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한의사 홍무석의 일사일침(一事一針)] 코로나19 여파로 힘든 봄을 지낸 봄나물 시장도 오는 20일 소만(小滿)을 기점으로 제철을 끝낸다.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성장하여 가득 찬다(滿)는 소만은 여름의 문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철 나물을 뜯고 먹는 것도 5월 중순까지다.

요즘은 비닐하우스에서 나물 재배가 늘어나면서 제철 의미가 줄었다하지만 자생하는 나물을 뜯는데 또 다른 재미가 있는 모양이다. 우리 한의원에서 침 치료를 받고 있는 떡집 아주머니도 코로나19 때문에 올해는 여행대신 친구들과 이 산, 저 산 다니며 나물을 캤다고 한다.

산나물하면 강원도가 고향인 어떤 분의 얘기가 떠오른다. 요즘은 웰빙 음식이라며 인기 있는 곤드레나물밥이 그 분에게는 목으로 잘 넘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옛날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때문이다.

‘평생 쌀 두말을 못 먹어 본다’는 강원도 두메산골 민초들에게 춘궁기를 넘게 해준 나물이 곤드레다. 배고픔이 극에 달하는 5~6월에 지천으로 나는 곤드레를 따다가 나물밥을 지으면 밥 부피가 늘어나 한 끼가 더 든든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분에게는 곤드레나물밥이 슬프고도 눈물겨운 음식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이제 곤드레나물밥은 도시에서도 즐겨 찾는 음식이지만, 사실 곤드레는 한약재로 쓰인다. 예로부터 기근이 심할 때 주식물 대신 먹을 수 있는 곤드레 같은 구황작물(救荒作物)에는 약효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의학에서 식약동원(食藥同原)이라고 부른다. 음식과 약은 같은 원류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잘 알고 있는 쑥은 나물로 먹는 음식이면서 한약재로 쓰인다. 중국 명나라 때 약초를 연구한 이시진(李時珍,1518∼1593)이 엮은 약학서 <본초강목>에서는 “쑥이 속을 덥게 하고 냉한 기운을 쫓아 낸다”고 전한다. 몸을 따뜻하게 해주기 때문에 감기와 냉증에 좋은 효능을 보이는 게 쑥이다.

<본초강목> 뿐인가. 허준이 지은 <동의보감>에서도 어린잎, 말린 나뭇잎, 줄기, 뿌리 등에서 찾을 수 있는 한약재가 백과사전처럼 등장한다. 특히 허준은 한 가지 또는 서너 가지 약재로 병을 치료하는 단방(單方)도 소개한다. “우리나라에는 향약이 많이 나나 그것을 알지 못하는 백성들이 알기 쉽게 하라”는 선조 임금의 교지를 받고서다.

우리 선조 한의학자들은 개념적으로 “병이 있으면 당연히 약이 있다”고 생각한 게 분명하다. 주변 자연에서 발견되는 초근목피(草根木皮)의 모양이나 맛, 색깔을 오장육부(五臟六腑)에 연결시켜 치료에 나섰다. 소 무릎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우슬(牛膝)이란 식물은 사람 관절염에 효능이 있다고 본 것이다. 쓴 맛을 내는 약초는 소염 및 항생제로 활용하는 식이다.

그런데 곤드레 같은 구황작물을 사람이 먹어도 탈이 없고, 심지어 우슬을 섭취했던 사람은 관절까지 낫게 되니까 선조 한의학자들의 경험치는 쌓여가게 됐을 것이다. 모든 약초에는 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그 독이 약이 된다는 것도 경험으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해마다 봄이 되면 나물을 뜯게 되는 모양이다.

다만 세상에 만병통치약이 없듯이 어떤 나물의 효능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누가 몸에 좋다고 하니 그대로 따라 먹으면 곤란하다. “너 자신을 알라”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말이 산나물과 한약재에도 적용될 만하다.

▲ 한의사 홍무석

[홍무석 한의사]
원광대학교 한의과 대학 졸업
로담한의원 강남점 대표원장
대한한방피부 미용학과 정회원
대한약침학회 정회원
대한통증제형학회 정회원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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