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화탁지의 음양오행 성격론] 시골에서의 자유롭지만 외로운 유년기를 보내고 각박하고 인간미 없는 서울에서의 사춘기를 보낸 나는, 제법 학교생활에 잘 적응했다. 밝은 아이였기 때문에 타인들이 내 속의 어둠을 감지하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그 어둠이라 함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불안과 외로움이었다.

내 스스로에게 충실하지 못한 대학시절을 보내고 변변한 직장생활도 제대로 못한 상황에서 결혼을 했다. 청소년기에 이미 결혼이란 것의 환상을 깨버린 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선택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태생적으로 자유로움을 갈망하는 성격탓에 아버지의 엄한 성격은 나에게는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아버지와는 반대였던 남편의 성격에 끌렸던 것도 결혼을 선택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첫 아이가 태어났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딸아이가 태어나자 남편의 태도는 확 달라졌다. 얼마나 아이에게 지극정성인지. 음식점에 가면 자신의 무릎에 딸아이를 앉히고 음식을 먹이면서 챙기는 남편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유년시절의 외로움과 반항기 가득한 성격탓에 가족들과 트러블이 잦았던 나에게 딸아이의 존재는 나 아닌 타인으로 인해 채워지는 충족감을 처음으로 맛보게 해주었다.

행복한 시절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뜻밖의 사고로 아이을 잃게 된 것이다. 내 곁의 누군가의 죽음을 본 적은 있었지만, 딸아이의 죽음은 그런 죽음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슬픔을 잊기 위해서 미친 듯이 일에 매달렸다. 일하는 동안만은 딸아이의 부재를 잊을수가 있었다.

누군가 내게 아이를 잃고 난 후 언제 가장 슬펐냐고 묻는다면, 정확히 6개월 후라고 답하고 싶다. 매일 눈떠서 아이를 잃었다는 상실감을 느끼는 것도 고통스러웠지만, 고통이 어느 정도 일상에 묻혀 정도가 옅어지던 즈음 내 안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쑤욱 하고 빠져 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 이제 정말 아이는 없구나.” 아이의 부재가 현실감으로 피부에 와닿는 그 순간 울컥하는 설움이 온몸에 스쳤다.

사람들은 알까? 극도의 고통에서는 그 어떤 위로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오롯이 나 혼자서 감당해야 할 나만의 고통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내가 가진 태생적 외로움은 그 고통에게 모든 자리를 양보했다. 고통으로 채워진 내 영혼에 외로움이 발을 디딜 틈은 없었다.

외로움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는 근본적으로 불안한 존재를 채우려는 원초적인 것이다. 하지만 맹점은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다는데에 있다. 채우려 하지 말고 비워야 한다. 소중한 것을 잃어보면 그때야 비로소 채우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충만했음을 깨닫게 된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 고통스러워지란 얘기가 아니다. 외로움은 살면서 늘 옆에 지니고 있어야 할 그림자 같은 것이다. 빛이 있어야 그림자가 생기듯이 어둠속에서는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고통속에 산다는 것은 한줌의 빛도 없는 어둠속에 있는 것과 같다. 그러니 그 순간에는 외로움도 사라지는 것이다. 그림자의 존재를 인정하라. 그것은 내가 빛이 있는 곳에 서있다는 증거니까.

외로움은 불안의 자식이다. 엄마의 자궁에서 세상속으로 나올 때 경험했던 분리불안이 살아있는 동안 평생 자신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자신이 없어져야 그 녀석도 함께 사라진다. 빛과 그림자가 둘인 듯 둘이 아니듯, 존재와 그림자도 마찬가지다. 사랑과 미움이 그렇고, 행복과 고통이 또 그러하다. 하나가 사라지면 다른 하나도 사라진다. 아이러니 하게도 외로움은 내가 살아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 오경아 비엘티 아케아 대표

[오경아 대표]
건국대 철학과 졸업
전 수능영어강사(번역가)
현 비엘티 아케아 대표
현 교환일기 대표
현 세렌 사주명리 연구소 학술부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