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제공= kbs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KBS 공개홀에서 열린 ‘개그콘서트’ 1000회 특집 녹화(방송 19, 26일)에 지난 20년간 ‘개콘’을 이끈 개그맨 100명이 모였다. 이들 중 60명을 대상으로 ‘한겨레’가 ‘최고의 코너’, ‘최고의 캐릭터’, ‘최고의 유행어’ 등을 설문 조사한 결과 ‘봉숭아학당’, 김병만, ‘고뤠’ 등이 뽑혔다.

‘봉숭아학당’은 1991년 ‘한바탕 웃음으로’의 코너로 시작돼 2000년 ‘개콘’에서 재생했다. 그 후 2006년 12월 24일 폐지, 2008년 4월 6일 부활, 2011년 7월 3일 시청률 저조로 폐지, 2번의 특집을 거쳐 2017년 7월 2일 부활하는 등 파란만장한 과정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는 유일한 코너다.

‘개콘’ 중 가장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캐릭터가 식상해지거나 시청자의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가차 없이 다른 인물로 교체된다. 이 코너의 인기 비결은 뭐니 뭐니 해도 사회 비판과 풍자일 것이다. 김성원이 절대 영어를 안 쓰겠다고 버티지만 결국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든 영어에 굴복하는 식이다.

SBS ‘정글의 법칙’을 이끄는 오늘날의 김병만을 있게 한 주역은 ‘달인’일 것이다. 그는 ‘뭐든 다 잘할 것처럼, 다 아는 것처럼 허풍 떠는 사람들을 빗대 이 코너를 기획했다’고 한다. 그는 트릭이 아닌, 그만의 체력과 능력으로 서커스 같은 기술을 펼쳐 놀라게 한 뒤 결정적으로 허풍을 드러내며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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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현은 현재 ‘먹방’의 중심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사실 그를 있게 한 배경은 ‘비상대책위원회’ 코너를 통해 ‘고뤠’를 유행시킨 데 있다. 그는 “지금부터 내 지시에 따른다”라고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지만 이내 불가능에 직면하곤 “고뤠?”라며 쥐구멍을 찾는다. 사회나 조직의 부조리를 비튼 것.

SBS 개국 전 예능 프로그램이란 개념이 없을 때 KBS와 MBC 양대 산맥은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맞대결을 펼쳐왔다. KBS가 ‘쇼 비디오자키’ 같은 프로그램으로 버라이어티화하면 MBC는 ‘오늘은 좋은 날’ 식으로 드라마타이즈화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반복하면서도 정통 코미디는 지켰다.

하지만 낮은 시청률을 감당할 수 없었던 MBC와 SBS는 정통 코미디를 포기했다. ‘개콘’ 역시 한때 35%의 시청률이 아득한 한 자리 수에서 허덕이지만 KBS는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현재 시청률이 8%대인데 이는 케이블TV와 종합편성채널의 약진을 감안할 때 결코 실망할 수치는 아니다.

TV의 기능은 보도와 정보만큼 재미도 중요하다. 물론 그 재미가 가두판매대나 SNS 수준이라면 곤란하겠지만 퇴근 후 가족들과 한자리에 앉아 하루의 여정을 마감하는 예능이나 드라마라면 피로회복제다. 주말에 밖으로 나갈 여건이 안 되는 이들에게 ‘복면가왕’과 ‘개콘’은 새 주를 버텨낼 충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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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의 영원한 대부 찰리 채플린은 슬랩스틱 코미디 안에 사회 풍자와 비판을 담아냄으로써 희극의 미학을 완성한 바 있다. 오랫동안 수많은 독자들이 신문의 시사만화를 탐독했던 건 정치, 사회, 경제 등 생활에 직결된 가장 큰 영향력의 부조리를 풍자, 비판하는 촌철살인의 화풍과 주제 때문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은 건국 초기와 맞먹을 만큼 이념의 대립이 극에 달해있다. 정치권이 만들어낸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라는 관념화된 우상에 취해 지역감정의 불씨에 풀무질을 하고, 민주주의에 근간을 둬야 할 자본주의를 잘못 해석해 집단 이기주의와 지엽적인 가족주의에 물들어 이타심과 정의를 잃었다.

황교안 총리(박근혜 대통령) 시절 2년과 문재인 정부 2년의 경제지표를 보도한 최근 머니투데이에 의하면 실업률을 제외하면 대부분에서 지금이 살짝 낫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체감경기가 최악인 이유는 아마도 이런 이념 대립 탓일 것이다. 주정주의나(감정 우선) 주의주의(의지 우선)가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주지주의가 대세인 건 지성, 이성, 오성의 진리 때문일 것이다. 최근 공개된 청와대 회의 녹취를 통해 상상 이상이었음이 확인된 최순실의 국정농단의 충격으로 다수 국민은 패닉 상태다. 이성과 오성에 근거해 지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에 무리다. 영화 ‘극한 직업’이 전 국민을 사로잡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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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유머가 절실한 이유다. 국정농단 폭로 때 ‘영화가 더 재미없다’던 다수의 국민은 도저히 민주공화국에서 발생할 수 없을 것 같은 비상식의 만연에 넋을 잃고, 혼을 빼앗겼다. 생활비가 빠듯해 극장에 갈 수 없거나, 극장과 거리가 먼 곳에 사는 서민들에게 ‘개콘’이 필수적이고 절실한 이유다.

제작진이 충분히 숙지하고 있겠지만 코미디의 필수불가결한 양대 무기는 해학(비판)과 풍자(동정심)다. 사회적 이슈와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유명인을 주제와 소재로 삼아 트렌드에 뒤지지 않는 가운데 정면으로 깎아내릴 이와 달래줄 이에 대한 ‘대우’를 확실하게 해야 많은 시청자를 열광시킬 것이다.

개인적으로 ‘개콘’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논란이 인 개그맨과 거리를 두지 못한 것과 ‘옹알스’(2007년)를 놓친 두 개의 근시안적 시각이다. 해당 개그맨이 인기가 있고 업계에서 무게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공영방송이란 정체성에 잣대를 댄다면 무리수였다. 시청률은 그런 모험에 당위성을 주지 못했다.

대사 대신 행동으로 웃기는 넌버벌 퍼포먼스‘옹알스’는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나간 이유로 ‘개콘’에서는 빛을 못 봤지만 현재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개콘’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공영방송이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유일한 정통 코미디란 점에서 다소 멀리 볼 줄 아는 장기적 안목도 갖춰야 할 것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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