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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리움’, 기발한 착상이 만든 엄청난 공포 [유진모 칼럼]

기사승인 20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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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비바리움’은 각본을 쓰고 연출한 로어칸 피네건 감독의 아이디어 하나로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완성된 엄청난 호러 영화다. 연인인 제마와 톰은 함께 살 집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 중개소에 간다. 중개인 마틴은 딱 맞는 집이 있다며 색깔, 크기, 모양 등이 똑같은 집으로 이뤄진 욘더 마을로 데려간다.

두 사람이 9호 집을 구경하는 사이 마틴이 사라진다. 뭔가 찜찜했던 그들은 차라리 잘됐다며 차에 올라 되돌아간다. 그러나 하루 종일 헤매도 출구를 발견하지 못한다. 휴대전화까지 불통이다. 결국 연료가 떨어져 차가 9호 앞에 정지한다. 할 수 없이 그곳에서 하루를 보낸 다음날 해를 따라간다.

그러나 역시 출구는 보이지 않고 밤이 된다. 온 마을은 적막하고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밤새 헤맨 끝에 간신히 불이 켜진 집을 하나 발견하는데 9호다. 집 앞엔 생필품을 담은 박스 하나가 놓여있다. 분노한 톰은 박스를 찢어 집안에 불을 낸다. 불빛과 연기로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불타는 9호 앞에서 잠을 잔 다음날 아침 그들의 눈앞엔 멀쩡한 9호와 함께 박스 하나가 보인다. 박스 안에는 남자 갓난아이가 누워있고, ‘이 애를 키우면 풀어준다’는 글이 적혀있다. 아이는 98일 만에 초등학생 수준으로 급성장하고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한다. 톰이 그를 죽이려 하자 제마가 말린다.

톰은 우연히 앞마당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하고 그곳을 파는 데 전력을 쏟는다. 이제 두 사람의 사이는 완전히 소원해졌고, 제마는 자신을 엄마라 부르는 아이의 노예가 됐다. 고된 육체노동과 정신적 충격으로 톰은 심신이 크게 쇠약해진 데다 다 자라 위협적인 ‘그것’ 때문에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는데.

아예 대놓고 인트로에서 뻐꾸기가 멧새 둥지에 탁란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뻐꾸기는 알에서 깨어나면 멧새 새끼나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 죽인 뒤 멧새 어미가 물어온 먹이를 먹고 ‘계모’보다 더 크게 성장한 다음 뒤도 안 돌아보고 둥지를 떠난다. 여기서 착안해 이런 스릴러가 탄생했다니 놀랍다.

땅에 떨어진 멧새 사체를 본 소녀의 “뻐꾸기는 왜 탁란을 하냐”는 질문에 제마는 “둥지가 필요해서”라고 답한다. 그러자 소녀는 “둥지가 필요하면 직접 만들면 되지”라고 의아해하고 제마는 “그게 자연의 섭리”라고 설명한다. 이 영화의 주제인 아이러니를 가장 명쾌하고 쉽게 설명해 주는 시퀀스다.

마틴과 ‘그것’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아닌 전혀 다른 종이다. 외계인일 수도, 변종일 수도 있다. ‘그것’이 성장해 생을 다한 마틴을 처리하는 시퀀스를 보면 외계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멧새 등 작은 새의 입장에서 보면 제 새끼인 줄 알고 키운 뻐꾸기가 그렇다.

탁란에서 출발한 이 영화의 주제나 메시지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계부모, 혹은 입양아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다. ‘그것’은 집요하게 제마를 엄마라고 부르고, 제마는 진저리 치듯 “난 네 엄마가 아냐”를 외친다. 톰과 제마가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은 건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

톰은 ‘소년’도 ‘그’도 아닌 ‘그것’이라고 제마에게 확인시켜 준다. 즉 사람이 아닌 걸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제마를 엄마로 부르는 건 생존의 본능이다. 어떻게든 자신이 독립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할 때까지 살아야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제마의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것’들의 섭리.

우리나라는 어렵던 시절 적지 않은 어린아이들을 해외에 입양시킨 바 있다. 그런데 성장한 그들이 친부모를 찾고자 귀국했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접하곤 했다. 동물은 성장하면 어미를 떠나 독립하지만 사람은 마치 동물의 귀소본능처럼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한다. 감독은 입양에 대해 부정적이다.

둘째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진짜인지, 가짜인지에 대한 물음이다. 뻐꾸기가 탁란을 하는 걸 보면 사람만큼 집에 대한 애착이 그리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꽤 집착적이다. 욘더 마을의 집과 하늘의 구름은 프랙털 구조다. 세상은 자기유사성과 반복성일 뿐 별것 없다는 플라톤의 침대다.

욘더 마을은 환상이다. ‘그것’이 꾸며놓은 가상의 공간이지만 어쩌면 인간의 공간(집)에 대한 집착이 빚어낸 환각일 수도 있다. 톰과 제마가 어쩔 수 없이 9호에서 자던 첫날 냉장고에 있던 스파클링과 딸기를 먹고는 아무 맛도 없다고 투덜댄다. 어쩌면 우리가 느끼는 입맛도 착각과 주관일 수 있다.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과 병치는 예술가나 철학자들이 매우 좋아하는 소재인데 피네건 감독 역시 그런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세 번째 주제다. 자신의 DNA를 물려줘야 자식인지, 마음으로 낳아 사랑으로 키워도 자식인지에 대해서는 각자 인식론이 다르겠지만 감독은 철저하게 유물론적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강력하게 외친다. 거의 패닉 상태에 빠져있던 톰과 제마는 우연히 차의 배터리가 생생한 걸 알고 음악을 틀고 전조등으로 조명까지 만든 뒤 신나게 춤을 춘다. 욘더 마을에 갇힌 후 처음으로 즐거운 모습이다. ‘행복이 뭐 별 건가?’라는 이 장면은 유물론과 관념론의 화합이다.

제마의 “대체 난 뭐고 이건 뭐지?”라는 자문은 시간과 공간의 존재론이다. 그건 마치 인생의 막판에야 비로소 진실을 깨달은 뻐꾸기의 양부모 같은 상황이다. 개미는 사람에게 관찰당하는 걸 모른다. 사람이 신화와 종교를 만드는 건 미지의 불확실성(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증거. 16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유진모 ybacchus@naver.com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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