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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데이즈’, 종말론, 믿음, 구원, 희생 [유진모 칼럼]

기사승인 20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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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1979년 바티칸 교황청의 사제가 달 위를 질주하는 혜성을 보고 다급하게 교황에게 ‘신의 눈’이 나타났다고 보고한다. 같은 날 뉴욕의 한 병원에서 여자아이가 태어난다. 강경파는 사탄의 씨를 잉태할 여자가 태어날 예언이니 그녀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교황은 믿음으로 지키자며 반대한다.

악마의 사제단은 아이를 빼돌려 독사의 피를 먹이는 의식을 치른 뒤 엄마에게 되돌려준다. 1999년 12월 28일 뉴욕. 세기말을 3일 앞둔 세계는 새천년을 기대하는 축제 분위기와 종말론의 극단적 위기감이 겹친다. 아내와 딸을 범죄조직에게 잃은 형사 출신 경호원 케인은 알코올에 의지해 살아간다.

어느 날 그는 월스트리트의 거물 증권인의 경호 의뢰를 받고 호위하며 이동 중 스나이퍼를 발견하고 추격해 검거한다. 그러나 범인은 “곧 사탄이 나타난다”고 외친 뒤 매기 형사팀에 넘겨진다. 그런데 매기는 전 동료 케인의 진술을 믿지 않는다. 범인은 혀가 잘려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

케인은 동료 바비와 함께 저격범의 아지트를 수색하던 중 한 여자의 사진을 발견하고 챙긴다. 그녀는 크리스틴 요크. 부모를 여읜 뒤 부유한 양부모와 살고 있는데 매일 루시퍼에게 겁탈당하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어느 날 괴한들이 침입해 양부를 죽이고 그녀를 죽이려 할 때 케인이 나타난다.

저격범의 신분은 토마스라는 신부. 케인은 크리스틴과 함게 그가 근무했던 세인트존 성당을 찾아가 코박 신부로부터 자초지종을 듣는다. 12월 31일 밤 11시께 루시퍼가 크리스틴의 몸에 악마의 씨를 심으면 하느님이 가둔 지옥문을 열고 루시퍼가 세상에 나타나 새천년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

바티칸 기사단의 프리메이슨은 그걸 막기 위해 크리스틴을 죽이려 하는 것이지만 교황은 외려 그녀를 보호하라고 지시했다며 코박은 케인을 돕겠다고 한다. 그때 교황의 명으로 바티칸에서 파견됐다는 신부들이 성당에 나타나고 케인은 그들에게서 프리메이슨의 문양이 새겨진 목걸이를 발견한다.

1999년 12월에 개봉된 ‘엔드 오브 데이즈’(피터 하이암즈 감독)다. 액션 전문 감독이 이번에도 액션을 위주로 하되 기독교의 도움을 받아 판타지와 스릴러를 섞었다. 일단 초반의 저격범을 쫓는 시퀀스는 손에 땀을 쥐게 하기에 충분하다. 당시 잘나가던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액션은 명불허전이다.

이 영화가 가장 먼저 던지는 화두는 인식론적 방법론이다. 루시퍼의 운명적 배우자가 탄생했을 때 프리메이슨은 그녀를 제거하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함무라비 법칙을 주장했지만 교황은 “하느님을 믿고 의지해야 하니 그녀를 보호하라”며 악마를 이기기 위해 악마가 되는 패착을 경계했다.

그는 토마스에게 소녀를 찾아 보호하라 지시하고 토마스는 루시퍼에게 몸을 제공할 운명의 증권인을 죽이려다 실패한다. 노골적으로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대립 혹은 대비를 기둥 철학으로 세웠다. 중세 초기를 대표하는 스콜라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으로 대변된다.

13세기에 그의 명성을 이어받은 아퀴나스는 그를 존경하면서도 아리스토텔레스에 기울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정치 세력을 지배욕의 산물로 정의한 이래 기독교는 통치를 사악한 인간계에서 최소한의 질서를 마련하기 위한 차선책으로 봤는데 아퀴나스는 이러한 전통을 아리스토텔레스로 전도했다.

‘인간은 자연적으로 정치 공동체를 구성하는 정치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받아들여 “인간은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동물”이라고 주장한 것. 또한 자연법에 대해 “습관이나 사회의 습속이 아니라 타고난 양심”이라고 정의했다. 그래서 토마스는 증권인 저격을 선택한 것.

하느님의 봉인에 의해 형상이 묶인 루시퍼는 왜 하필이면 증권인의 육체를 택했을까? 자본주의에 의해 인류의 개념을 지배하고 있는 배금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경고다. 타락한 인간을 제일원인(절대자)이 홍수 등 천재지변으로 혼내줬다는 노아 얘기는 성경뿐만 아니라 전 문명 안에 등장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젊었을 때 방탕한 생활을 했다. 심지어 이단인 마니교를 믿기까지 했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은 뒤 충심으로 하느님을 섬기면서 ‘고백록’을 통해 자아비판을 하고, 자신처럼 믿음을 잃었을 타락한 자식들이 옳은 길을 갈 수 있도록 신실한 신앙을 설파함으로써 주의 곁에 다가갔다.

예전엔 신을 믿었지만 이젠 총을 더 믿는다는 케인은 마니교 신자였던 아우구스티누스다. 아내와 딸을 잃은 뒤 ‘신은 없다’며 신을 원망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루시퍼와의 최후의 일전을 위해 교회에 온 그는 예수의 십자가를 보고 깨달음을 얻은 뒤 총을 내던진다. 가장 강력한 무기는 믿음이었던 것.

그래서 그는 조용히 외친다. “하느님,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크리스틴 요크는 노골적인 비유다. 루시퍼가 살해한 토마스의 몸에 쓰인 글씨를 본 경찰은 “그리스도가 뉴욕에 있다”고 번역하지만 영리한 케인은 크리스틴 요크라는 이름으로 제대로 알아본다. 뉴욕은 노른자위가 아니라 타락한 도시다.

‘엑소시스트’ 같은 결말은 충분히 예측이 가능해 다소 허망하기는 하지만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역사와 종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꽤 흥미로울 플롯이다. 케인을 제 편으로 만들고자 “하느님은 성서를 통해 홍보를 잘했을 뿐 최악의 실패자”라고 궤변을 늘어놓는 루시퍼의 유머도 재미있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유진모 ybacchus@naver.com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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