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김자현의 詩詩한 이야기] 십시일반(十匙一飯). 열 사람이 한 술씩 보태면 한 사람 먹을 분량이 된다는 뜻으로, 사람살이의 정이 묻어나는 말이다. 그러나 단지 ‘시匙(숟가락 시)’ 한 글자를 ‘시屍(주검 시)’자로 바꾸면, 정은 온데간데없고 뜻이 무섭다. 열사람의 주검이 모여 하나의 밥그릇을 만든다는 말. 장난이라 우습고, 웃을 수만은 없어 아픈 말이다.

1년 전, 자취를 시작했다. 자취방에서 큰길까지의 골목을 따라 5개의 슈퍼마켓이 있었다. 자취방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이름 없는 구멍가게와 월드마트, 다래마트, 플러스마트, 롯데마트 999.

구멍가게는 주인할머니가 또래 할머니들과 담소를 나누는 마실 장소에 가까웠다. 그 집이 먹고사는 일과 크게 상관이 없을 듯한 규모의 가게는, 간판 없이 라면 같은 물건들을 조금 두고 팔았다. 반면 아예 대로변에 위치한 롯데마트999는 힘주어 물건을 팔았다. 늘 할인을 써 붙여 두었으므로 늘 사람이 많았다. 그러므로 5개의 슈퍼마켓 중에 비교 범위를 벗어나는 구멍가게와 롯데마트999를 제하면 엇비슷한 규모의 세 슈퍼마켓이 남아 제각기 물건을 팔았다. 그중에서도 목이 좋은 월드마트는 손님이 좀 있는 편이었고, 그마저도 따라주지 않은 다래마트와 플러스마트는 병처럼 불황을 앓았다. 불황을 앓았으므로 할인을 할 여력이 없었고, 할인을 할 여력이 없으므로 불황은 더 깊어졌다. 그리고 작년 말, 다래마트가 문을 닫았다.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플러스마트도 문을 열지 않았다. 그 자리마다 대기업의 상호를 단 편의점이 쌍둥이처럼 들어섰다.

사장님들은 점주님들이 되었다. 본사의 영업규칙은 그들의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이제 점주님들은 파란 조끼를 걸치고 사용할 할인카드가 있는지 묻곤 한다. 가게의 조명은 전보다 밝고, 상품의 진열도 더욱 고르다. 오가는 손님이 눈에 띄게 늘었다. 불황은 치유되는 듯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이 꼭 전부인 것은 아니다. 상식적으론 손님이 는 만큼 벌이가 같이 늘어야 맞는 것 같으나, 사실 그러긴 어려운 영업구조다. 매일매일 본사에 매출을 입금하고, 본사가 원가, 전기세 등을 제하고 순수익의 30%정도를 가져간다. 프랜차이즈 로열티를 지불하고, 24시간을 운영해야하니 추가로 사람을 쓰고 나면 다시 밥벌이는 힘이 든다. 밸런타인데이와 같은 기념일이면 포장된 초콜릿 등 기념품 판매물량이 과도하게 들어오고, 또 팔아야하니 압박마저도 심하다. 건물주가 아니라면 여기에 임대료까지 부담해야한다. 한강변 같은 유흥지가 아닌 이상, 주거지 골목골목에 자리한 편의점은 운영이 만만치 않다.

설상가상으로 전국적으로 편의점 개수는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지난해만 전국에 2700여개의 편의점이 새로 생겨났다. 편의점 각사의 점포수를 셈하여 볼 때, 지금 편의점 수는 3만개에 육박한다. 당연히 일선 편의점의 점포당 수익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맹사업법 개정안으로 24시간 영업을 강제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야간영업을 쉽사리 포기할 수도 없는 이유다. 편의점의 ‘눈에 띄는 성장’이 본사의 말일 뿐, 점포들은 점점 더 경쟁 속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렇듯 편의점 점주들이 나름 나름으로 어려운 사정에 시달리는 중에, 그나마 사정이 나아보였던 우리 동네 월드마트도 위기다. 가까운 편의점들의 등장으로 나날이 장사가 힘들어지고 있을 터. 이는 선의의 경쟁도 아닌 채, 골목을 낀 이웃가게들 끼리 서로 더 어려워지고만 있는 상황이 아닌가. 골목상권의 당사자들은 서로 가해자가 되고 동시에 피해자가 된다. 그 속에서 가맹점을 늘리면 무조건 수익이 느는 가맹본사만 끊임없이 배가 부르다.

이제 편의점이 ‘대세’라서 더욱 더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나의 편의는 더해질 것이다. 그러나 주변의 삶이 나아졌다는 얘기를 듣기는 여전히 힘들 것이고, 그저 남의 밥그릇 얘기일 것인데, 나날이 이 골목골목은 삭막해져서 십시일반十屍一飯, 기어코 열 명의 주검이 차곡차곡 모여 한 그릇 밥이 완성되는가. 그 밥을 떠먹는 자는 누구인가. 이 골목의 밥그릇은 눈물겹고 또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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