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권투 전공 체대생 상곤(천정명)은 법대생 민정(이시아)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이듬해 건달 두목이 된 선배 창완이 찾아와 자기 조직에 들어오라고 제안하자 상곤은 자신을 친형처럼 따르는 후배 철회(진이한), 태규(이하율), 상구(곽희성)도 합류시켜 달라고 청한다. 그들의 환영식이 펼쳐진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옆자리의 사람들과 시비가 붙는다. 미래건설 회장인 상곤의 아버지가 인맥을 활용해 그들 모두를 빼주지만 상곤은 아버지와 멀어진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상곤은 창완이 식구들이 벌어준 회사 돈을 빼돌려 도주하려 한다는 보고를 받자 그를 제거하고 보스가 된다.

상곤은 미래건설의 도움으로 조직의 사업 규모를 키워가며 서초구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민정은 판사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단란주점에서 회식을 하던 상구가 다른 조직의 건달들과 시비가 붙는다. 상곤보다 선배인 그들이 상구는 물론 상곤에게 모욕감을 주자 상구는 참지 못하고 그들을 죽인다.

법정은 살인범인 상구에겐 사형을, 부두목인 태규에겐 무기징역을, 수괴인 상곤에겐 징역 10년형을 선고한다. 상곤의 아버지는 항소를 하겠다고 나서지만 상곤은 사랑하는 동생들이 사형과 무기징역인데 자기 혼자 감형을 받겠다고 항소하는 건 형제로서의 도리가 아니라고 고집을 부리는데.

누아르를 표방하는 영화 ‘얼굴 없는 보스’(송창용 감독)는 살짝 조폭 미화 논란을 야기한 바 있는데 단언컨대 그렇진 않다. ‘친구’를 계기로 한국 영화계에 조폭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확연하게 늘며 그런 논란에 휩싸인 바 있지만 현재의 흐름에서 보듯 그건 일시적 유행일 뿐 관객은 똑똑하다.

대다수의 조폭 영화와는 달리 액션이나 건달들을 과장되게 포장하지 않는다. 조폭을 인간적(?)으로 묘사하고, 그들의 언행을 현사실적으로 그림으로써 외려 논란과 반대의 노선을 걷는다. ‘그래봤자 깡패(범법자)일 따름’이라는 조소가 꽤 강렬하다. 상곤은 건달이 돼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아버지가 큰 건설회사 회장이니 얌전하게 졸업한 뒤 경영수업이나 받으면서 부잣집 아들로서 살면 됐었다. 그러나 선배들을 잘못 만났다. ‘남자는 의리’라고 세뇌당하면서 형제의 연을 맺은 동료들과 거칠게 사는 게 폼 나는 삶이라고 잘못 배운 인식이 쉽사리 건달의 길로 접어드는 계기가 됐다.

태규는 지체장애자인 누나를 놀린 자를 때리고 감옥에 들어온 영재(김도훈)가 안쓰러워 특별하게 잘 보살펴준다. 태규의 친구이자 상곤의 최측근인 철회는 상곤과 태규가 없는 조직을 잘 이끌어가는 가운데 상곤, 태규, 상구의 옥바라지는 물론 그들의 가족, 그리고 영재의 누나까지 세심히 챙겨준다.

조폭 영화라지만 기존의 기존 영화들과는 많이 다르다. 90도로 깍듯하게 허리를 굽히는 영재에게 태규는 “조폭인사 하지 마”라고 만류한다. 상곤은 부하들에게 “연장을 쓰지 말라”고 명령한다. 감독은 상곤과 그 동생들을 통해 건달 세계에 의리 따윈 없으니 낭만이나 감상에 젖지 말라고 경고한다.

상곤은 밤거리를 헤매는 고교생 무리를 혼내주며 건달에 대한 환상에 젖지 말라고 충고한다. “앞으로 건달 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는 걸 보게 될까”라며 고뇌하기도. 감독은 일부러 카메라를 고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미세한 떨림을 유도함으로써 상곤의 내면에 출렁이는 갈등을 그린다.

대부분의 남자들, 특히 남자들의 모임에선 으레 마초 증후군 같은 남자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규준이 되곤 한다. 그 남자다움이란 대범하고, 대의명분을 중요시하며, 사사로운 연애감정보다는 남자들 간의 우정에 값어치를 두는 관념론적 인식론이다. 돈 몇 푼보다는 정의와 의리를 추구하기 마련.

그 관념론은 이기적이지 않기에 손해는 보더라도 불의보단 정의에 가깝다. 하지만 현실의 건달은 사실 그런 남자다움과는 거리가 멀다는 메시지도, 스스로 지식이나 기술이 부족함을 알기에 폭력을 앞세우는 것이라는 교훈도 좋다. 단 세련됨과 거리가 있는 연출 스타일은 호불호가 갈릴 듯. 21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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