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김권제의 생활어원 및 상식] 이라크 공화국(Iraq)은 서남아시아의 나라로 수도는 바그다드, 화폐 단위는 디나르(dinar)이다. 남쪽은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서쪽은 요르단, 북서쪽은 시리아, 북쪽은 터키, 동쪽은 이란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전체 면적은 43만7072 km2이며, 1932년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와 공동관리 중립지대 면적이 924 km2이며, 내해까지 포함 시 43만5052 km2가 추가된다. 국경선 총 길이 3631 km 중 이란과 1458 km가 제일 길며 해안선 총 길이는 58 km이다.

주로 저지대 이라크는 300 m 이상이 드물고, 450 m 이상 고지대는 전 국토의 15% 미만이다. 지형적으로 국토의 3분의 1인 중부와 남동부의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충적평야지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북부 알자지라 고원지대, 서부와 남부의 사막지대, 북동부의 고원지대 등 4개 지역으로 나뉜다. 충적평야지대는 기복이 적고 배수가 잘 안돼 소택지가 넓게 형성됐다. 메마른 고원지대 알자지라는 1,500 m 이상 신자르 산맥이 있다. 광대한 사막 지대는 국토의 5분의 2를 차지한다. 와디야로 불리는 서부 사막은 고도가 485m를 넘는다. 남부사막의 서쪽은 와디, 언덕, 침강지대 등이 있으며 동쪽에는 덤불식물로 뒤덮인 모래사막이 있다. 국토의 5분의 1인 고원지대는 산악지대와 저지대의 점이지대다.

삼림지대는 방목과 벌목으로 전면적의 1/20로 줄어 대부분 강 주변에 있다. 산악지대 남서쪽에는 다년생 덤불과 키 작은 관목의 스텝 지대가 있으며, 건조지대일수록 가시나무나 다른 내염성 식물들이 주류다. 강 하류 알쿠르나 아래쪽 소택지에는 갈대, 키 큰 목초, 사초 등이 우거졌다.

여름은 남부 지역은 평균 43도 이상이나 겨울은 기온이 크게 하강해 매우 춥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은 여름에 덥고, 강 부근은 다습하다. 북부 고원지대는 남부 지역보다 여름에 서늘하고 건조하다. 10~4월까지 겨울은 기온이 급강하해 산악 지대는 종종 눈이 온다. 수도 바그다드 등 이라크 중앙지역은 6~8월에 평균 33.3도, 최고 50.6도까지 올라간다. 반대로 겨울에 바그다드 평균기온은 9.4도까지 떨어진다. 걸프만 인근 남부지역은 습도가 높고, 기온도 세계 최고 중 한곳이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연간 강우량이 400㎜인 반면, 남서부 사막은 100㎜ 미만이다. 고원지대 중 최고 높은 곳은 연간 1,000㎜가량이다. 강우량은 북동지역을 제외하면 전국적으로 부족해 연평균 400~600mm 정도다. 비는 주로 10~5월까지 내리며, 사막 지역은 비가 거의 없다. 농업은 주로 강의 관개수로에 의존하며 때때로 농작물을 망치는 돌풍도 문제다.

역사를 보면, 고대 메소포타미아로 불린 이라크는 수메르, 아카드, 바빌론을 포함하는 세계 최초의 문명 발상지이다. 세계 최초 문자기록 및 도시가 시작된 4대 고대 문명 중 하나이다. 수메르인들이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의 삼각주 지역에 나타난 시기는 B.C 3500년 무렵이다. 수메르인들은 설형문자를 개발하고, 우르, 우루크, 라가시, 키시 등을 포함한 도시국가연합을 형성했다. 이 도시국가들은 B.C 2350년경 아카드 군주인 사르곤 통치 제국이 되었다가 이들이 쇠퇴하며 2개의 중심세력인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로 나누어져 발전했다. 아시리아인들은 B.C 7세기 고대 중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제국을 세웠으나 B.C 609년에 무너졌고, 그후 칼데아인의 신바빌로니아가 일어났으나, B.C 550년경 전체 메소포타미아가 페르시아에게 멸망했다. 페르시아는 B.C 331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정복되었고, 그의 사후(B.C 323)에는 B.C 141년까지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그후 파르티아와 로마, 사산조 페르시아와 비잔틴 제국 사이의 전쟁에 시달렸으며, 쇠약해진 사산조 페르시아가 AD 7세기 아랍 이슬람교도들에게 정복되며 이슬람 제국의 치하가 되었다.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받은 후 칼리프 자리를 놓고 싸우는 여러 세력들간의 전쟁터가 되었다. 8세기에 압바스 칼리프 왕조가 수립되면서 바그다드가 수도이자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로 부상했으나, 1258년 아바스 왕조가 몽골에 멸망하면서 함께 붕괴되었다.

16세기 오스만인들에게 넘어가 1917년까지 지배를 받았는데, 이 기간에 내부적인 반란과 이란 등 외부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 1899년 오스만 제국이 독일에게 내준 철도부설권에 자극받은 영국이 제1차 세계대전중 이라크를 점령(1914~18)했다. 1921년 영국 보호의 군주국이 세워졌고, 1932년 10월 3일 독립했다. 제2차 세계대전중 친독일정책을 고수해 1939년 영국에 재점령(1939~45)되었으며, 대전 후에는 정치 소요가 계속되었다. 전쟁 후 군주제가 부활되었으나 1958년 혁명으로 군주제가 무너진 뒤 군사 쿠데타가 계속 일어나다가 1968년 사회주의 바트당이 정권을 잡았다. 1970년부터는 바트당 사담 후세인 통치 아래 국가의 산업화와 사회복지 개선에 막대한 석유 세입을 사용했다.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은 1988년 휴전했다. 1990년 8월 쿠웨이트 침공으로 이듬해 1월 페르시아 만 전쟁에서 이라크는 반이라크 연합군에 패했다. 이라크의 여러 도시가 파괴됐으며, 이라크군도 큰 손실을 입었다. 1990년대 유엔의 금수조치로 경제는 약해졌다. 패전 후 이라크 내 쿠르드족, 시아파 등 주요 소수민족과 종교집단들의 분리주의 운동이 거세게 달아올랐으나, 연합군의 철수로 여력을 회복한 이라크 정부에 의해 무력으로 진압되었다.

2001년 미국 911테러 후 미국은 이라크를 대량살상무기 제조국과 테러 단체 지원국이라하여 2003년 3월 20일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4월 9일 바그다드가 점령됐고 4월 말 전투가 끝났다. 이라크 전쟁으로 전체적 사회 시스템이 붕괴됐고, 이후 반미 테러가 급증하며 내전이 일어났다. 내전이 끝났지만 치안 상태가 매우 불안정하다.

2018년 기준 이라크 인구수는 3,934만명이다. 인구 중 78%가 아랍인, 쿠르드인 17%, 기타 5%의 투르크멘인, 아시리아인, 아르메니아인 등 소수 민족이 있다. 인구의 약 70%가 도시에 거주한다. 소수민족 중 가장 많은 쿠르드족은 고유 언어를 사용하며 북동부 고지대에서 거주한다. 터키인들과 투르크멘족들은 지역 아랍인들과의 혼혈로 아랍화되고 있다.

2004년 6월 29일부터 아랍어와 쿠르드어가 공용어이다. 터키 투르크멘 등의 방언들도 같이 쓰이고 아람어와 영어도 소수가 쓴다. "투르크멘어, 시리아어, 아르메니아어는 사용인구가 다수인 지역에서 아랍어와 쿠르드어에 추가하여 공식적 언어이다."라는 규정과 "지방자치단체는 주민투표를 거쳐 지자체 내에서 다른 공용어를 추가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주민의 95% 이상이 무슬림 신자로 이중 시아파가 64%, 수니파가 30%이다. 소수 종교인 기독교와 야지디교 신자 등은 3% 내외이다. 이라크 시아파는 아랍인과 소수의 투르크멘족으로 구성되며, 수니파는 아랍인, 터키인, 투르크멘족, 쿠르드족이다. 그밖에 그리스도교, 야지디교, 만다야교, 유대교, 바하이교 같은 종파도 있다.

단원제의 과도정부이고 국가원수는 대통령이다. 이라크는 아랍 사회주의 바트당이 지배하는 다당제 국가이다. 혁명위원회에서 법률을 제정, 선포하며, 혁명위원회 의장이 대통령, 총리, 군총사령관을 겸임한다. 혁명위원회 위원들은 바트당 지역본부 위원을 겸임하며, 정부의 행정기능을 수행할 내각의 각료를 임명한다. 명목상의 입법기관은 5년에 1번씩 선거로 선출된 25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는 양원제 국회이다.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과도정부 수립부터는 의회 제도를 실시하고 있으며 통합 이라크 연맹, 쿠르드 연맹, 이라크 민족당, 타와푸크연합 등 여러 정당이 있다.

경제는 개발도상국 단계로 국유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1인당 국민 총생산은 타 중동 국가보다 낮다. 국토면적의 약 1/8인 경작지는 대부분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집중됐고, 약 1/3이 관개된다. 국내 총생산의 1/5인 농업 부문에 노동력의 1/8 이상이 종사한다. 경작지의 4/5에서 채소와 곡류가 재배되며, 밀, 보리, 수박, 토마토, 포도, 대추야자 등도 많이 생산된다. 국토면적의 1/10 정도 목초지에서는 양, 염소, 소를 사육한다. 일부 페르시아 만 부근 유전과 북부지역의 주 유전의 석유 매장량이 세계 2위이며 천연가스도 상당량 매장되어 있다. 광업 부문은 GDP의 1/10 이상이나 노동력은 2% 미만이 고용되어 있다. 석유와 천연 가스 외에 황, 인회암, 석고, 암염 등이 생산된다. 제조업은 GDP의 약 1/10로 노동력의 1/4을 고용한다. 주요 공산품은 정유제품, 공업용 화학약품, 철과 조강, 질소비료, 원당, 면직물, 모직물, 양탄자 등이다. 전력 대부분을 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하고 나머지는 수력발전으로 충당된다. 건설업은 GDP의 1/10 미만을 차지하며, 노동력의 약 1/8이 종사한다. 이라크는 식품가공, 전통공예, 교역, 관광업, 호텔업 및 소규모 제조업을 제외한 석유산업과 여러 산업 부문과 금융계, 교통과 통신 시설 등을 국유화했다. 비국영화 민간 부문이 이라크 산업 생산량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수출품은 석유가 대부분이며, 소량의 대추야자 열매와 채소가 수출된다. 전기 기구와 기계류, 항공기를 비롯한 차량, 소비재 상품, 화학제품과 약품, 식품 등을 수입한다.

국영 이라크 철도는 바그다드에서 바스라로 가는 노선과, 바그다드에서 북쪽의 모술과 시리아 국경으로 가는 노선이 있다. 도로망은 4/5 이상이 포장됐으며, 그밖에 원양 항행선이 다닐 수 있는 아랍 강의 수로 137km를 포함하는 950km의 내륙수로가 있다. 주요 항구는 바스라, 움카스르, 알파우가 있다. 바스라 항은 이란군의 폭격 후 1981년말 폐쇄되었다. 바그다드와 바스라에는 국제공항이 있다.

이라크는 초등과 중등교육을 무료로 실시한다. 모든 어린이가 6년제 초등학교에 다녀야 하지만, 시설 부족으로 농촌은 교육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가 많다. 초등학교 졸업생은 중학교와 예비학교 과정인 6년제 중등교육을 받을 수 있다.

바빌론 제국의 영광 ‘이라크(Iraq)’는 어디에서 유래가 되었을까?

아랍이름 ‘al-Irāq’는 6세기부터 사용해 왔는데 여러설이 있다. 하나는 수메르의 도시명인 ‘Uruk(성서의 Erech, 고대 이라크의 남부지역)’에서 왔다는 것인데 Uruk은 수메르 ‘Urug(Ur : 도시)’의 아카드어 이름이다. 중세에는 메소포타미아의 저지를 지칭하는 ‘Irāq Arabī (Arabian Iraq)’와 현재 이란 중서부에 위치한 ‘Irāq Ajamī(Persian Iraq)’란 지역이 있었다. 이 용어는 함린산맥 남쪽의 평원을 포함하며 현재 이라크 영토의 최북단과 최서단을 포함하지 않는다. ‘Iraq’는 아랍어 ‘al-ʿIrāq’를 차용한 말로 중세 아랍어 ‘Iraq’는 현재 이라크의 남부와 중부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다른 아랍어 민간어원설에는 ‘Iraq’가 ‘irq(뿌리)’에서 유래한 ‘arīq(deep-rooted, 물이 솟아나는, 비옥한)’에서 왔다고 한다. 반면에 또 다른 설에는 이라크 고원에 위치한 이웃 페르시아의 역사적인 통치로 인해서 중세 페르시아어 ‘l'k'/ erāq(lowlands)’에서 ‘al-Irāq’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메소포타미아라 했는데, 이는 그리스어 ‘mesos(중간)’와 ‘potamos(강)’, 그리고 ‘-ia(지역, 국가)’의 합성어로 ‘강 사이의 땅’을 의미한다. 19세기 중반 이전 ‘Eyraca Arabica’는 이라크를 언급하는 일반적인 단어였다.

[김권제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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