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한남대교] 한국전쟁 이후 1970년대 인구는 550만 명으로 폭발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면서 196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기도에 속했던 지금의 강남 일대가 서울로 편입된다. 1985년 한강종합개발사업으로 제3한강교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뀐 한남대교.

경부고속도로의 관문이기도 한 한남대교는 강북지역의 인구 과밀을 해소하는 한편, 유사시 서울시민 도강용이라는, 전쟁 후 말 못 할 안보 불안감이 낳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당시 한강철교와 한강대교(제1한강교) 폭파로 수많은 시민이 희생되고, 양화대교(제2한강교)는 유사시 군사용으로 제한하면서 1966년 제3한강교의 공사가 시작됐다.

너비 20m의 4차선 교량으로 시작했지만, 평양 대동강 교량의 규모를 의식해서 6차선으로 변경되면서 1969년 12월 25일 제3한강교(現 한강대교) 준공되었다.

▲ 한국전쟁 당시 한강철교(제1한강교) 폭파로 수많은 시민 희생
▲ 양화대교(제2한강교)는 유사시 군사용으로 제한

그렇게, 1966년 제3한강교의 공사가 시작됐다.

▲ 너비 20m의 4차선 교량으로 시작! 평양 대동강교량의 규모를 의식해 6차선으로 변경
▲ 1969년 12월25일 제3한강교(現 한남대교) 준공

한강대교 준공 이듬해인 1970년도에는 경부고속도로가 완성되었는데 경부고속도로로 들어가는 다리 즉 한남대교(제3한강교)는 서울과 전국을 잇는 다리가 되었다. 또한 68년도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한 영동 1,2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오늘날의 서초, 강남지역을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 한남대교를 통해서 강북과 강남이 본격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했고 이는 강남 개발의 전주곡이 되었다. 준공 전후로 일기 시작한 땅값 폭등은 복부인의 등장 등 이른바 말죽거리 신화를 낳기도 했다.

▲ 매일경제 신문(1967.8.1)
▲ 매일경제 신문(1969.4.12)

강북과 강남을 잇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통근 나룻배. 그러나 개통 당시의 2배 너비로 확장된 지금의 한남대교 아래론, 고단했던 그 시절 대신 거침없었던 강남 개발과 그 열기 속에 성공과 희망을 꿈꿨던 이들의 이야기가 조용히 흘러가고 있다.

          - <한남대교 편> 프로그램 다시보기 -
           ☞ 네이버TV : https://tv.naver.com/v/510507
           ☞ 유튜브 : https://youtu.be/5iMd-XJ8PvA

※ 영상기록 <시간을 품다> ‘한남대교’ 편은 2015년 8월 31일에 방송되었습니다. tbs TV에서는 서울 일대에 남았거나 변형된 근현대문화유산을 주제로 서울의 역사․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제작하고 있으며, 프로그램은 네이버 TV(http://tv.naver.com/seoultime), 유튜브(검색어: 영상기록 시간을 품다) 또는 tbs 홈페이지(tbs.seoul.kr)에서 다시 볼 수 있다.

▲ tbs 백남우 영상콘텐츠부장

[수상 약력]
2013 미디어어워드 유료방송콘텐츠 다큐멘터리 부문 우수상 수상
2014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PP작품상 수상
2015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그리메상 지역부문 우수작품상 수상
2016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기획부문 대상 수상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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