주식과 형제나 친구들 사업에 투자했다가, 거의 되돌려 받지 못했다. 내 잘못된 판단 때문이지만, 난들 날리고 싶어서 그랬겠나? 늦은 줄 알지만 그런 일들을 후회하고 있으며, 사과도 여러 번 했는데, 이제 와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부인은 이혼하려 해도 받을 돈이 없다며 화를 내는데, 사실 그 돈이 있었으면 진작 이혼을 당했을 거 같다.

부인은 나에게 밥 차려주는 것도 싫어하고, 내가 집에 있는 것도 참지 못한다. 나를 보면 옛날 일들이 생각나서 퍼붓게 된다며 어디 좀 가 있으라는데, 사실 하루 종일 어디 가 있을 데도 없다. 내가 잘못한 것은 인정하지만, 이 나이에 이런 대접을 받으며 산다는 게 너무 비참하다.”

부인은 2남 2녀의 막내였는데, 그다지 귀여움을 받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친정 부모는 자녀들을 빨리 독립시키고 자신들끼리 편하게 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형제들 간에도 우애가 별로 깊지 않다고 했습니다.

▲ 사진 출처=픽사베이

그런데 시댁 식구들 분위기는 정반대로, 뭐든지 함께 해야 한다는 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것이 좋아 보였지만, 나중에는 견디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시부모는 무슨 일마다 자녀들을 오게 하거나 또 자신들 집에 불쑥 찾아오기도 했고, 또 자신은 모르게 아들과 연락해서 돈도 많이 갖다 쓰셨습니다. 큰 동서는 시아주버니가 감싸니까 시집에 와도 자기 역할 안 하고 편하게 손님 노릇만 하고 가는데, 자신은 몇 배 잘하고도 칭찬 한번 듣지 못했다고도 했습니다.

부인은 “신혼여행 다녀오니, 시댁 어른들과 형제들이 모두 와 있는데, 친정에서 폐백이나 이바지 음식 등 보낸 것에 대해서 ‘딸 싸게 시집보낸다’며 웃고 떠들고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런 일 말고도 뭐든지 잘 되면 자기들 탓, 잘못되면 내 탓을 하는데, 남편은 지금껏 한 번도 내 편을 들어준 적 없다. 남편이 바람피우고 다니는 거 알게 됐을 때나 남편에게 맞은 후에도 시부모는 물론 친정 부모에게도 위로받지 못했다. 나는 이 집에서 평생 식모나 하녀 노릇만 하며 살았다. 이제 내 할 일이 끝났으니 이혼해서 편히 좀 살게 해달라는 건데, 남편은 그동안 자기 부모 형제에게 퍼주느라 남은 재산도 없고 연금도 나누어 살 정도가 되지 않아 이혼할 수도 없다고 한다. 그러면 내 청춘은 누구에게 돌려 달라고 해야 하는 거냐?"라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오랫동안 가정과 사회에서 차별과 억압을 받으며 살아왔던 것이 사실인데, 이런 여성들의 쌓인 분노와 한을 적절하게 해결하지 못할 때 문제가 더 심각해집니다. 흔히들 이들에게 “이제 다 지난 일인데 어떡하느냐? 억울한 줄 알지만 조금 더 참아라.” 또는 “그건 사실을 너무 과장하는 거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잘못을 더하여 상황을 더 악화시키곤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황혼 이혼’으로 이어지기 십상이고, 나아가 가정의 안정과 개인의 노후 생활을 위협하는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 대해서는 ‘분노’라는 감정의 폭발을 막으려고 하는 대신에 적절하게 발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하여 심리적 상처에 대한 보상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현실적이고 건설적인 해결을 의논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사진 출처=픽사베이

저는 우선 부인의 분노에 대해서 ‘옳다’는 강한 지지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화를 폭발하는 것이 부인 자신에게도 해롭다는 것을 이해시켜서 약물치료를 병행하도록 했습니다. 또 화를 산발적으로 터뜨리는 대신에 그 상황들을 기록하였다가, 하루 중 정해진 시간에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그것을 읽도록 했습니다. 이때 남편과 자녀들은‘무조건’ 부인의 편이 되어 남편 자신과 본가 식구들에 대해서 함께 욕을 하고, 부인에게는 ‘옳다’ 또는 ‘잘했다’고 말해주도록 과제를 주었습니다.

아울러 남편에게는 자신이 반성하는 것을 부인이 확인할 수 있도록 집안일을 하거나, 부인이 자유 시간을 갖도록 매일 일정 시간에는 집을 벗어나 있도록 권했습니다. 또 자녀들에게는 부모님을 서둘러 화해시키려 하지 말고, 두 분을 따로 모시며 각자 행복감을 느끼도록 제안하였습니다.

이런 사례들은 통상 빨리 회복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부부는 물론 남매까지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다행히 잘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상담 시간에 두 부부는 ‘그동안 보였던 모습이 창피하다’면서 오시지 않았습니다.

남매는 “아직 다른 사이좋은 부모님들 정도는 아니지만, 예전처럼 불안하지는 않다. 아버지가 집안일을 하실 때 어머니가 뭐라고 잔소리를 하시기는 하지만, 그 날카로운 정도가 아주 많이 줄었다. 아버지도 어머니 말에 농담으로 대할 정도로 편해지셨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딸은 “그동안 부모님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결혼할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같으면 좋은 남자를 만나면 결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라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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