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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설리-구하라도 평행이론? [유진모 칼럼]

기사승인 2020.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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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화면 갈무리.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지난 10일 방송된 MBC ‘다큐플렉스-설리가 왜 불편하셨나요?’의 후폭풍이 거세다. 방송 직후 고 설리의 연인이었던 최자에게 비난이 쏟아지더니 이번엔 고인의 어머니를 향한 화살이 날아왔다.

활시위를 당긴 저격수는 고인과 초등학교 때부터의 친구라고 주장하는 A 씨. 그는 지난 12일 SNS를 통해 “어떻게 당신께서는 아직까지도 그렇게 말씀을 하실 수 있는지 참 놀랍고 씁쓸하고 슬프다. 성인이 되고 얼마 안 됐을 때 저한테 진리(설리)가 물어보더라. 보통 엄마들은 딸의 미래를 위해 저축을 해주시는지”라며 고인의 어머니를 비난했다.

그는 “진리가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일하며 모은 돈의 관리를 엄마한테 모두 맡기고 용돈을 받았는데 엄마한테 물어보니 모아둔 돈이 하나도 없다더라’고 말하더라.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가불을 받아서 쓰신 것 같다고 하더라. 어떻게 딸의 미래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주지 않았는지 너무 상처라고 했다”라고 주장했다.

고인의 어머니는 생전에 인연을 끊은 이유가 14살이나 많은 최자와 사귀었기 때문이라는 뉘앙스로 인터뷰를 했다. 그러나 A 씨는 “설리가 성인이 된 후 수입 관리를 직접 했기 때문에 엄마가 화나서 인연을 끊은 것”이라고 그 내용을 뒤집었다.

설리는 지난해 10월 25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다큐플렉스’는 아름다운 그녀를 재조명하며, ‘관종’으로 오해를 사기도 했던 그녀의 솔직한 삶을 소개하면서 이 사회가 왜 꽃다운 청춘의 목숨을 앗아가는지 경종을 울리려는 노력을 보였지만 다소 편향적이었다는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측면에서 A 씨의 주장은 향후 고인에 대한 프로그램을 제작할 방송이나 기사화할 언론이 주목하고 재확인해 볼 필요는 있겠다. 생전에 고인과 절친했던, 고인이 세상을 떠나고 한 달 만에 같은 선택을 한 고 구하라(사망 당시 28살)의 어머니의 행보 때문이기도 하다.

구하라가 9살 되던 해 친모는 집을 나간 뒤 연락을 끊었고, 아버지는 건설일 때문에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그래서 두 살 많은 오빠와 함께 구하라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러니 남매는 엄마하고 전혀 교류가 없었을 수밖에. 다만 구하라가 옛 연인과의 불미스러운 일로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기 힘들어 우울증 치료를 받았을 때 의료진의 권고에 따라 친모에게 연락한 게 교류의 전부라고.

그런데 그런 친모가 구하라의 빈소에 갑자기 나타나 상주복을 입겠다고 하는가 하면 변호사를 통해 재산의 절반을 상속받겠다고 나서 고인의 오빠에게 깊은 상실감을 안겨줬다.

현행법에 따르면 고인의 재산의 상속권은 친부와 친모 두 사람에게 절반씩 있다. 친부는 자신의 상속권을 구하라의 오빠에게 양도했다. 구하라의 오빠는 엄마의 상속권을 인정할 수 없다며 일명 ‘구하라법’ 입법을 위해 분투 중이다.

물론 설리의 케이스는 이런 상속 분쟁 등 돈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투쟁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다큐플렉스’로 인해 최자에게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결정적으로 도화선 역할을 한 ‘다큐플렉스’ 제작진이 편향되지 않고 자의적이지 않은 공정한 후속편을 만드는 걸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있다고 보인다.

구하라의 오빠가 격앙된 이유는 부모로서 어린 자녀에게 부양과 보호의 의무를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자식이 죽고 나자 부모라는 혈연을 앞세워 자식의 ‘피’와 같은 유산을 상속받겠다고 하는 게 과연 도덕적, 인간적 측면에서 가당키나 한 것이냐는 불만에 있다.

인식론은 제각각이므로 현행법을 지지하는 이도, 구하라의 오빠의 의견이 옳다는 이도 있을 듯하다. 법도 결국 인간이 만든다. 인간이 완벽하지 못한 존재라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법의 기준 역시 시대에 따라 변한다. 구하라의 오빠의 주장에 대해 헌법재판소나 국회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A 씨의 주장과 고인의 엄마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 설리 모녀도 5년 넘게 인연을 끊고 살아왔다. 최소한 부모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그런 절연의 주체는 보통 부모지 자식인 경우는 드물다.

절연의 이유에 자식의 방종이나 패륜이 있을 수도 있지만 현대엔 그 반대의 케이스도 종종 발견된다. 과거의 인습과 통속에 길들여진 구세대는 변화를 강하게 거부하지만 젊은이들은 현재의 패러다임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만약 설리의 엄마의 주장대로 14살 많은 남자와 교제한 이유로 딸과 절연했다고 하더라도 결코 ‘부모스럽지’ 않아 보인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과거엔 그저 타성에 젖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이 시대는 그렇지 않다. 결혼과 출산 등을 포기한 ‘N포세대’를 보면 시대가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젠 결혼에 대한 새로운 담론이 사회 구석구석에 침투해 있다. 구세대가 결혼이 매우 편리하고 당연한 제도라며 무조건적, 무비판적, 관성적으로 받아들였다면 합리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한 내일의 주인공들은 ‘먹방’과 ‘소확행’과 ‘미니멀리즘’의 대유행에서 보듯 결혼에 회의적이거나 냉소적이다.

거듭 지적하자면 설리의 엄마가 설리에게 절연을 선언할 수는 있다. 반대로 설리가 엄마를 상대로 그럴 수도 있다. 단, 딸이 엄마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와 교제한다고 해서 그걸 빌미로 절연을 선언하는 엄마는 전혀 ‘부모스럽지’ 못하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자식의 인생은 자식이 사는 것이지 엄마가 대신 살아 줄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또한 자식의 인생은 부모가 아쉬워하는 자신의 지난 인생에 대한 보상심리로서 대리만족을 얻기 위한 대리 인생이 돼서도 안 된다.

플라톤은 자식을 낳으면 부모와 단절해 국가가 탄탄한 커리큘럼으로 아이를 부양하고 교육하는 공동생활체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아이들이 공공선과 도덕성을 제대로 갖춘 올바른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성장해 보다 더 나은 개인의 삶을 누리면서 국가에 헌신하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이는 부모보다 자식이 중요하다는 명약관화한 취지다. 중국 속담에 장강의 물은 항상 새로운 물에 밀려나게 돼있다는 게 있다. 부모는 새로운 세대를 만들기 위한 밑거름이지 그 주체는 아니다. 그렇게 자란 자식 또한 그런 부모가 되므로. 그게 후성규칙이고 자연의 섭리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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