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윤승현의 토닥토닥] 25살, 나는 다시 1학년이 된다. 국문학과 문예창작을 배울 수 있고 문예창작을 전공할 생각이다. 그토록 바라던 ‘원하는’ 전공이고, 가고자 하는 길에 첫 단추를 잘 끼운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나는 기쁠 수 없었다. 최근 ‘문송합니다’라는 신조어가 화제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 말은 ‘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의 합성어다. 최근 뉴스에까지 이 말이 등장하며, 인문계 졸업생 90%가 논다는 자극적인 문구로 보도되고 있다. 대학가도 심상치 않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문과대학 일부는 통합되고, 폐과된 학과는 셀 수 없다. 이쯤 되면, 대학이 아니라 4년간 학원에 다니는 느낌이다.

드디어 무언가 해볼 기회를 잡았음에도, 나의 불안은 이미 정해져 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마음의 문제라고 치부하기엔, 이미 수많은 선배의 험한 현재를 보고 있고, 쉬쉬하던 사회 구성원들조차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재학 중이던 관광학과에 자퇴서를 내밀었다. 인문계 졸업생 90%가 논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난 당일 날, 인문학과에 예치금을 넣었다.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라는 문자가 왠지 모르게 서글펐다. 가장 먼저 ‘정말 문과에, 그리고 나에게는 미래가 없을까?’에서 출발한 질문은 이내 ‘나는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려 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나는 전공이 맞지 않으면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 중 하나였다. 정말 지독하게 괴로워했고, 눈부시게 방황했다. 전과를 위한 노력이 물거품 되고, 휴학을 결정했을 때도 걱정의 소리는 여전했다. “참고 견디다 보면, 인생에 다른 길이 열려. 다들 그렇게 살아왔잖아. 왜 그렇게 힘든 길을 가려 하니?” 소위 말하는 인생 선배들의 조언은 ‘현실적’을 가장한 꼼수 같았다. 그들에게 나는 이상을 좇는 이기적인 외동아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테니까. 하지만 대학이 처음 만들어지고, 수백 년간 배움의 터로서 견고할 수 있었던 ‘초심’을 생각해보면 내가 좇는 이상은 어쩌면 대학에서 배우고자 하는 학생이 당연히 가져야 할 특별하지 않은 열정으로 분류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쯤 되니, 지금 내가 느끼는 불편하고 서글픈 감정들은 한 치수 작은 옷을 제공한 ‘불량한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급속도로 변하는 현실 앞에 대학마저 무너져서는 안 된다. 좋게 말하면, ‘타협’이겠지만 실은 문제를 보고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꼴이 아닐까.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취업을 위함이 되고, 취업 안 되는 전공에 소속된다는 것이 배움이 아닌 절망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배움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얼마나 더 큰 부끄러움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우리가 왜 문송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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