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제공=kbs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KBS1 ‘거리의 만찬’(이승문 PD)은 지난 21일 ‘결혼을 졸업했습니다’를 방송했다. MC들은 얼마 전 소설가 이외수와 ‘졸혼’을 선언한 전영자 씨를 만나 그 사연 및 현재 행복한지 물어봤다. 이 PD는 지극히 개인적인 가정사를 굳이 공영방송에서 1시간씩 방송하는 데 대해 무척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 ‘홀로서기를 시작한 만 66살 전 씨의 현재의 밝음을 꾸밈없이 보여주자’는 2가지 의도에서 강행군했다고 밝혔다. ‘정상 가정’이 17.7%에 불과한 게 현실인 데도 그걸 건강한 삶의 형태로 여기는 사회적 통념 혹은 선입견을 바로잡고 싶었던 저의로 보였다.

제작진이 집중한 곳은 한국적 가부장제와 그걸 가능케 하는 아내(엄마)의 침묵과 인내, 그리고 참다운 행복이었다. 각종 학문을 창조했고 현재진행형인 인간에겐 인식이란 게 있고, 그건 사회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철학의 시조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로, 그 제자 아낙시만드로스는 4원소로 봤다.

심지어 피타고라스는 수로 봤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중 아직도 그 사상과 이론을 인정받는 이는 플라톤이 유일할 것이다. 그나마 그의 사랑론인 플라토닉 러브가 육체를 배제한 정신적 사랑으로 와전됐을 정도로 인식은 변한다. 우리 조상의 사상이었던 남존여비는 여성주의에게 밀려난 지 오래다.

플라톤은 2300여 년 전에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했다. 지금은 지극히 당연하고 유권자의 연령을 낮추자는 주장이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남자도 상투를 틀어야 어른이 아니라 서양처럼 만 18살이면 어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 ‘너는 펫’은 역전된 남녀관계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게 옳다기보다는 시대는 자꾸 변하므로 따를 건 따라야 한다는 메시지다. ‘졸혼’은 ‘결혼을 졸업하다’라는 그럴듯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N포세대’라는 신조어에 담긴 뜻은 폭넓다. 남자의 경우 생활비를 책임져야 하기에 개인적인 취미, 여가, 계발 등을 포기하는 걸 거부해 결혼을 포기한 것이다.

여자는 결혼은 곧 출산이고, 그건 곧 육아이므로 커리어를 중단하고 남편의 내조와 아이 뒤치다꺼리에만 몰두해야 하는 데 대한 거부감이 점점 커지고 확산되는 것이다. 천박한 본능적 의지에의 승리를 주창하며 이성을 강조한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가 현실적 반영으로써 젊은이의 환영을 받는 듯하다.

쇼펜하우어가 여성을 우습게 안 건 매우 편협한 시각이긴 했지만 그가 바라본 결혼과 출산은 확실히 현시대에 들어맞는 견해였다. 그가 가치관으로 설정한 ‘지성에의 의지’는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보다 숭고했고 교훈적이었다. 성욕은 죽음에의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종족보존의 의지라는 의견은 옳았다.

▲ 지난 3월 민주언론시민연합 선정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수상한 제작진.(사진 제공=kbs)

죽음에 대한 공포는 변함없지만 삶의 가치관이 바뀌었다. 모든 사람의 목적은-수단은 제각각이지만-행복이다. 경제적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는 축재가 수단과 방법이겠지만 모든 이가 그렇지는 않다. 재벌이 되기 싫은 사람은 없겠지만 불가능한 목표에 헛심을 쓰기보다는 현실적 만족을 추구하기 마련.

이제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니 기왕이면 경험해보고 후회하자’는 낙관적 경험론은 안 통한다. 그 경험에 청춘과 돈을 없애고, 자아를 희생한 뒤에 후회할 필요도 없이 부모 세대가 충분히 입증했기 때문이다. 이 PD는 ‘전 씨가 조금은 이기적일지 몰라도 행복한 것만큼은 확실하다’고 전했다.

이제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기준도 조금 달라져야 하겠다. 기존의 포괄적 이기주의의 규준으로 볼 때 전 씨 혹은 이외수는 이기주의자다. 오래전 그들은 모든 이는 때가 되면 반드시 결혼과 출산을 해야만 사람 구실을 한다는 관습 혹은 그걸 근거로 한 본능에 따라 남들과 똑같은 결합을 해 살았다.

하지만 특히 전 씨의 경우 살아보니 그게 자신의 행복과 거리가 멀었다는 걸 깨달았고,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여생에서 자아를 찾고, 그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자는 판단에서 이외수의 ‘졸혼’ 제의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행복하다는 고백이 그 증거다. 그러니 이기주의자라고 보긴 힘들다.

철학자나 스콜라주의자에게 이기주의는 무조건 비난받을 일이지만 자본주의와 민주공화주의가 결탁한 현대에선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이기적 자유는 개체의 행복일 뿐이다. 이타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경건했던 시대엔 이타주의는 희생과 일란성 쌍둥이였지만 이제 행복은 공리주의 쪽이다.

그리스신화의 익시온은 제우스에 대한 배은망덕으로 불타는 수레바퀴에 묶이는 형벌을 받았다. 쇼펜하우어는 동양의 윤회사상을 ‘익시온의 수레바퀴’와 연결해 ‘인간은 원처럼 영원히 죽지 않고 다시 태어나는 벌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확실히 2019년 대한민국에서의 삶은 쇼펜하우어가 맞는 듯하다.

‘거리의 만찬’이 주목한 건 각 개체의 선택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었다. SNS의 발달로 조금이라도 이름이 알려지면 모든 언행에 있어서 여론의 심판을 받아야만 하는 현실 속에서 이제 인식론적 선입견을 바꾼 관념론을 채택하자는 게 테제였다. 전 씨는 결혼을 졸업한 게 아니라 제 인생에 입학했다.

‘졸혼’은 인류의 수레바퀴까지 가자는 게 아니다. 개인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자는 표제다. 이해타산이야 당사자들 간의 문제고, 그게 해결됐으니 ‘졸혼’이 합의된 것이며, 타자 입장에선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면 그러려니 하는 게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의 정서라는 점에서 ‘거리의 만찬’은 잘했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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