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픽사베이

[미디어파인 칼럼=한의사 홍무석의 일사일침(一事一針)] 10년 전쯤 친구 아버님이 임종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병실에서 오랫동안 남편(친구 아버님)을 지켜오던 아내(친구 어머니)가 더 이상 남편의 회복을 어렵다고 판단한 즈음, 남편 귀에다 대고 주위 사람들이 알아들을 만큼의 큰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여봐요, 그동안 내가 섭섭하고 서운하게 했더라도 다 잊어버려요. 당신은 좋은 세상으로 분명히 갈 테니 걱정 말아요. 수고했어요...” 부인은 간절했는데, 남편은 대답도 없이 며칠 후 타계했다.

얘기를 전한 친구가 한의사인 나에게 “어머니의 마지막 얘기를 아버님은 들었을까”하고 물었을 때 “아버님이 분명히 들으셨을 것”이라고 말해줬다. 귀는 사람이 죽을 때 제일 늦게 닫히는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속설같이 들리겠지만 실제로 의사들은 죽기 직전까지 청각은 살아있기 때문에 환자에게 계속 말을 걸어주라고 권한다. 심지어 식물인간 판정을 받았던 환자가 2달 만에 기적적으로 깨어났는데, 자신이 식물인간 상태였던 때 들었던 대화들을 기억한 사례도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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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제 학술지에도 유사한 연구결과가 보고 됐다. 의식불명인 상태로 생의 마지막을 맞는 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연구 보고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의 로렌스 워드 교수 연구진은 “사망 직전의 환자도 일반인과 똑같이 뇌가 소리에 반응했다”고 밝혔다.

사망 직전의 사람이 청각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보는 첫 실험이었는데, 말기치료 환자 13명의 가족 동의를 얻어 의식불명 환자의 뇌파를 측정했다. 그랬더니 정상인과 의식불명의 환자가 소리 자극에 거의 같은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특히 가족의 목소리는 치료효과도 있어 전화로라도 인사를 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연구결과는 전한다. 가족의 목소리를 들은 환자는 모두 뇌 반응이 증가했다는 게 수치로 나타난 것이다.

캐나다 연구진의 보고는 인간의 감정이 정신(뇌)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한의학에서도 감정을 병의 원인을 보는 오랜 전통이 있다. 바로 칠정(七情)인데, 유학에서 말하는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이 아니라 희노우사비경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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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喜) 기뻐하는 것, 노(怒) 성내는 것, 우(憂) 우울해 하는 것, 사(思) 근심하는 것, 비(悲) 슬퍼하는 것, 경(驚) 놀라는 것, 공(恐) 겁내는 것 등 7가지의 정서 상태를 통틀어서 칠정이라고 한다. 칠정이 지나치면 장부 기혈에 영향을 주어서 병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옛 의학서에 보면 울체(鬱滯)라는 표현이 나온다. 기(氣·에너지)나 혈(血·피)이 퍼지지 못하고 한 곳에 몰려서 머물러 있는 것을 말한다. 화가 나면 목구멍이 실타래 막힌 거 같거나 목 밑에 매실 열매가 걸린 거 같다는 환자들은 답답함을 표현하곤 한다.

울체되면 통증이 있고 지각이 둔해지며 마비가 오고 어혈 등이 생긴다고 했다. 요즘으로 얘기하면 스트레스 때문에 병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 병의 원인이 되는 감정을 다스려야 하고, 아무리 의식불명의 환자라 하더라도 사랑의 목소리를 전해야 하는 셈이다.

수도권에서 코로나 감염이 확산되면서 10명 이상의 집회를 금지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에 해당하는 조치가 내려져 심리적으로 우울해지는 ‘코로나 블루’도 계속될 전망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전하며 ‘심리적 방역’을 펴는 것도 절실한 때이다.

▲ 한의사 홍무석

[홍무석 한의사]
원광대학교 한의과 대학 졸업
로담한의원 강남점 대표원장
대한한방피부 미용학과 정회원
대한약침학회 정회원
대한통증제형학회 정회원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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