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임채경의 독자적 시선] 최근들어 사회 여러 곳곳에서 노키즈존에 이어 노시니어존까지 확대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먼저 노키즈존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노키즈존 확대에 대한 국민 여론의 투표 결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노키즈존 확대에 대한 문제로 여러 단체에서 투표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 500명 이상의 표본집단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값은 다음과 같습니다.

노키즈존의 확대 찬성
a. 54.7% 찬성 (CBS 513명 표본)
b. 72.7% 찬성 (육아커뮤니티 3252명 표본)
c. 75.9% 찬성 (알바천국 1092명 표본)

대다수인 70~80%가 노키즈존 확대에 대해 찬성을 한다는 것입니다. 재미난 결과는 심지어 육아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조차도 73%가 찬성한다는 결과였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찬성을 한다고 해서 ‘노키즈존의 확대’가 맞는 걸까요? 노키즈존 확대의 찬반을 떠나 조금 다른 방향을 가지고 공생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1. 조금 시끄러워도 조금 불편해도 아이들과 공생하는 나라들

아마도 여행 중에 루브르 박물관이나 런던 박물관을 방문하였을 때, 수많은 관람객들로 붐비는 복잡한 곳에 구석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전시작품을 데생을 하고 있었고, 어떤 아이는 친구들 지우개를 뺏고 뛰어다니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엄숙한 우리나라 전시와 조금은 대비되는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서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아이들의 입장료가 무료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선 과연 우리와 비슷하게 인구증가율이 낮은 유럽에서 이런 정책을 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아이들이 그들의 미래라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타인에게 심하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는 아이들에게 여러 공간에서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도록 허락해줘야 합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Imagination will take you everywhere! (상상력은 당신을 어디든 데려다 줍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사회의 여러 공간을 다니는데 제약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노키즈존이라는 울타리로 사회 곳곳을 막기보단 같이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올바르지 않나 싶습니다.

2. 아이는 우리의 미래를 떠 받쳐 줄 자산이다.

다른 말로 미래의 복지를 책임져줄 자산입니다. 좀 더 냉정하게 경제학적 측면에서 다뤄보겠습니다. 요즘 육아를 하지 않는 딩크족들이 늘어갑니다. YOLO(You only live once) 라는 생각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혼자살기에도 힘든 현 시점에서 당연한 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분들은, 치매환자에 대한 방문치료부터  어르신 무임승차 및 여러 복지 혜택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복지가 가능한 것은 현재 활동하는 세대가 세금을 납부하고, 또한 장차 다가올 다음 세대가 존재하며 이러한 복지를 떠 받쳐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만약 미래 세대가 없다면 더 이상의 복지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젊은 친구들이 미래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을 꼭 하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로는 한국에서 살면서, 취업과 주거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너무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누군가를 부양하고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너무도 버겁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많은 부모들은 동료 딩크족에 비해 상대적인 박탈감과 육아와 생활고로 인해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한 힘듦에도 불구하고, 장차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을 기르는 가정에 좀 더 관용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비록 직접적인 아이의 부모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회적 공동 육아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함께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성숙된 사회 구성원에 대해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식사하는데 아이가 울어대니 많이 불편하네요!’ ‘우는 아이를 데리고 있는 사람들끼리 그렇게 시끄러운데서 모여서 먹어요!’ 라는 정책이 확대된다면 이는 집단 이기주의일 것입니다. 이런 명언이 있습니다. “만약 당신에게 아이가 없다면 그 빚은 인류 공동에게 갚아야 할 몫으로 남는다.” (로이스 맥마스터 부욜)  아이는 더 이상 단지 한 부모만의 자녀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미래의 유산입니다.

3. 아이들은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다. 잠재적 인재이다.

“너희들은 왠지 조금 후부터 떠들 것 같아! 그러니 모조리 미리 들어 오지마!” NO KIDS ZONE!

일부 아이가 떠든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아이들이 떠들 아이로 단정지어지고 입장 제재를 받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마치 일부 흉악범이 남성이기에 모든 남성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아이들을 좋은 공연과 좋은 연주 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였다면 김연아, 피아니스트 조성진 같은 보석들이 발굴 되었을까요? 아이들에게 마음껏 좋은 음식을 맛보게 하고, 좋은 공연과 경기를 마음껏 보게 한다면 그들 중에서 제2의 손흥민, 제2의 골프천재 미쉘위 같은 인재들이 배출될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시끄러워도 아이들에게 미술관과 박물관을 자유로이 개방하고 맘껏 누리게 하는 서유럽의 예에서는 그들 중에 또다른 샤갈, 또다른 피카소 같은 미래의 인재가 나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해법은 무엇일까요?

책임감 있는 부모의 태도와 주변 어른들의 배려가 노키즈존의 확대를 막는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남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위험한 식당 내의 뛰어다님 등은 부모의 직접적인 제재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또한 주위 어른들의 제재 시에 불쾌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 소중한 아이니깐 뛰어다녀도 돼! 뜨거운 뚝배기를 들고 가건 말건 애가 뛰는걸 왜 말려! 어른이 비켜가야지!’ 이러한 일부 부모들의 몰지각한 행동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구성원으로 커가는 아이에게 공공질서를 알려주고 위험성에 대해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타인에게 사과하는 것을 봄으로써 아이에게 ‘내가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었구나!’를 학습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연주회장이나 공연장의 경우, 소리를 지르거나 발로 다른 곳을 차는 행위로 이미 아이는 그 공간에 있을 생각이 없음을 표하는데, 무리한 부모의 욕심으로 그 공간에 머물게 하는 마음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두번의 제재에도 타인의 공연 관람에게 피해를 준다고 판단되면 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와서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을 확실히 듣고 나서 재관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주위에서 보면서 눈살을 찌뿌리거나 욕하지 말고 관용적인 마음으로 바라봐 주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갈 수 없는 노키즈존의 공간을 무턱대고 늘리는 방법 대신, 모든 사회 구성원이 조금씩 배려하고 공공질서를 올바르게 알려준다면, 미성숙한 아이들을 우리들의 소중한 구성원으로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이는 더 이상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책임져야할 미래의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임채경 칼럼니스트]
- 1999년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 대학원 졸업
- 순천 제일대학교 건축과 구조 겸임교수 출신
- 교육청 발간 '사교육없는 자녀교육 성공법' 저자
- 영재교육으로 방송 3사 방송출연  및 EBS '부모'에서 한시간 다큐로 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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