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생일>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TV 드라마와 달리 일부러 이동해 돈을 주고 관람해야 하는 영화이기에 감독이 관객을 가르치려 들면 아무래도 흥행에서 불리하다. 그런 위험을 감수할 감독과 투자자는 많지 않다는 점에서 ‘생일’(이종언 감독)은 매우 영리한 최루탄이다. 세월호 참사를 매개체로 추억과 트라우마를 동시에 합주한다.

세월호 참사로 단원고 학생 수호가 세상을 떠난 지 3년여. 당시 베트남에서 회사를 경영했던 아버지 정일(설경구)이 귀국해 여동생 정숙(이봉련)으로부터 받은 새 주소로 찾아가 아내 순남(전도연)과 딸 예솔(김보민)이 사는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지만 인기척이 없다. 할 수 없이 정숙의 집에 짐을 푼다.

다음날 정숙과 함께 예솔의 초등학교를 찾아가지만 아빠의 기억이 가물가물한 예솔은 거리를 둔다. 순남이 일하는 마트를 찾아가지만 그녀는 나중에 보자며 외면한다. 정일은 예솔의 하굣길을 도와 집에 들어가 조심스레 수호의 방문을 연다. 아들의 체취가 남은 물건을 보고 도저히 참지 못하고 나온다.

예솔의 부탁에 화장실 전등을 갈아주는데 순남이 들어온다. 순남은 정일 앞에 이혼서류를 내밀고, 정일은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며 나간다. 며칠 뒤 정일은 순남의 차를 타고 세월호 희생자 추모공원을 찾는다. 때마침 다른 유족들을 만난다. 순남은 소풍 온 듯 떠들썩한 그들이 경멸스러워 자리를 뜬다.

▲ 영화 <생일> 스틸 이미지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족들을 위로하는 공간 ‘이웃’을 운영하는 영준은 며칠 뒤 수호의 생일을 축하하고 그를 기리는 ‘생일’을 하자고 순남에게 제의했다 푸대접을 받지만 정일에게 제안해 허락을 받는다. 우여곡절 끝에 ‘생일’을 열고 정일의 부탁에 순남은 예솔을 데리고 참석하는데.

날이 갈수록 개인의 이기심이 구성을 앞서고, 이념이 정을 짓밟는 건 사실이다. 아무리 그래도 무고한 생명의 참담한 죽음을 화제 혹은 조롱으로 삼으면 안 된다. 세월호 참사의 직간접적인 영화화나 다큐멘터리 제작은 역사고, 교육이며, 교훈이다. 비리 공무원과 정반대의 민간 차원의 숭고미다.

이창동 감독이 제작에 참여했고, 그의 조연출 출신이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았다는 점에서 품격이란 선입견을 가져도 무방하다. 설경구와 전도연은 최대한 과장을 자제하고 낮은 톤을 유지하다가 후반부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낸다. ‘실미도’나 ‘협녀: 칼의 기억’과는 사뭇 다른 그들의 진면목을 보라!

영화는 다분히 이원론적이다. 망자를 기리는 날은 기일인데 굳이 생일을 표제로 택했다. 고인의 태어난 날이라니! 탄생과 사망, 만남과 이별의 이원론은 삶과 죽음은 결코 다른 게 아니라는 합일론이나 일원론으로까지 비약된다. 이창동의 제자이기에 그 정도 심오함은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 영화 <생일> 스틸 이미지

과연 삶이란, 또 죽음이란 뭘까? 행복의 기준은? 산 자는 타인의 죽음을 알 수 있다. 노인도 아닌 17살의 사고사는 참혹하다. 그런데 그를 사랑하는, 그래서 잊지 못하는, 그에 대한 죄악감과 자책감을 가진 가족이라면 고통은 얼마나 클까? 다른 세계에서 그런 가족을 바라보는 망자의 아픔은?

고대 이집트의 종교 의식부터 정통 종교와 민간 신앙까지 죽음을 끝으로 보지 않거나 축제로 여기는 전통은 세계 곳곳에 있다. 희생을 제외한 자살이나 불의의 사고사일 경우는 다르지만. 세월호 희생자를 애도하는 의도와 함께 그를 사랑했던 이들의 슬픔과 생존자의 후유증을 쫓는 시선이 놀라운 영화다.

연출의 중심은 과장 없는 비애와 추억이다. 카메라 테크닉이나 조명의 조작으로 눈물을 쥐어짜려 의도하지 않는 의도가 절묘하다. 반전 수준의 픽션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세월호 희생자 304명 및 생존자 172명 중 충분히 있을 법한 가능성이자 감독의 취재의 결과이기에 머리를 때리고 가슴을 후벼 판다.

순남이 한밤에 세탁기를 돌리는 건 그나마 사고가 자유롭고 감정이 진정된 시간에 아픔을 씻고 평정을 찾기 위해서다. 그러나 돌아가는 세탁물은 마음속의 통증을 가라앉히기는커녕 더욱 혼미하게 만든다. 아침에 예솔에게 “엄마 좀 일으켜줘, 엄마도 힘들어서 그래”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이유다.

▲ 영화 <생일> 스틸 이미지

그녀가 수호에게 제일 미안한 게 사고 당시 전화를 받지 못한 것이라면 정일은 오래 베트남에 머물고 있었고, 다소 늦게라도 귀국할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수호와 함께 있을 때도 별로 한 게 없었다. 그래서 영준의 수호에 대한 기억을 묻는 질문에 딱히 해줄 말이 없다.

정일은 화장실 등은 고치지만 현관 센서 등은 못 고친다. 센서 등은 왜 무시로 켜졌다, 꺼졌다 반응할까? 감독은 다분히 관념론적이다. 순남은 철마다 수호의 옷을 사 옷걸이에 건 뒤 수호(?)와 대화를 나눈다. 흡사 범신론적이기까지. 그런데 그건 우리의 제사 문화와 맞닿고, 민속과 상통하는 것이다.

수호가 엄마를 ‘순남 씨’라 부르며 연인처럼 대했던 건 프로이트에 대한 과감한 도발이다. 의식과 개념은 시대에 따른 인식의 변화로 변전과 전회를 거듭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현대에선 무시되는 경향이 강하다. 정일이 출국 전 수호에게 순남과 예솔의 보호를 부탁하는 시퀀스가 현실적이다.

정일이 돈 번다고 머문 곳이 하필 베트남이다. 1960~70년대 우리 군인들은 미국 정권의 야욕에 동원돼 베트남 국지전에서 희생됐다. 무의미하게 죽기도, 무고한 현지인을 죽이기도 했다. 왜 정일은 깨끗한 수호의 여권에 출국 도장을 찍기 위해 오열할까? 주의! 손수건 몇 장은 필수. 4월 3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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