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우리는 누구나 사랑받을 만하며 또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사랑 그 자체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때문에 사랑에 성공하지 못한다. 이는 우리가 해 뜨는 곳을 찾아서 아무리 동쪽을 향해서 가더라도 그 종착점에 도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가 이만한 사회적 지위를 가졌으니까, 이만큼 많은 돈을 벌어다 주니까, 혹은 아이들을 낳아주고 잘 키워주었으니까 등등의 조건이나 자격으로 자신의 사랑에 대해서 자만하곤 한다. 그래서 내가 바라는 만큼 상대가 사랑을 보여주지 않으면 분노하거나, 때로는 상대가 더 이상 자신의 사랑을 받을 만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단정하여 또 다른 상대를 찾기도 한다. ​

그러나 사랑은 결코 충분할 수도 완성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동쪽을 향해서 아무리 많은 길을 왔더라도, 어느 순간 방향을 틀면 더 이상 동쪽을 향하는 것이 아니게 된다.

​어쩌면 어떤 이들은 “그렇다면 어느 누가 사랑을 할 수 있겠나?”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사랑에 대한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한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랑이란 완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지녀야 하는 자세나 태도 그리고 마음가짐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사랑에는 뜨겁고 즐거우며 행복한 것만으로 차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슬픔은 물론이도 때로는 배신감이나 미운 마음마저도 섞여 있을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부족한 점은 상호 신뢰와 이해, 감사와 용서로 채워야 하는 것인데, 사실은 이들 역시 사랑의 다른 모습이다.

​우리 모두 사랑에 대해서는 부족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사랑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히려 누구나 빈부나 지위처럼 소유물이나 조건과 상관없이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가 동쪽을 향하고자 한다면, 어느 곳이나 어떤 상황에서도 동쪽을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런 자세를 잃지만 않으면 된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영화에서 남자는 여자를 동면에서 깨우는데, 자신이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변명한다. 그러나 이는 아직까지는 사랑이 아니었다. 다만 그녀가 좋아서 함께 있고 싶어 했을 뿐이다.

남자가 여자를 정말 사랑한 것은 죽음을 각오하여 우주선을 고치고 그녀를 다시 동면 상태로 돌려보내고 자신은 혼자 남기를 결심한 때부터였다. 그런 사랑의 자세가 비로소 여자에게 진정한 것으로 전달되어 그녀 역시 남자를 사랑하게 되고, 마침내 자신의 꿈을 포기한 채 삶과 죽음을 그와 함께 하기로 한다.

때로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런 극단적인 상황까지 닥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사랑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 덕분에, 그렇지 않았다면 할 수 없을 것들을 해낼 수도 있는 것이다.(다음편에 계속...)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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