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미스터 주: 사라진 VIP’(김태윤 감독)는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동물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란 착안과 그들이 힘을 합쳐 테러 세력을 분쇄한다는 클리셰까지 기시감이 풍부하지만 나름의 노력은 가상한 영화다. 특히 이성민의 고군분투와 유일한 실제 동물 알리(이선균)의 활약은 눈물겨울 정도.

국가정보국 에이스 요원 주태주는 후배 민 국장(김서형)에게 밀린 뒤 실장 승진에 목을 매고 있다. 한중수교 25주년을 앞두고 중국 측에서 특사로 판다 밍밍을 선물하자 정보국은 밍밍의 안전한 수송을 맡게 된다. 태주는 확실하게 승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에 앞장서서 임무를 떠맡는다.

태주와 요원들은 동물원까지 잘 수송하지만 관람객에게 공개할 때 돌연 나타난 정체불명의 집단에게 밍밍을 빼앗긴다. 그들을 뒤쫓던 태주는 후배 요원 만식(배정남)이 끌던 카트에 부딪쳐 머리를 다친다. 깨어난 그는 그런데 함께 밍밍을 경호했던 군견 알리가 도망가며 짖는 소리를 알아듣게 된다.

사무실로 돌아온 태주는 민 국장에게 동물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게 됐다고 고백하지만 미친놈 취급만 받을 뿐이다. 시름에 잠겨 동물원을 배회하던 태주는 고릴라로부터 알리가 범인의 얼굴을 본 유일한 목격자라며 그를 찾으라는 조언을 듣는다. 백훈 박사는 토이 판다 분양 사업 독점권을 따낸다.

그에겐 토이 판다를 생산할 우수한 유전자가 필요했고, 돈이 필요한 외국의 한 테러 단체와 목적이 부합했다. 밍밍은 그의 범행에 합류한 테러단에 의해 납치됐던 것. 태주와 알리는 천신만고 끝에 밍밍의 소재를 알아내 잠입하지만 평소 용맹스럽던 알리는 특정 냄새 앞에선 행동이 위축되는데.

모든 걸 떠나 모든 동물의 생명의 무게는 똑같다는 주제의식 하나만큼은 명증적이어서 명쾌하다. 태주의 아내는 수의사로서 병든 동물을 돌보다 패혈증으로 숨졌다. 태주는 바쁘다는 핑계로 떨어져 사는 외동딸 서연(갈소원)으로부터 미스터 주(Zoo)로 불린다. 동물을 사랑하는 그녀의 꿈도 수의사.

태주는 극심한 결벽증을 보이는 완벽주의자다. 그러니 동물을 혐오할 수밖에. 그러나 서연은 그에게 “사람도 동물도 생명의 무게는 똑같다. 동물을 무시하면 천벌을 받는다”라고 충고한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한 프로타고라스와 윤회설을 주장한 피타고라스의, 데카르트와 파스칼의 충돌이다.

피타고라스는 사람을 공격하려는 늑대에게 설교를 했고, 성 프란치스카는 새들에게 설교를 했다. 피타고라스는 사람은 죽으면 동물로 환생하므로 모든 동물은 인류와 가족이라며 모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라고 했다. 하지만 프로타고라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본주의라는 오만과 착각을 낳게 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며 ‘인간은 반성할 줄 아는 이성적 존재’라는, 파스칼은 ‘인간은 흔들리는 갈대’라며 ‘인간은 허영심을 가진 존재’라는 명제를 각각 던졌다. 이 영화는 피타고라스와 파스칼의 손을 들어준다. 동물을 혐오하던 태주는 사람보다 동물을 더 믿게 된다.

이는 깔끔하게 정장을 정리하고 매일 그날의 분위기에 맞춰 시계 등의 액세서리를 선택하는 인트로의 ‘아메리칸 사이코’를 연상케 하는 시퀀스와 중반 이후의 동물들의 입주로 어지럽혀진 같은 장소의 대비로 웅변된다. 사람은 위생과 질서를 추구한다지만 도가 지나칠 땐 민폐가 된다는 걸 모른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는 알리와 더불어 CG로 구현된 각종 동물들의 목소리 연기에 참여한 베테랑 배우들에게 있다. 로또 번호를 알려주는 염소 역의 이선균은 드라마 ‘파스타’를 패러디하고, 밍밍 역의 유인나는 거만한 여배우 목소리로 일부 스타의 거드름에 작정하고 일갈의 화살을 쏜다.

앵무새 역의 김수미는 ‘헬머니’ 식 입담을 쏟아내고, 고릴라 역의 이정은은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호랑이는 김종국의 ‘한 남자’를 소몰이 창법으로 멋들어지게 재현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동물 편만 드는 건 아니다. “요즘 여자들 명품백보다 배변봉투를 더 들고 다닌다”라는 식이다.

특히 이 영화는 패러디의 향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주와 알리의 합동수사는 ‘보디가드’와 ‘공조’를 연상케 한다. 알리를 만나기 위해 그를 보호하는 야생 멧돼지와 대결할 때의 태주의 액션은 ‘엑스맨’의 울버린이다. ‘SKY 캐슬’도 살짝 빌렸다. 유기묘 목걸이에 적힌 ‘GOD’는 중의적 의미다.

‘와썹맨’의 박준형이 독수리 목소리 역으로 참여한 데 대한 감사의 표시일 수도 있지만 피타고라스나 오르페우스적인 신비주의 차원에서의 범신론이다. 초반 서연은 갑자기 태주에게 전화해 도움을 요청한다. 눈썹이 휘날리게 달려간 태주에게 서연은 길고양이를 내밀며 가족을 찾아 달라 요청한다.

그 후 그 고양이가 2번 더 등장하는데 매우 신비스러운 분위기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즉 그 고양이가 신일 수도 있다는 암시다. 이는 인본주의를 비웃는 또 한 번의 환유적 표현으로 결코 신은 사람의 형상으로 생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신이 자신의 모습으로 인간을 만들었다는 종교에 대한 반박이다.

어른과 아이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것이 명징적이다. 특히 “알리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권투 선수”같은 수준의 대사는 아이에겐 생소하고, 어른에겐 닭살이 돋을 듯. 배정남과 김서형의 캐릭터 과잉과 액션 시퀀스는 사뭇 아쉽다. 그래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한 번쯤 희생할 가치는 있다. 22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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