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퍼펙트맨>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퍼펙트맨’(용수 감독)은 일각의 지적처럼 ‘언터처블: 1%의 우정’(2012)을 떼려야 뗄 수 없게 만드는 건 사실이지만 디테일의 차별화를 꾀한 노력은 엿보인다. 문제는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있다. 부산에서 기업형 폭력조직으로 승승장구하는 보스 범도(허준호)는 사업을 더욱 확장한다.

그룹 내 분양대행전문회사를 새로 설립하는데 영기(조진웅)는 내심 자신이 대표 자리에 앉을 것을 기대했지만 후배 기태에게 빼앗기자 심기가 상한다. 그는 자신이 관리하는 주점에 온 라이벌을 때린 뒤 검거됐다가 사회봉사를 조건으로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봉사 대상은 전신마비의 장수(설경구).

검사 출신으로 현재 로펌 대표 변호사인 그는 사고로 불구가 돼 요양원에서 살고 있다. 로펌 내부에선 대표 자리를 놓고 후배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장수는 2개월의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은 상황. 그는 미리 보험을 들어놨는데 그대로 죽으면 12억 원, 사고로 죽으면 27억 원을 타는 조건이다.

영기는 조직 내 캐피탈회사 대표인 친구 대국(진선규)을 꼬드겨 공금 7억 원을 주식에 투자했다 작전세력에게 탈탈 털린 상황. 작전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장수에게 영기는 분노하고, 장수는 자신의 처지를 설명한 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를 풀도록 도와주면 보험금을 주겠노라 제안한다.

▲ 영화 <퍼펙트맨> 스틸 이미지

영기는 7억 원을 채우지 못하면 범도에게 큰 처벌을 받을 상황이니 마다할 리가 없다. 게다가 ‘버킷 리스트’는 어려울 것도 별로 없다. 항목을 하나하나 지워가는 동안 그는 장수에게 사고사를 제안하고, 기태는 범도에게 대국의 횡령을 이른다. 영기는 범도에게 린치를 당한 대국 앞에 불려 가는데.

주인공을 변호사와 깡패로 설정한 것부터 내내 자본주의의 불합리와 폐해에 대한 감독의 날선 비판의식이 작두춤을 춘다. 장수는 비아냥거리듯 영기에게 “왜 깡패가 됐냐”고 묻고 영기는 “꿈을 위해서”라고 답한다. ‘완벽한 삶’을 살기 위해 폭력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빈자의 자본주의는 완벽할까?

무대를 부산으로 선정한 이유는 확연해 보인다. 영화를 시종일관 관통하는 경상도 사투리 진빼이는 진짜를 의미한다. 영기는 짝퉁 베르사체를 입고 다니며 범도의 쓰리피스 정장을 비웃는다. 월세는 밀리면서도 중고 벤츠 E220 모델명을 떼고 E400으로 바꾼다. 가난이 싫고 부끄러워 진저리를 쳤다.

그의 아버지는 원양어선을 탔다. 어릴 땐 그게 그렇게 멋있을 수 없었지만 크고 나니 그냥 노동자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는 과로로 숨졌다. 바다를 품어 낭만이 넘실대고, 일본이 가까워 서울보다 유행이 빨랐던 도시. 그러나 야쿠자가 들락거렸고, 마약이 유통됐으며, 조폭이 활동했던 부산.

▲ 영화 <퍼펙트맨> 스틸 이미지

감독은 부산과 주인공, 그리고 주제를 표현하는 한밤의 3가지 중요한 미장센을 보여준다. 첫째는 바다 건너 화려한 주상복합 건물을 뒤로 한 야외 술집이다. 부산, 즉 자본주의의 극명한 빈부의 격차다. 현존하는 양극단의 이념의 충돌과 현실의 부조리를 이토록 유비적으로 그린 미장센은 섬뜩하다.

둘째는 영기가 어머니의 분골을 뿌린 산동네와 그 밑으로 화려한 조명이 빛나는 욕망으로 가득찬 번화가다. 장수는 그 야욕을 이루려 공부했고 돈은 쥐었으되 행복할 수도 장수할 수도 없었고, 학벌도 배경도 없었던 영기는 그걸 위해 주먹을 휘둘렀지만 비린 피 냄새 외엔 돈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마지막은 영기가 장수를 리어카에 태우고 달리는 부산항대교. 고급 승용차들이 질주하는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의 자동차 전용도로를 구닥다리 손수레로 움직이는 중년의 두 남자. 하나는 자본주의에서 성공한 줄 알았지만 상실했고, 하나는 성공을 위해 매진했다고 자부하지만 여전히 실패한 ‘루저’.

영기는 장수와의 첫 만남에서 전신마비면 말초신경도 마비냐며 조롱하고, 장수는 지은이란 딸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도 사고 전에는 멀쩡한 ‘남자’였고, 가족과 자신을 위한 성공을 향해 안간힘을 썼다. 변호사는 법조인이고 억울한 자의 누명을 벗겨주거나 타당한 형량으로 유도하는 게 임무인데.

▲ 영화 <퍼펙트맨> 스틸 이미지

영기는 범죄본능 때문이 아니라 유일한 혈육 동생 정기와 먹고살기 위해 깡패가 될 수밖에 없었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었으니. 하지만 감독은 그걸 정당화하는 실례는 범하지 않고 대국을 통해 인간의 도리를 설파한다. 영기는 정기와 대국 등에게 만날 민폐만 끼치지만 대국은 그를 감싼다.

범도는 단 1원도 손해를 볼 줄 모르는 냉혈한이다. 그의 밑에서 20여 년 간 ‘생활’을 한 영기는 그 신념을 배웠다. 과연 그게 정녕 완벽한 삶일까? 그게 성공일까? 배금주의와 공명주의는 자본주의에서는 결국 동의어다. 그런데 그게 진짜 삶일지는 모른다. 베르사체건 그렇다고 믿건 무슨 차이일까?

빨리 가고 싶어 하는 장수는 “모양 빠지는 거, 번거로운 거 질색”이라 연명을 거부한다. 스포츠카를 타고 싶다고 하자 영기는 국산차를 가져오고, 장수는 페라리를 언급한다. 결국 포르쉐로 만족한다. 영기는 벤츠의 엠블럼을 떼 장수의 휠체어에 부착해준다. 엠블럼 없는 벤츠와 엠블럼 단 휠체어란?

‘영웅본색’을 흉내 내고, 그 주제가를 읊조린다고 그들이 저우룬파나 장궈룽이 될 수는 없지만 기분을 낼 수는 있다. “너무 빨리 가지 말고 경치도 좀 구경해”라는 주제는 훌륭하지만 끝까지 안 봐도 뻔한 클리셰는 도마 위에 오를 듯하다. 주연들의 연기도 별로 새로울 게 없다. 116분. 10월 2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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