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서스페리아>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서스페리아’(1977)를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리메이크한 동명의 작품을 즐기려면 원작과 연결 짓지 말고, 구아다니노의 이전 작품으로 구축한 선입견을 지우는 게 중요하다. 기괴한 이 작품은 ‘살인마 잭의 집’(라스 폰 트리에 감독)에 예술성을 강화한 컬트무비로 보면 쉽다.

독일 무용계의 전설 블랑(틸다 스윈튼)이 운영하는 베를린 무용 아카데미의 무용수 패트리샤(클레이 모리츠)가 정신과 의사 클렘페러 박사를 찾아가 알 수 없는 말을 횡설수설 늘어놓더니 일기장을 남겨놓고 사라진다. 그녀와 친했던 사라(미아 고스)는 수상한 기운을 직감하고 이를 클렘페러에게 알린다.

클렘페러는 경찰에 패트리샤의 실종 신고를 한다. 어릴 적부터 블랑을 존경했던 미국의 수지(다코타 존슨)가 아카데미의 오디션을 통과한다. 블랑의 대표작 ‘폴크’를 연습하던 중 주인공 올가가 갑자기 선생들은 모두 마녀라며 아카데미를 뛰쳐나간다. 블랑이 난감해하자 수지가 주연을 맡겠다고 나선다.

영화의 시점은 1977년, 원작 개봉 해다. 당시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극좌파 바더 마인호프 집단의 테러로 어지럽던 상황. 미국과 소련은 승전 후 헤게모니를 쥐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무기로 각자의 이익을 위해 혈안이 됐지만 독일은 지도층이 패전의 책임을 지지 않자 급진 세력이 봉기한 것.

▲ 영화 <서스페리아> 스틸 이미지

알려졌다시피 ‘서스페리아’는 아르젠토의 세 마녀 트릴로지의 첫 번째다. 영화는 한숨의 마녀, 어둠의 마녀, 눈물의 마녀 등이 기독교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설정한다. 이는 그리스신화의 혈연관계 없이 태초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한 대지의 의인화된 ‘만물의 어머니 신’ 가이아에서 모티프를 얻은 듯하다.

아카데미는 여성해방의 상징인 동시에 파시즘의 대상화다. 무용수들에게 무상으로 숙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약간의 보수도 지급한다. 블랑은 계속 ‘더 높게, 더 높게’를 외친다. 여성의 사회로의 약진이다. ‘전쟁 전엔 강한 여자가 많았다’는 대사는 근대에 이뤄진 여성의 자립이 전쟁으로 위축됐다는 뜻.

‘누군가에게 망상을 심을 수 있다면 그건 종교’라는 건 기득권 종교에 대한 반발. 곧 나치라고도 한다. 즉 아카데미다. 선생들은 헬레나 마르코스와 블랑을 놓고 지도자 투표를 함으로써 마르코스를 재선시킨다. 마르코스는 복음을 쓴 마가인 동시에 필리핀의 독재자라는 동전의 양면이다. 헬레나는 그리스.

블랑은 흰색이자 19세기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루이 블랑의 의미다. 그녀는 수지에게 “무용수가 되려면 프랑스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독일은 근대 대륙의 관념론의 대표다. 자아 중심의 낭만주의가 팽배했다. 이에 비해 혁명을 거친 프랑스는 인식론적 합리주의, 이상주의, 계몽주의의 대표다.

▲ 영화 <서스페리아> 스틸 이미지

양차대전의 전범이지만 각성 못한 지도층을 지닌 독일에 대한 반발이 넘쳐난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투옥된 적군파를 석방하라고 시위를 벌이는 내용은 식민지화에 혈안이 된 제국주의의 유럽을 대표하는 독일을 향한 데모다. 음악 담당 선생의 이름은 미스 마르크스고, 지하철 다음 역은 프리드리히다.

슬며시 엥겔스와 니체를 끌어들인다. 파시즘을 배척하지만 결코 사회주의를 찬양하진 않는다. 노동자의 유토피아인 공산주의를 선언한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사회주의 혁명의 실패의 근거가 된 레닌을 비판한다. 그리고 니체를 통해 신에게 사망선고를 내린다. 이렇듯 이원론적이면서 반 쇼펜하우어적이다.

“우린 오랫동안 두 쪽으로 나뉘어 있었어”라는 대사가 방점이다. 제국주의와 사회주의, 민주주의와 파시즘이 대립하면서도 양립했던 혼돈의 20세기. ‘Suspiria’는 죽음의 공포로 인한 한숨과 탄식을 뜻한다. “원하는 게 뭐냐?”는 ‘한숨의 여신’의 질문에 신도들은 한결같이 “죽고 싶어요”라고 답한다.

“세상은 버릴 것 천지”, “우린 큰 대가를 치르며 균형의 가치를 깨달았지”, “망상은 진실을 말하는 거짓”, “사랑과 기만은 한 집에 살고, 한 침대를 쓰기도 해”, “육신은 감옥, 질병 중의 질병” “왜 사람들은 최악의 상황이 끝났다고 장담하지?”, “우린 죄책감과 수치심이 필요해” 등은 염세적 이원론이다.

▲ 영화 <서스페리아> 스틸 이미지

하지만 결론만큼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이원론적 세상에는 정의와 이성이 분명히 존재하니까. “내가 유일한 어머니다”라는 대사는 가이아의 영향이다. 그리스신화는 신화일 뿐이고, 그조차도 여러 갈래로 나뉘지만 가이아든, 테루스든, 테라든 이름과 인식만 다를 뿐 분명 어머니는 유일신의 존재다.

그래서 “어머니의 자리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있으나 그녀의 자리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어머니의 신성함과 여자의 자기중심적 존재론을 강하게 설파한다. ‘한숨의 마녀’가 ‘기름부음’을 거론하고 의식을 예술이라 지칭하는 건 “내가 제우스의 증조할머니”라는, 기독교에 대한 도발이다.

후반부의 ‘폴크’ 공연은 영화 속 또 다른 장르의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지적 보너스이고, 영화의 컬트적 분위기의 연장이자 오컬트적 공포를 배가시키는 장치다. 블랑, 클렘페러, 마르코스의 3역을 소화해낸 스윈튼의 연기는 앞선 언론과 평단의 찬사가 왜 극치를 이뤘는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기념비적이다.

원작의 강렬한 음악은 감미롭거나 서정적으로 바뀐 대신 충격적인 색감과 미장센은 한층 강화됐다. 잦은 인서트와 교차편집은 해석이 난해할 수도 있지만 엄청난 반전 후엔 이 영화의 그로테스크하고 세기말적인 정서적 미학이 이해될 것이다. 사랑과 평화와 예술! 152분. 청소년 불가. 5월 16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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