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박은혜의 4차산업혁명 이야기] 

산업혁명 이전의 도제식 교육

열 살 정도가 된 아이부터 시작하여 십대의 청소년들이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장인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물론 아이마다 찾아다니는 장인은 다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혹은 자신의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에 따라 찾는 대상은 달라질 수 있다. 그렇게 저마다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실질적인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찾은 장인에게서 기술은 물론 인격과 관련한 엄격한 훈련과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교육 형태를 도제식 교육이라 일컫는데, 그 기간은 대략 5년에서 7년 정도 소요된다.

이 도제식 교육은 바로 2차 산업혁명 전의 교육 모습이다. 가만 보면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독특한 교육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라는 교육기관을 거치지 않는다는 것이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일이지만, 놀랍게도 2차 산업혁명 이전에는 저런 교육 형태가 일반적이었고 당연한 것이었다.

2차 산업혁명과 함께 시작된 근대의 학교제도

그러던 교육 제도가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완전하게 탈바꿈하였다.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던 도제식 교육이 특정 기관을 통한 보편적인 교육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바뀌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철도, 증기기관, 기계 생산이 중심이 되었던 1차 산업혁명과 생산 기술 및 전기와 통신의 발달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2차 산업혁명은 더 이상 과거의 교육 방식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인에게 기술을 배워 가내수공업을 하며 먹고 살던 시대가 끝나버린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2차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근대 학교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제도는 오랜 세월을 거쳐 지속되어 왔고 우리는 지금까지 이것이 절대적인 교육의 방법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교육의 균등한 기회가 주어졌지만 다양성을 충족시킬 순 없었다

근대식 교육이 시작된 것은 여러 면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드러내었다. 우선 보편적 교육을 지향함으로써 교육의 권리가 균등하게 주어졌으니 조금 더 쉽게 교육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나를 가르쳐 줄 스승(장인)을 따로 찾지 않아도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편리한가?

그러나 ‘균등’이라는 말에는 자연히 ‘표준, 기준’이라는 용어가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동일한 기회를 주기 위해서는 동일한 무엇인가가 뒤따라야 했던 것이다. 결국 교육은 표준화될 수밖에 없었고 학생들은 동일한 교육의 기회를 누리는 대신 일정 기준에 의거한 획일화된 교육 체제로 들어가게 되었다.

사실 이 교육제도는 한동안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학교교육 제도를 통해 기본적인 교육을 이수하고 그 지식의 기반 위에서 자신의 직업을 찾는 것이 익숙하면서도 일반적인 삶의 모습이 되어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표준화, 획일화된 교육의 틀 안에서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분야를 배우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모습, 일정한 교육의 틀 안에서 자신이 정말로 관심 있는 분야를 발견하기 어려워하는 모습 등이 자연스레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상황에서 때로는 획일화된 교육이 학생들에게 일종의 억압으로 다가가기도 했다. 심지어 경쟁구도를 불러 일으켜 교육이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한 도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장애물이 되어버리기까지 했다. 더 나아가 오늘날에는 그렇게 경쟁에 부딪혀가며 열심히 공부를 했음에도, 정작 자신만의 일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해졌다. ‘그동안의 오랜 수고’를 ‘장밋빛 미래’로 이어가지 못하는 게 흔하게 만날 수 있는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4차 산업혁명, 기존 학교 체제에 인공지능의 도제식 교육을 더하다

보편화된 교육제도, 이것을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 대신 이것이 교육의 전부가 될 것이 아니라, 도제식 교육과 같은 개별화된 교육이 더해질 필요가 있다. 물론 여기서 개별화된 교육이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개별적으로 학습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학교에서 배우는 교육 내용을 자기주도학습이나 개별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개별적으로 학습해나가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아예 교육 콘텐츠 자체가 개인에게 최적화된 콘텐츠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가령, 내가 헤어디자이너가 꿈이라면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배우지 않는 미용기술을 따로 습득하는 것을 말한다. 곧 학교와 같은 공식적인 교육기관에서 기본적인 교육을 받되, 부분적으로는 학교교육 콘텐츠와는 전혀 다르면서도 자신에게는 필요한 영역에서의 학습과 훈련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물론 어떤 경우에는 학교에서 배우는 콘텐츠를 더 심화하여 배울 수도 있다. 수학자가 꿈이거나 교사가 꿈이라면, 다른 영역의 기술 대신 공교육이 제안하는 기존의 과목을 더 심화하여 배워나가면 된다).

그런데 이렇게 혼합된 형태의 교육이 가능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학교 교육의 틀이 바뀌는 것은 좀처럼 쉬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2차 산업혁명 이후로 근대적 학교 교육이 생기는 큰 변화가 다가왔듯, 4차 산업혁명은 이에 대한 변화를 가능하게 만들어줄 지도 모르겠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인공지능 기술은 그 가능성을 더욱 높여준다. 인공지능 기술은 교육 분야에서 ‘개인 맞춤형 학습’의 실현해 주는 대안이 된다. 구체적으로 인공지능이 기술이 학습에 적용될 경우, 온라인 학습 과정에서 생기는 각종 데이터를 분석한 후 수치화된 사용자 정보를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학습자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교육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

사실 기존의 방식대로 교사 한 명이 한 학급에 배정이 된다면 이런 교육 방식이 불가능하다. 방과후에 사교육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교육 내용을 ‘따로’ 학습하게 될 뿐, 자신이 원하는 영역의 새로운 콘텐츠를 배우기는 어렵다. 그러나 인공지능 기술은 자신만의 콘텐츠와 그것을 가르쳐주는 새로운 형태의 교수자를 만나게 해 줄 수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학습 스타일에 맞게 교육적 환경을 디자인해갈 수 있다.

물론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학습 상황을 통해서는 기존의 교사로부터 얻어질 수 있는 관계 형성 및 인격 교육이 어려울 수 있어 비판이 제기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방식만 가지고 교육을 받으면 문제가 되겠지만, 기존의 교육체계에 덧붙여지는 형태이므로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본다. 기존 교육 제도 안에서는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지식과 소양을 얻고 자신만의 미래와 연결된 특정 영역에서의 교육은 인공지능 체계 안에서 구체화해 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나가면서 – 인공지능, 교육 현장에서 위협이 아닌 지원책이 될 수 있다

산업혁명 이전의 도제식 교육은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인공지능의 옷을 입고 재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표준화, 획일화된 학교 기반의 교육에 있어 아쉬웠던 부분을 보완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일방적으로 교육을 이끌어가기에 앞서, 개인의 흥미, 적성, 학업 양식, 학습 속도에 대한 진단이 이루어지고 그에 따른 최적의 교육 콘텐츠와 방식이 제공되는 이상적인 교육의 형태가 바로 4차 산업혁명의 인공지능을 통해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인지 능력을 대체하는 대상으로 파악되어 위협적으로 인식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인간의 의사결정이나 예측, 계획, 분석을 돕는 도구로서 활용됨으로써 우리가 생각한 영역 그 이상으로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다. 그리고 교육은 인공지능을 적절하게 활용할 대표적인 장이 될 수 있다.

▲ 박은혜 칼럼니스트

[박은혜 칼럼니스트]
서울대학교 교육공학 석사과정
전 성산효대학원대학교부설 순복음성산신학교 고전어강사
자유림출판 편집팀장
문학광장 등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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