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메기>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메기’는 깜짝 놀랄 만한 신인 여자 감독 이옥섭의 탄생을 알릴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독립영화라고 해서 고리타분한 설교나, 도식적인 캠페인이라고 생각한다면 큰코다칠 듯. 허를 찌르는 재미가 살아있고, 상상력을 깨뜨리는 기발함이 넘친다. 놀랄 만한 인권선언과 사회고발성 영화다.

30년 전 성당의 수녀원이었던 곳이 이젠 부원장 경진(문소리) 개인이 운영하는 마리아사랑병원으로 바뀌었다. 어느 날 엑스레이실에서 두 남녀가 정사를 벌이던 중 누군가에 의해 촬영이 되고, 그 필름이 병원 내에서 떠돈다. 간호사 윤영(이주영)은 그게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윤영이 사직서를 들고 가자 경진은 “회의를 한 뒤 윤영 씨의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선수를 친다. 윤영은 돌연 태도를 바꿔 “내일 뵙겠다”며 퇴사를 거부한다. 다음날 출근한 이는 윤영과 경진뿐. 경진은 전 직원에게 전화를 걸지만 하나같이 아프다고 한다. 그녀는 왕진가방을 챙겨 윤영과 함께 나선다.

한 직원의 집을 방문하니 그는 기절해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싱크홀이 자꾸 생기고 실업자인 성원은 그 복구 작업을 하던 중 윤영이 선물한 백금반지를 잃어버린다. 그런데 작업 후 옷을 갈아입다가 한 동료의 발가락에서 하얀 발찌를 발견한다. 그의 의심은 깊어지고 둘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는데.

▲ 영화 <메기> 스틸 이미지

메기, 불법촬영, CCTV(감시체계), 청년실업, 관계의 균열, 데이트 폭력 등 이 시대에 만연된 부조리, 부조화, 불합리, 범죄 등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에 집중하는 주제의식은 힘차다. 거기에 판타지, 미스터리, 코미디 등을 적절히 버무린 내러티브와 눈이 번쩍 띄는 미장센 등은 경이롭다.

일각의 웨스 앤더슨 운운하는 찬사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신뢰와 불신이라는 이항대립을 제시하고 풀어가는 구문론은 유려하고 매끄러우며 유쾌하고 앙증맞다. 한 장의 엑스레이 필름이 버젓이 1인 압제가 횡행되는 병원이라는 특정 세계를 완전히 뒤흔들고 모든 임직원이 출근하지 않는다.

경진만 제외하면 모든 이들이 엑스레이실에서 한 번쯤 성관계를 가졌다는 증거다. 아버지에게 병원을 물려받은 경진은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출퇴근 카드를 설치했고, 그나마도 점프를 해야 체크가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병원은 민주주의의 탈을 쓴 자본주의의 독재가 만연하는 이 사회의 환유다.

필름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불안에 떠는 윤영은 거리를 달리며 “이렇게 병원이 많은데”라며 해고돼도 갈 곳이 많다고 자위하지만 성원은 “그거 다 교회”라고 망상을 깬다. 육체의 병을 치료해주는 병원-정신병원도 있지만-과 정신적 번뇌와 죽음에 대한 공포를 해소해주는 종교의 대비는 영악하다.

▲ 영화 <메기> 스틸 이미지

경진은 어릴 때 한 소년이 앉은 시소의 반대편에 앉음으로써 소년이 날아가 다치게 만들었다는 ‘누명’을 썼지만 해명하지 않았다고 술회한다. 다수가 품은 편견과 선입견이 만든 불신에 상처받았던 그녀가 이젠 그걸로 다른 경진인 윤영을 사회에서 몰아내려 한다. 헥켈의 개체 발생 반복설이다.

동물은 본능과 경험으로 순간적인 행동을 취하지만 평범한 사람은 생각을 하고, 비범한 사람은 계산을 하며, 현학적인 사람은 사유의 이성으로 결정한다. 그 이성범주는 소여함으로써 판단할 수 있는 오성적 도구다. 니체는 ‘우상의 황혼’ 등에서 그걸 ‘과도한 순진함’이라며 낙관주의에 불만을 표했다.

니체는 그러나 이성범주가 오류가 낳은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진리성을 찾는 데서 필연성을 설파했다. 현대사회에서 우상과 편견에 대한 통찰력은 더욱 필요하다. 경진의 불신은 자신만을 실체의 행위자로 설정할 뿐 타인은 자신에게서 투사되거나 파생된 하위개념으로 봤기 때문에 발생했다.

제목대로 병원 내 어항에 사는 메기 한 마리가 내레이터로서 전체 스토리를 이끌어간다. 메기는 지진과 싱크홀의 발생을 예고하는 선지자의 존재로 등장한다. 경쟁자 때문에 다른 경쟁자의 잠재력이 발휘된다는 긍정적인 ‘메기효과’라는 용어가 있다. 해고를 예고하는 경진에게 당당한 윤영이 그렇다.

▲ 영화 <메기> 스틸 이미지

사회 곳곳에 분포된 우상, 편견, 부조리, 합법적 범죄 등이 바로 싱크홀이고, 다수의 의식에 형성된 이기심과 탐욕이 지진이다. 필름의 주인공이 윤영이란 증거가 나오기도 전에 경진은 특정하고 뒷문으로 나가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윤영은 “왜 그래야 하냐”고 앞문으로 나가고 퇴사도 거부한다.

사람들은 남의 밀회 장면을 찍은 파렴치범에겐 관심 없고 병원이란 성지에서 신성모독죄를 저지른 이단에만 관심을 갖는다. 불법촬영을 수사하는 경찰 중 은근히 촬영자보다 찍힌 자에게 더 관심을 갖는 이는 없을까? 대중은 말할 것도 없다. 범인은 색출하되 피해자는 가려야 하는 게 정의 아닌가?

사실은 편집되고 만들어진다는 대사는 베이컨의 ‘시장의 우상’을 말한다. 가짜뉴스가 버젓이 유통되는 작금의 현실이다. 그래서 ‘우주에 가는 법은 엑스레이 촬영’이란 관념론을 펼친다. 직원을 위한 구내식당을 정작 직원들은 이용하지 않는다는 설정 역시 법과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사회를 비꼰다.

지하철의 ‘임산부 배려석’엔 여지없이 할머니가 앉아있고 노약자석에 앉은 임산부를 노인이 꾸짖는 현실이다. SEX-Ray라는 미장센과 피서 온 듯한 시위대 등은 통렬한 유머다. “괜찮겠지?”, “뭐가?”, “그냥 다”라는 대화는 어두운 현실 속 청춘들의 자위다. 정말 상큼하고, 재기 발랄하다. 26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