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김문 작가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4인과의 인터뷰-김원봉]

▲ 영화 <암살> 스틸이미지

끝가지 보복

-누구한테 지시를 했나요.

“부산 출신 박재혁입니다. 부산 범일동에서 태어나 상하이와 싱가포르 등지를 왕래하면서 무역업에 종사를 했고 망명한 애국지사들과 꾸준히 만났습니다. 1920년 7월 의열단에 입단했고 부산경찰서 폭파 계획이 나오자 이에 적극 합류했습니다. 이를 알고 1920년 8월 나는 싱가포르에 있는 박재혁에게 전보를 쳐서 상하이로 불렀고 부산경찰서 폭파와 서장 암살 임무를 맡겼습니다. 박재혁은 그해 9월초 상하이를 떠나기 앞서 부산경찰서장 하시모토가 고서 수집에 취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고서상으로 위장했습니다. 그러니까 9월 14일 오후 2시30분 중국인 고서상으로 위장하고 부산경찰서로 찾아가 서장의 면회를 요청했습니다.”

-서장은 순순히 박재혁을 나주었나요.

“물론입니다. 고서상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지요. 서장과 마주앉은 박재혁은 고서적 보따리를 풀어놓고 이를 구경하는 서장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상하이에서 온 의열단원이다. 네가 우리 동지를 잡아 우리 계획을 깨트린 까닭에 죽이려 왔다’고 말입니다. 박재혁은 바로 폭탄을 꺼내 터뜨립니다. 둘은 쓰러졌고 하시모토서장은 부상을 당했고 박재혁은 중상을 입고 체포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경 2명도 중상을 입었습니다. 부산경찰서는 크게 파손됐습니다. 박재혁은 사형이 확정됐고 스스로 죽으려고 다짐하면서 음식은 모두 끊었습니다. 결국 1921년 5월11일 대구감옥에서 27세의 나이로 순국했습니다. 1차 의거가 좌절되었다면 2차는 대단한 성공이었습니다. 물론 훌륭한 단원 한 사람이 희생되기는 하였지만 말입니다.”

다음은 이와 관련 박태원이 약산과 인터뷰를 토대로 쓴 내용이다.

제1차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다수 유능한 동지가 왜적의 손에 검거당한 것을 알았을 때 상하이에 남아 좋은 소식을 기다리던 약산의 슬픔과 노여움은 지극한 것이 있었다.

그간 수개월에 걸쳐 동지들은 모든 곤란과 장애에도 불구하고 오직 이번 일을 위하여 준비하고 계획하여 왔다. 단총, 작탄, 선전문의 수송, 동지들의 입국, 국내동지와의 연락, 모든 난관을 돌파하고 이제 바야흐로 수일내에 일을 결행하려던 때 가증한 왜경의 손에 동지들이 일망타진되고 말았다. 왜적의 손에 잡히어 사랑하는 동지들은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온갖 고문과 악형에 고초를 겪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생각되는 것은 그들 불운한 동지를 위한 복수였다.

“오냐! 부산경찰서장을 죽이자, 죽여서 동지들의 원한을 풀어주자.”

부산경찰서는 사건을 앞두고 동지의 대부분이 검거당한 곳이다. 곧 곽경(곽재기)은 부산을 근거삼고 동지들과 연락하며 모든 준비의 완성을 기다리던 중에 비밀이 발로되어 많은 동지와 더불어 적의 손에 체포된 것이다.

약산은 즉시 싱가포르로 전보를 쳐서 그곳에 가 있는 동지 박재혁을 불렀다. 전보를 받자 박재혁은 곧 상하이로 달려왔다. 약산은 그를 보고 동지들의 복수를 위해 곧 부산으로 향할 것을 명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붙였다. “죽이되 그냥 죽여서는 안 되오. 제가 누구 손에 무슨 까닭으로 하여 죽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것을 알도록 단단히 수죄(數罪)를 한 다음에 죽이시오.”

박재혁이 상하이를 떠나기 전에 그는 적지 않은 중국 고서를 사들여 한짐 만들어 등에 지고 나섰다. 완연한 산동의 서적상이었다. 그러나 그 짐 속에 고서들 말고 따로이 폭탄이 감추어져 있을 것을 누가 뜻하였으랴.

▲ 영화 <밀정> 스틸 이미지

그는 일본 수선(輸船)에 몸을 싣고 황해를 건너 일본 나가사키로 갔다. 그의 본래 예정은 나가사키에서 다시 하관(下關)으로 가서 그곳에서 연락선을 타고 부산으로 건너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가사키에 상륙하여 알아보니 그 길 말고도 또 나가사키에서 곧장 대마도를 거쳐 부산으로 가는 배편이 있었다.

부산에는 그의 본가가 있었다. 여러 해만에 돌아온 자기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이튿날 아침 박재혁은 부산경찰서를 찾아가 서장에게 면회를 구하였다. 서장은 흔쾌히 응락한다. 박재혁은 안내를 받아 2층에 있는 서장실로 들어갔다.

작은 탁자 하나를 두고 서장과 마주앉은 그는 몇마디 오고간 뒤 진기한 고서를 구경시켜주마 하고 마침내 봇짐을 풀었다.

이 책 저 책 꺼내 들고 보여주다가 그 밑에 감추었던 폭탄과 전단이 드러났다. 그는 곧 전단을 집어 왜적 앞에 던지고 유창한 일어를 꾸짖었다.

“나는 상하이에서 온 의열단원이다. 네가 우리 동지를 잡아 우리 계획을 깨트린 까닭에 우리는 너를 죽이는 것이다.”

말을 마치자 그는 곧 폭탄을 들어 둘이 서로 대하고 앉은 탁자 한가운데에 메어다 붙이니 이때 두 사람은 광연한 폭음과 함께 쓰러졌다.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소스라쳐 놀라 그 방으로 달려들었을 때 조금 전에 서장을 찾아온 중국인 서적상은 몸에 중상을 입고 쓰러져 꼼짝을 못하였고 서장은 선혈이 임리(淋漓, 쫙 깔림)한 가운데 정신을 잃고 쓰러져 마지막 목숨을 모으고 있었다.

-결국 붙잡힌 박재혁은 어떻게 최후를 맞게 됩니까.

“사명을 다해 복수를 이룬 박재혁은 유치장에 갇혀 심문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박재혁이 순순히 응할리 없었지요. 그때부터 입을 봉하고 단식을 하게 됩니다. 일경은 어떻게든 먹여보려 했지만 부질없는 일이었지요. 물 한모급 입에 넣지 않고 잡힌 지 9일만에 목숨을 끊었습니다.”

-일경이 박재혁이 의열단원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서장실에 흩어진 한 장의 전단을 통해 알게 됐지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일제는 또한번 몸서리를 쳤겠지요. 그의 비장함은 나가사키를 떠나기 전 상하이에 있는 동지에게 엽서를 보냅니다.”

다음은 그 엽서에 적힌 내용이다.

어제 나가사키에 잘 도착했음. 상황이 뜻대로 잘 돼가니, 이것은 여러분의 염려 덕분입니다. 초가을 서늘한 바람에 몸과 마음이 상쾌하니 아마도 좋은 일이 있을 듯합니다. 그대들 얼굴을 다시 보기를 기약할 수 없습니다. 별도로 가는 길이 있어 그 전보다 더 좋을 듯하니 잘 생각하면 알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참고 인용했다>
약산 김원봉(이원규, 2005, 실천문학사), 경성의 사람들(김동진, 2010, 서해문집), 한국 근대민족운동과 의열단(김영범, 1997, 창작과 비평사), 양산과 의열단(박태원, 2000,깊은샘), 약산 김원봉 평전(김삼웅, 2008, 시대의창)

▲ 김문 작가 – 내 직업은 독립운동이오

[김문 작가]
전 서울신문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현) 제주일보 논설위원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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