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김권제의 생활어원 및 상식] 우리나라에서는 7080세대의 노래와 가수들이 세시봉 가수들의 향수와 더불어서 새로이 조명을 받고 있다. 특히 70년대는 대학생 및 젊음의 상징으로서 통기타와 청바지가 대학가를 풍미했었다. 그 젊음의 상징인 청바지는 언제부터 만들어져서 우리가 입고 있는 것일까?

1848년 1월 24일 스코틀랜드 출신의 목수인 제임스 윌슨 마샬이 미국 새크라멘토의 동쪽 50마일 떨어진 콜로마라는 지역에서 우연히 콩알만한 금덩이를 발견했고 엄청난 금이 매장되었다는 사실을 워싱턴 정부에서 확인하면서 1849년부터 미국 서부로의 골드러쉬가 일어났다. 미국의 유명한 풋볼팀인 ‘San Francisco 49ers’가 49년부터 골드러쉬로 서부에 몰려든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다.

1850년 바바리아 출신의 리바이 스트라우스도 서부에 도착했다. 당시 20세였던 그는 캘리포니아로 몰려든 사람들에게 텐트와 마차 덮개로 쓸 수 있는 캔버스 천을 팔기 위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금을 찾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입을 옷과 최소한의 연장이었기에 천 장사가 잘 될 리가 없었다. 실의에 빠져있던 그는 한동안 방황을 한다.

당시 광부들의 고민은 거친 일을 하다 보니 옷이 쉽게 망가졌기 때문에 옷이 튼튼하고 질겼으면 했다.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그는 재봉사와 상의한 끝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캔버스 천을 이용한 바지를 만들어 공급하게 되었다. 예상은 적중하여 그가 만든 바지는 광부들에게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텐트용 캔버스 천으로 만든 옷이 동이 나자 당시 텐트용 캔버스 천도 거칠었지만 남 프랑스에서 생산되어 사용되는 ‘서지 드 님(serge de Nimes : 님의 직물)’이라는 면직물은 더욱 거칠었기에 이 천을 이용하여 옷을 만들기로 했다. 그는 이탈리아 제노아 선원들이 타는 무역선으로 ‘서지 드 님’을 수입했다. 그래서 우리가 청바지를 말할 때 나오는 말이 ‘데님’인데 ‘데님’은 ‘서지 드 님(serge de Nimes)’에서 온 말이다.

옷 장사가 계속해서 잘 되자 사업에 자신감이 붙은 그는 자신의 이름을 상표(Revi’s)로 정한 후 이름에 걸맞게 멋스러움을 주기 위해서 청색으로 옷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광부들이 물건을 넣어 호주머니가 뜯어지는 일이 빈번하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네 귀퉁이에 구리 못을 박은 것도 그가 최초이다. 그가 만든 바지인 데님 진은 남부 캘리포니아 농장에서 재배되던 열대식물 ‘인디고 페라’의 잎에서 생산되는 짙은 푸른색 염료인 인디고로 염색되었다. 바지를 푸른색으로 염색을 하여 우리가 ‘청바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청바지 ‘blue jeans의 ‘진(jeans)’의 유래를 살펴보자. 스트라우스는 남 프랑스의 천을 수입하기 위하여 무역선을 이용했는데 그 배의 선원들이 이탈리아 항구도시 Genoa 출신들이었다. 당시 ‘제노아’를 프랑스어로 ‘Genes’로 불렀는데 이 지역 명에서 ‘진’이 유래된 것이다(Genoa -> Genes -> jeans). 그래서 jeans는 일반적으로 jean으로 만든 ‘pants’를 가리키나 ‘제노아의 면직물’이란 뜻도 있다.

바지에서 출발한 진은 위 아래가 연결된 overalls로 몸을 보호하고 오래 입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는데 바지의 형태와 디자인은 아직도 발전의 진화가 진행중이다.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내가 천 장사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진은 태어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젊음의 상징인 청바지는 시대와 유행을 거쳐 조금씩 변화해 왔고 리바이스 말고도 여러 회사에서 만들어 내고 있지만 한 청년이 사업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도 청바지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 갈 수도 있다. 그래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는 속담이 가슴에 와 닿는가 보다.

[김권제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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