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화탁지의 음양오행 성격론] 필자는 드라마를 즐겨 보지 않는다. 뻔한 스토리 전개때문도 있지만 끝까지 봐야만 결말을 아는 길고 지루한 여행을 무사히 마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마주친 드라마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미련을 두지 않는다. 몇 편만 봐도 끝을 알 수 있기에.

그러다 우연히 ‘의사 요환’이라는 드라마를 발견했다.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통증의학과 의사가 되어 좌충우돌하는 메디컬 드라마다. 자신의 아픔을 모르는데 타인의 아픔을 어떻게 알까? 맞다. 사실 자신이 경험해본 이상의 아픔은 모르는게 사람이다. 다들 자기 기준에서의 아픔만 생각한다. 그런데 이 남자, 자신에게 없는 통증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고 집착한다. 결국 나에게 없는 그 무언가를 채우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사주를 보러오신 손님들을 보면 자신에게 없는 오행을 가진 사람에게 끌리거나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빈곳이 채워지면서 완전함을 느끼게 된다. 눈물겹다. 산다는거. 결국 나를 채우기 위해 사람이든 물건이든 일이든 필요로 한다.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왜냐면 인간의 본성은 결핍이니까.

하지만 채우기만 한다고 결핍이 극복될까? 부족한 것을 채우는 방법도 있지만 넘치는 것을 덜어내는 방법도 있다. 채우는 것 만큼 덜어내기 또한 쉬운 작업은 아니다. 이미 내게 너무 많아 익숙해져 있는 나의 일부를 참고 다듬고 버리라니요? 토기운이 너무 많아 근심걱정이 많은 여성분에게 “걱정 좀 그만하세요. 훌훌 털어버리세요.”라는 말이 얼마나 위안이 될지는 모르겠다. 감정이 너무 풍부해서 컨트롤이 힘든 사람에게 “좀 이성적인 사고를 하세요.”라는 말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극복하기 힘든 사람은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타고남 그대로를 인정하면서 사는 것은 싫고 그렇다고 극복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결국 극복에 실패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거나 실패를 합리화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나라서 눈물겹다’라는 표현을 결코 자기연민이라는 말로 바꾸고 싶지 않다. 누군가를 위해주는 기운은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지만 불쌍하게 여기는 기운은 상대를 정말로 불쌍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자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불쌍히 여기는 기운은 결코 상대에게 또는 자신에게 좋은 기운을 전해줄 수가 없다. 정말 자신을 ‘불쌍한 인간’으로 만들어 버릴지도 모른다.

‘눈물겨운 존재의 살아내기’와 ‘자기연민’은 긍정과 부정의 기운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다른 것이다. 전자는 치열함이 있지만 후자에는 없다. 전자는 적극적이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전자는 굴복하지 않지만 후자는 이미 굴복했다. 태도의 문제인 것이다. 산다는 것은 결국 나의 태도 하나하나가 모여 이루는 큰 강과 같다. 나는 어떤 태도로 이 삶이라는 강을 흐를 것인가? 흘러 흘러 바다에 닿았을 때 과연 나로 살아내기가 즐거웠다고 말할 것인가 힘겨웠다고 말할 것인가?

▲ 오경아 비엘티 아케아 대표

[오경아 대표]
건국대 철학과 졸업
전 수능영어강사(번역가)
현 비엘티 아케아 대표
현 교환일기 대표
현 세렌 사주명리 연구소 학술부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