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김주혁 주필의 성평등 보이스] “저 요즘 힘들어 죽겠어요!” 만일 가족이나 친구, 동료 등 주변 사람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많이 힘들구나!” 동어반복이라도 공감해 주면 위로가 되고 고통도 줄어들 수 있다.

덴마크는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행복 지수 순위에서 꾸준히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비결을 연구해 보니 어릴 때부터 10년 이상 공감능력을 키우는 수업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감정카드를 놓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고,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하는 등의 훈련을 통해 공감을 체질화한다는 것이다. 내가 힘들 때나 즐거울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받으니 고통은 줄어들고 기쁨은 늘어난다.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줄 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으니 행복지수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어!” 이렇게 면박을 주는 반응이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너보다 내가 더 힘들어. 그런 소리 하지 마!”라고 한 술 더 뜨는 경우도 있다. 공감 받지 못하면 행복지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면 다른 사람의 고통에 쾌락을 느끼는 사이코패스가 될 수도 있다.

여성들이 가사와 육아 분담이 제대로 안 되고, 채용 임금 승진 경력단절 등 각종 성차별과 젠더폭력 때문에 힘들다고 호소하면 “많이 힘들겠구나!”라고 공감해 주면 된다. 남성들이 군대 가서 고생하고 제대하면 취직하기도 어렵고 데이트 비용이나 결혼 비용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역시 “많이 힘들겠구나!”라고 공감해 주면 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공감은 생략한 채 “너만 힘드냐, 내가 더 힘들다!”고 외쳐대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심지어 비난과 혐오로 이어지기도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벨 훅스는 “페미니즘이 비판해야 할 대상은 남성이 아니라 가부장제, 성차별주의, 남성주의”라고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에서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남성들이 미워하거나 적으로 삼아야 할 대상도 여성이 아니라 남성들이 겪는 성차별인 것이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격언처럼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잘못된 행태를 비판하고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래야 갈등이 해소되고 역사가 발전한다.

가수 겸 배우 설리에 이어 구하라씨가 악성 댓글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성폭력, 데이트폭력, 가정폭력, 아동학대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공감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당사자에게 고통을 줄 것이 뻔한 악성 댓글을 달지 않는다. 공감능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상대방의 인권을 침해하는 각종 폭력을 행사할 리가 없다. 더군다나 폭력을 보고도 못 본 체하며 침묵하거나, 폭력 피해자에게 또 다시 2차 피해를 가하는 일은 공감능력이 제로가 아닌 사람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이나 행동을 할 경우 상대방이 고통스러워하리라는 데 공감한다면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사회는 이제 경제발전에 올 인하는 ‘개발 독재’ 시대를 넘어 선진국의 문턱에까지 왔다. 그런 만큼 인권존중의식과 함께 공감능력을 키우는 노력을 기울일 때가 됐다. 학교에서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감정표현과 대화 등을 통해 공감을 주고받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특히 폭력에 둔감하지 않고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 김주혁 미디어파인 주필

[김주혁 미디어파인 주필]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양성평등․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
전 서울신문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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