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해피 투게더>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김정환 감독의 첫 연출 영화 ‘해피 투게더’는 장점과 단점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확실하지만 시나리오가 어수선하고, 일부 캐릭터가 과장되거나 오용되며, 이런 상황에서의 연출이 매끄러울 리가 없다. 게다가 매우 따뜻하지만 감동을 의도한 연출의 톤은 과거로 회귀한다.

2004년. 나이트클럽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석진(박성웅)은 아내로부터 버림받았지만 9살 외아들 하늘(최로운)을 보람 삼아 열심히 산다. 하지만 예술을 향한 꿈과 현실의 치열함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가난에 허덕인다. 사는 곳의 월세는 밀렸고 클럽엔 라이벌 영걸(송새벽)이 입성한다.

결국 클럽에서 쫓겨나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의 사채 빚을 갚으라는 깡패 유 사장의 압박까지 옥죄어온다. 하늘은 석진의 유일한 팬이다. 그의 꿈은 빨리 색소폰 실력이 늘어 아빠와 함께 멋진 재즈 무대에 서는 것. 그러면 자기를 버리고 떠난 엄마가 되돌아올 것이라 믿고 있다.

▲ 영화 <해피 투게더> 스틸 이미지

하늘은 친형처럼 아빠를 돌봐주는 악기점 사장 달수(권해효)로부터 색소폰을 배우고 있는데 이를 알게 된 아빠에게 크게 야단을 맞고 색소폰을 놓는다. 유 사장은 석진이 빚을 갚을 능력이 없자 제안을 한다. 자신이 아는 선장의 배를 3년만 타면 그 급여로 빚을 탕감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석진과 하늘은 어촌마을로 흘러들어오지만 도시생활과 달리 나름대로 행복을 찾는다. 그런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던 어느 날 유 사장이 선장에게 영걸을 내던진다. 그도 빚을 못 갚아 이리 팔려온 것. 그렇게 다시 만난 석진과 영걸은 어느 폭풍우가 사납던 날 함께 실종되는데.

영화를 관통하는 일관된 소재는 색소폰과 20세기 초 아일랜드에서 비롯된 팝송 ‘Danny boy’다. ‘대니 보이’는 어린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애끓는 마음을 담아 생겼다고 한다. 색소폰이란 악기는 고음이든 저음이든 슬프다. 장조일 경우 관능적이긴 하지만 대부분 고통의 정서를 자극한다.

영화는 색소폰의 그런 기조를 기저에 깔고 있다. 자본주의란 체제, 그래서 발생한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란 아집, 그로 인해 피해볼 수밖에 없는 순수한 영혼. 그 버림받은 영혼이 안주할 장소와 안식할 공간은 없다. 같은 처지의 영걸이 석진을 밀어버리는 살벌한 생존경쟁만 득세할 뿐.

▲ 영화 <해피 투게더> 스틸 이미지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같은 상황이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소외계층이다. 중년의 어긋난 일탈이 끈적거리는 성인 나이트클럽에서 클래식과 재즈를 꿈꾸는 석진도, 현실을 일찌감치 직시하고 얍삽한 상술에 눈을 뜬 영걸도, 꿈을 간직한 하늘과 달수도 모두 자본주의의 희생양이다.

영걸이 사기꾼이 된 이유는 그래야만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 달수가 하늘에게 색소폰을 가르치는 건 예술과 그런 영혼을 가진 재능을 믿기 때문. 하늘이 아빠를 믿는 건 엄마를 믿기 때문. 영화가 딱 한 번 장엄한 건 현대 자본주의가 예술을 제대로 알고 신뢰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그러나 석진을 통해 먼저 자포자기를 보여준다. “예술은 개뿔”이라는 클럽 사장에게 패배를 인정한 석진은 “인생 골라 살 수 있나, 현실은 현실”이라며 “이번 인생에서 난 주인공이 아냐, 엑스트라야”라며 색소폰을 팔려 한다. 영걸은 일찌감치 “예술도 돈 있어야 하는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 영화 <해피 투게더> 스틸 이미지

이 영화가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가장 큰 상업적 포인트는 석진과 하늘의 극점에 몰린 상황에서 더욱 돈독해지는 사랑이고, 그들의 순수함의 대척점에 선 영걸의 극단적 생존의 몸부림 혹은 개인주의다. 여기에 달수의 이유 없는 우정과 박애주의가 감동을 위한 지원군으로 포진돼있다.

더불어 타고난 재능과 끊임없는 노력은 엄청난 보상을 보장한다는 성공 스토리가 무협지의 공식처럼 상업성을 위해 장치돼있다. 하지만 감독의 시나리오를 판별하는 해석력과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수리능력은 의문이다. 베드로, 김 회장, 수지 같은 뜬금없는 낭비적 캐릭터는 허무하다.

석진이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늘에게 색소폰을 가르치는 달수에게 “나 이렇게 사는 거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라고 항의하는 설정은 다분히 구태의연하다. 하늘의 “아빠처럼 사는 게 어때서?”라는 항의는 눈물겹다기보다는 다시 한 번 고색창연하다. ‘색소폰’과 ‘섹스폰’의 유머는 참담하다.

그럼에도 “여기 영 걸은 없고 올드 걸만 있네”라는 허무개그를 펼치던 영걸의 마지막 반전은 반갑고 통쾌하다. “이젠 도망 안 가”라는 그의 대사 한 마디가 이 영화를 영화라는 존재자로 존재할 수 있게끔 결정적인 합목적성을 제공한다. 모처럼의 가족 영화라는. 111분. 12살. 11월 15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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