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악질경찰>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오는 20일 관객들의 관심을 끄는 한국 영화 ‘우상’(이수진 감독), ‘악질경찰’(이정범 감독), ‘돈’(박누리 감독)이 동시에 개봉된다. 마블의 슈퍼히어로 ‘캡틴 마블’과 ‘어벤져스: 엔드 게임’의 중간에, 그리고 3월 비수기라는 시장성도 아랑곳하지 않고 뚜껑을 열 만큼 배급사가 자신감을 가진 것일까?

사뭇 다른 스타일의 세 감독이 각각의 장르를 구현한 이 작품들은 묘하게도 유명 연예인의 추악한 행위 혹은 혐의가 속속 드러나거나 제기되는 상황과 맞물린다. 더불어 한국전쟁 이래 가장 첨예하게 국론이 분열된 정치·사회적 현실과도 연결된다. 이념과 스타란 우상이 떡하니 ‘황금소’로 군림한다.

‘우상’은 공포에 가까운 미스터리 스릴러, ‘악질경찰’은 액션 미스터리, ‘돈’은 코미디 미스터리를 각각 지향한다. 반전이란 장치를 통해 재미를 추구하는데 ‘돈’만 전형적인 상업영화의 구조를 따르고, 나머지 작품은 전형화의 탈피를 추구해 각 감독만의 꽤 심오한 메시지와 사회적 환기를 구축한다.

‘악질경찰’은 안산 단원경찰서의 비리 형사 조필호가 주인공. 일선 경찰은 물론 고위급 간부까지 ‘버닝썬’을 비롯해 연예 스타의 뒤를 봐줬다는 의혹이 이는 때라 절묘하다. 인간으로서의 도덕성과 공무원으로서의 책임감이 전혀 없던 그가 갑자기 정의롭게 변하는 것만 제외하면 매우 빛난다.

▲ 영화 <우상> 스틸 이미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발생. 세월호가 가라앉은 이유는 나왔지만 왜 304명을 구하지 못했는지는 명명백백하지 못하다. 당시를 둘러싼 숱한 의혹은 아직도 부유 중이다. 심지어 고인들의 명예를 갈기갈기 찢고, 유족들의 상처에 양잿물을 붓는 언행마저 등장하는 지옥도가 유통된다.

필호의 변전, 혹은 본래적 존재로의 회귀의 계기는 세월호 희생자의 급우였던 미나다. 부모를 여의고, 세상에 버림받은 그녀에게 이 사회는 냉정하고 잔인할 따름. 자신과 자기 가족의 최대 행복을 추구한다는 미명하에 오로지 돈벌이에만 눈이 멀었고, 사회는 물론 이웃에게조차 불친절한 사람들뿐.

그런 세상에서 미나가 할 수 있는 일은 일탈뿐, 꿈꿀 수 있는 희망은 절망뿐.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고, 도덕과 이성을 이기심과 바꾼 어른들의 눈에 그런 미나는 그저 불량 청소년이고, 가까운 미래의 범죄자며, 그래서 잉여인간일 따름이다. 필호도 그런 줄만 알았던 미나에게서 정의를 배운다.

미나가 저지르는 범죄행위는 불법일 순 있지만 궁지에 처한 후배를 돕는 게 목적이었다. 그녀에게 돈이 급했던 건 클럽에 가기 위함이 아니라 숭고한 희생을 한 환자의 치료비에 보태기 위해서였다. ATM에서 3000만 원을 턴 필호와 회사 돈 7800억 원을 횡령한 재벌 회장 중 누가 더 악질일까?

▲ 영화 <악질경찰> 스틸 이미지

‘우상’으로 오면 그 언명은 더 심오해지고, 테제는 더 살벌해진다. 청렴결백, 지성미, 교양미 등을 갖춘 완벽한 도의원 명회는 도지사 선거에 뛰어든다. 지금껏 그가 이글이글 불타는 내면의 욕망을 감추고 완벽한 외면을 꾸민 이유는 도지사보다 더 높은 자리일 것이다. 권력욕은 곧 돈이니까.

우상은 신처럼 가치관이지만 사이비 종교처럼 편견이 더 강하다. 명회의 우상은 권력이고​, 그걸 쥠으로써 우상이 되려 한다. 당연히 그 과정은 왜곡이고, 포장이며, 은폐로 점철되는 범죄의 축제다. 현재 권력은 일부 정치권, 재벌, 그리고 연예 스타가 ‘3권 분립’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권력자들은 스스로 ‘법’을 만들거나 합법적(?)으로 어기고, 미디어를 이용한 프로파간다로 우상화를 공고히 한다. 대한민국헌법은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했다. ‘민주공화국’은 국민이 주인이고, 모든 일은 모든 국민이 다 같이 한다는 정체성이다.

과연 그럴까? 혹시 우리 국민이 아직도 16세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건 아닐까? 영국의 ‘권리장전’과 미국의 독립에 영향을 준 존 로크도, 프랑스혁명과 근대 민주주의를 야기한 장 자크 루소도 당시엔 획기적이었지만 지금은 17세기(‘통치론’)나 18세기(‘사회계약론’)가 아니다.

▲ 영화 <우상> 스틸 이미지

종교의 자유는 인정하지만 종교에의 복종을 강요할 수 없는 게 현재다. 연예인의 모럴 해저드는 도덕성과 책임감을 기초로 한 인격을 갖추지 못한 본인과 더불어 멘토나 기획사에 책임이 있다. 그러나 대중도 그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 왜? 기획사의 포교에 말려들어 연예인을 우상으로 섬겼으니까.

그럼으로써 질서와 법에 무감각해진 그들은 자신의 비뚤어진 의식을 법제화하고, 어긋난 욕심을 입법화했으며, 그로 인해 얻은 특권을 사법화한 것이다. 그건 분명히 민주공화국의 체제를 거스른다. 종교 개혁은 종교가 그 본래의 취지를 잃고 권력에 취해 탐욕에 빠진 데 대한 변혁의 몸부림이다.

공인된 종교가 추앙하는 신은 결코 부도덕과 이기심과 타락을 종용하지 않는다. 원수마저도 사랑하라는 인도주의와 박애 정신을 설파한다. 제러미 벤담보다 진일보한 공리주의다. 명회도, ‘버닝썬’ 특혜의 배후도, 부도덕한 연예 스타도 눈먼 대중이 만든 우상이라는 점에서 별로 다를 바 없다.

특별한 영화는 철학과 문학과 예술을 통해 큰 교훈을 준다는 게 신파적인 드라마와 다르다. ‘우상’과 ‘악질경찰’은 우리 일상이나, TV 등의 미디어를 통해 접한 현실을 반영하는 철학으로 웅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혹시 우리 스스로 ‘악질경찰’이나 ‘우상’을 만드는 게 아닌지 자아성찰이 절실하다는.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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