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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 한 대로 시작된 '평화시장' [백남우 칼럼]

기사승인 2020.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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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평화시장] 평화시장은 서울 동대문(흥인지문)과 동대문역사문화박물관(구 서울운동장) 사이 청계천 변 가까이에 형성된 전국 최대 규모의 의류전문 도매상가로 ‘평화’시장이 된 것은 한국전쟁 때 남쪽으로 내려온 북한 상인들이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뜻에서 붙인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다. 평화시장이 청계천 남쪽에 자리 잡게 된 것은 청계천 변 판자촌에서 ‘재봉틀’(미싱) 한두 대로 옷을 만들어 판매하던 데서 출발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청계천 변에서 노점상 형태로 의류를 제조·판매한 상인들의 약 60%가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이었다. 1958년 대화재로 판자촌이 사라졌고 그 후 1962년에 오늘날 건물과 유사한 현대식 건물이 들어섰으나 인근에는 여전히 판자촌이 남아 있어 여기로부터 유입된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여 가내수공업 형태의 의류제조업이 영세 업체들을 지탱시켰다. 그러나 하루 15시간 재봉질에 차 한 잔에 불과했던 일당. 당시 평화시장 영세업체를 지탱했던 10대 어린 여공들의 열악했던 작업은 근로조건을 개선해달라는 시위로 이어졌고 결국 청계피복 노조원이었던 22살 청년 재단사 전태일의 분신(1970년 11월 13일) 사건을 낳은 배경이 되었다.

평화시장은 1962년 2월 서울 중구 을지로 6가 17번지에 건축된 철근 콘크리트 3층 건물이다. 대지면적은 8,078.6㎡이고, 건물 연면적은 24,704.66㎡이다. 건물 길이만 600m가 넘어 1962년 건축 당시 단일 건물로는 세계 최장이라고까지 이야기되었다.

상가에는 2,070개의 점포가 있으며,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은 자영업자 1,800명을 포함해서 5,300명에 이른다. 상가의 1층에는 수십 개에 이르는 중고서적 가게가 입주해 있었다.

평화시장이 저렴한 가격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자, 인근에 통일 상가, 동화 상가 및 최근에는 두산타워, 밀리오레 등의 고층 의류전문상가건물까지 들어섰다. 이러한 상가들을 통틀어 동대문 상가라고 부르는데, 평화시장은 동대문 상가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판자촌에서 시작한 평화시장이 모태가 되어 고층 의류전문상가건물을 포함한 동대문상가로의 발전은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압축판이라 할 수 있다. 그 속엔 실향민과 수많은 노동자들 그리고 여전히 땀으로 하루를 여는 평화시장 사람들의 50여 년 뜨거운 삶이 스며있다.  

<평화시장 편> 프로그램 다시보기 : http://tvcast.naver.com/v/70487

tbs TV에서는 서울 일대에 남았거나 변형된 근현대문화유산을 주제로 서울의 역사․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제작하고 있으며, 프로그램은 네이버 TV(http://tv.naver.com/seoultime), 유튜브(검색어: 영상기록 시간을 품다) 또는 tbs 홈페이지에서 다시 볼 수 있다.

▲ tbs 백남우 영상콘텐츠부장

[수상 약력]
2013 미디어어워드 유료방송콘텐츠 다큐멘터리 부문 우수상 수상
2014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PP작품상 수상
2015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그리메상 지역부문 우수작품상 수상
2016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기획부문 대상 수상
2019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그리메상 다큐멘터리부문 우수작품상 수상

백남우 tbsTV 영상콘텐츠부장 .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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