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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기계의 만남, 프랑켄슈타인의 교훈 [박은혜 칼럼]

기사승인 20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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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 칼럼=박은혜의 4차산업혁명 이야기]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바라보는 눈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는 인간과 기계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관계를 맺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해 아래 새 것이 없듯,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던 기술의 역사는 의외로 오래 되었다.

19세기 초 주목할 만한 두 편의 소설 작품이 발표되었다. 하나는 독일 작가 에른스트 호프만의 <모래사나이>이고, 다른 하나는 고작 18세에 불과했던 여성 작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다. 이들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인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제작된 생명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

호프만의 작품에서 주인공 나타나엘은 자신의 약혼녀를 버려둔 채 오토마타 인형인 올림피아를 인간으로 착각하고 그녀와의 사랑과 소통을 갈구하지만 결국에는 광기어린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나타나엘의 고뇌는 이성적인 인간과 기계적인 인형 즉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려는 직관으로부터 출발한다.

한편 이보다 더 유명해진 작품인 셸리의 작품에서 그 이름도 유명한 주인공 프랑켄슈타인은 나타나엘보다 더 강렬한 욕망을 실천하려고 한다. 그는 생명창조의 오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금기를 깨어버리기에 이른다. 그는 시체들의 조각을 짜 맞추고 갈바니의 동물전기를 활용하여 거대한 기계인간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기계인간에게 부여한 엄청난 능력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자신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을 파멸시키고 마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셸리의 작품이 등장하기 얼마 전인 1780년 이탈리아의 의사이자 해부학자인 루이지 갈바니가 개구리 실험을 통하여 근육의 수축현상을 관찰하였다. 그는 개구리의 다리 근육에 흐르는 전기를 발견하였는데 이를 ‘동물전기’라고 불렀다. 이 실험의 결과는 그의 조카 조반니 알디니에 의해 계승되었는데, 그는 개구리의 다리에 전류를 흐르게 하면 반사운동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관찰해냈다. 이는 몇몇 학자들에게는 갈바니의 동물전기가 생물과 무생물의 간격을 매울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의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그 시절, 기계성에 대한 비판

셸리의 소설이 발표되었던 19세기 초의 상황에서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캐릭터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흥미롭게도 19세기 초는 앞선 18세기 후반에 유행했던 과학의 한 가지 독특한 성격에 대한 반동이 일어나고 있었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호프만이나 셸리와 동시대를 살았던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표방했던 낭만주의라는 분위기가 과학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낭만주의는 생명이 결여된 차가운 기계성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 목소리를 담고 있었다. 인간적인 직관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계산가능성의 세계야말로 낭만주의가 타도하고자 했던 세계였다. 따라서 셸리는 어쩌면 혐오스러워 보일 수도 있는 기계인간의 모습만큼이나 당대에 유행했던 어떠한 과학의 혐오스러운 성격을 향하여 경고를 던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과연 그 혐오스러운 성격이란 무엇이었을까?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에 걸친 이른 바 낭만주의 시기는 과학의 역사에서 제2의 과학혁명기로 불린다. 이전 17세기의 과학혁명이 과학적 영웅들의 등장과 자연에 대한 수학적 계산가능성의 발전을 선보였다면, 18세기의 과학은 거대한 발견보다는 과학 자체가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화되고 과학자라는 존재 자체가 새로운 공공의 이미지를 얻게 되는 특징을 보여준다. 특별히 계몽주의적 분위기에 힘입어 특별히 1790년대 영국을 중심으로 과학의 대중화, 과학 단체 및 출판물의 확산과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진보적 특징은 정치적, 사회적 이슈들과 충분히 분리되지 않았다. 과학의 진보를 꿈꾸는 사람들은 대개 사회적으로도 개혁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로 분류되었고, 자연스럽게 과학이 정치적, 신학적 전복을 이끌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과학역사가 얀 골린스키는 18세기 후반 주로 영국에서 광범위한 대중 수요자를 획득하게 된 과학이 변화하는 양상을 몇 가지 특징으로 나누어 분석한 바 있다. 첫째, 인간이 해결하기 힘든 자연 내부에 존재하는 광대한 힘이나 수수께끼가 숭고라는 표현을 통해 대중에게 선전되고 인식되었다. 이러한 표현 속에는, 자연에 주어진 신비와 미지를 정복하여 탐구할 능력을 지닌 인간 지성에 대한 낭만 또는 그 능력이 과용되었을 때 다가올 수 있는 비극의 감정이 뒤섞여 있는 듯하다.
둘째, 자연의 숭고함을 인식하는 것에 뒤따라 대중은 과거의 지구가 가지고 있는 광대한 역사의 스케일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필연적으로 이처럼 광대한 스케일의 근거에 관하여, 지질학, 천문학, 생물학 분야에서 첨예한 갈등을 야기했다.

기계, 인간에게 더 깊숙이 파고들다

이러한 골린스키의 분석에서 흥미롭게 관찰해볼 만한 지점은, 자연과 생명의 숭고함이 서로 완전히 상반되는 두 가지 주장 모두를 뒷받침하는 근거로서 활용되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는 숭고함이 곧 외부적 신성을 드러낸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오히려 이러한 숭고함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증거이며 따라서 그것은 신의 부재를 이해할 수 있는 인간 이성의 특성과 연결된다는 주장이었다. 하나의 개념이 서로 완전히 상반된 주장들 모두의 근거가 된 셈이다. 특별히 숭고 개념이 구체적으로 인식되었던 분야는 당시 새로운 스타일로 등장하고 있던 생물학 및 의학이었는데,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스타일이라 함은, 호프만과 셸리 그리고 괴테의 작품이 보여주듯이, 기존의 기계론적 인간관에 대한 낭만주의적 반동이라 할 수 있다.

위의 두 가지 주장들 중 낭만주의적 입장이 전자에 가깝다고 한다면, 후자는 앞선 과학혁명의 시기를 거치면서 대세로 자리잡아오던 입장이었다. 즉 인간의 자기 이해에는 기계적 본성이 추가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존재를 사유와 연장이라는 이분법으로 설명했던 데카르트의 등장과 맞물려, 앙부아르즈 파레, 윌리엄 하비, 베살리우스와 같은 의학적 선구자들의 등장은 넓은 의미에서 생명체를 기계적으로 파악하려는 흐름에 기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17세기에 이르러 인간의 신체적 기능뿐만 아니라 정신적 활동까지도 기계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려는 유물론자들의 주장까지 등장했다. 가령 대표적인 유물론자였던 라 메트리는 뇌의 비교해부학적 결과를 통하여 인간을 하나의 일적인 전체성을 지니는 복잡한 기계로서 간주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대세적 흐름은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오토마타 즉 기계인형의 제작으로 정점에 도달하게 되었다.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인 오토마타, 왜 200년 전의 사람들은 어떠한 목적과 욕망을 가지고 오토마타를 만들고자 했을까? 그리고 그러한 오토마타 제작을 통해 어떤 모습의 이상적 사회를 만들고 싶었을까? 이러한 질문은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다시금 허물어지는 4차 산업혁명의 문 앞에 서있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던져질 수 있는 질문이다.

▲ 박은혜 칼럼니스트

[박은혜 칼럼니스트]
서울대학교 교육공학 석사과정
전 성산효대학원대학교부설 순복음성산신학교 고전어강사
자유림출판 편집팀장
문학광장 등단 소설가

박은혜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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