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나부야 나부야>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2012년. 경남 하동군 화개면 단천마을 외진 곳 산자락 외딴집에 이종수(91) 김순규(92) 부부가 78년째 함께 살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나부야 나부야’(최정우 감독)는 그때부터 이듬해까지 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일과와 이종수의 아내를 떠나보낸 직후와 그 뒤의 일상을 담고 있다.

‘산속’과 다름없는 곳에 단둘이 사는 노부부의 일상은 매우 단조롭다. 방도 안방과 건넌방 딱 두 개. 부엌에서 장작을 때는 구들장 구옥이다. 아내는 거동이 불편해 거의 방안에 앉거나 누워있고, 역시 몸이 성치 않긴 하지만 남편이 요리, 빨래, 설거지, 청소 등 모든 살림살이를 도맡아 한다.

군산 등 도시로 다 나간 자식들은 노쇠한 부모를 편안한(?) 도시로 모시겠다고 하지만 부부는 이곳에서 단둘이 생활하는 게 더 마음 편하고 좋다. 날씨 좋은 날 아침에 일어나 요강을 비우고 닦은 뒤 아내와 밥을 먹은 남편은 숲에서 잣나무 가지를 주워 낫으로 깎아 아내의 비녀를 만들어준다.

허리가 최악이라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귀도 안 들리며, 머리숱도 많이 없어진 아내는 돈 주고 산 비녀가 미끄러져 자꾸 빠진다고 했는데 잣나무는 성긴 머리숱을 잡아주고 튼튼하기까지 하다. 식후 밥그릇으로 믹스커피를 마시고 TV를 본다. 과자 봉지조차 찢을 힘이 없어 가위로 자른다.

▲ 영화 <나부야 나부야> 스틸 이미지

날이 추워지자 남편은 홀로 집을 나서 버스를 타고 하동시장에 간다. 아내의 내의 2벌과 두터운 버선을 세트로 산다. 붕어빵도 사서 아내에게 먹인다. 그렇게 하루를 보낸 뒤 저녁상을 물리고 천자문을 읽는데 옆에 앉아있는 아내가 꾸벅꾸벅 존다. 이부자리를 펴고 몇 날을 보내니 12월 31일.

해가 바뀌고 소한이 다가오자 시골 산자락엔 혹한이 몰아쳐온다. 그래도 마루 밑에 놓인 털신 세트를 보면서, 함께 모은 다리 끝의 버선 세트를 보면서 흐뭇한 두 사람.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아내를 보내고 여전히 집을 지키는 남편. 가끔 자식을 따라 도시로 가지만 이내 돌아온다.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보기 드물게 금슬이 뛰어난 부부다. 남편은 다시 태어나면 어쩔 거냐고 물으면서 자신이 먼저 “당신과 결혼하겠다"라고 말한다. 먼저 갈 걸 직감한 아내는 “우리 남편 같은 사람 없다"라며 “저승에서 다시 만나겠다"라고 남편에 못지않은 애정을 과시한다.

평소 “여기서 오래 살다 같이 죽자"라고 약속하는 두 사람. 고목 등걸 같은 얼굴의 아내가 사랑스러워 머리를 빗겨주고 발톱을 깎아주며 첫눈이 오자 작은 눈사람 2개를 만들어 보여주며 “이건 나, 이건 당신”이라고 애교를 부리는 남편. 그들에게 “걱정은 아픈 것, 소원은 함께 죽는 것”이다.

▲ 영화 <나부야 나부야> 스틸 이미지

남편이 “가을이 좋아, 봄이 좋아?”라고 묻자 아내는 “몇 살이냐고?”라고 ‘동문서문’을 한다. 남편은 거듭 묻는다. 아내의 귀가 나아지길 바라는 것도, 진짜 어느 계절을 선호하는지 궁금해서도 아니다. 그건 그냥 자신이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일 따름. 무의미한 대화에서 의미를 찾는 현자 같다.

남편은 매일 날씨 등을 간단하게 메모하는 일기를 쓰고, 다 쓴 부탄가스통에 구멍을 내며, 삼강오륜을 외우는 지적인 면모까지 갖췄다. “오래 살아 다 알지만 힘에 부쳐 못해”라는 그는 “제 몸은 제가 아껴야 한다"라는 철학을 펼친다. 설마 니체를 읽었으랴마는 분명히 (니체의) 철학이 깊은 듯하다.

아내에게 “이제 한 살 더 먹는다"라며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짓더니 아내를 떠나보낸 뒤 마루에 넋을 놓고 앉아 하염없이 허공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선 인간 군상의 인생, 다양한 사람들의 복잡하거나 평범한 삶 등의 초월이 읽힌다. 그 어떤 위대한 작가가 이보다 애틋한 사랑을 쓸 수 있을까?

부부의 삶은 얼마나 단조로운지! 평면 위를 돌고 돌거나, 혹은 선 위를 계속 왕복하는 일상이 반복되지만 그들이 서로를 생각하고 대하는 마음 씀씀이와 ‘애정행각’은 그 어떤 ‘세기의 커플’의 러브스토리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환상적이다. 작위적으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다큐멘터리의 힘이다.

▲ 영화 <나부야 나부야> 스틸 이미지

유사한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가 480만여 명을 동원한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어벤져스’도 아닌, 평범한 시골 노부부의 다큐멘터리에 다수의 관객이 몰리는 이유는 진정성과 친근함이 주는 감동 때문이다. 익숙함의 미학 혹은 미감은 질리지 않는 쌀밥과 김치 같은 것.

젊은이들의 노인 혐오증이 급증하는가 하면 언론조차 ‘어르신’이라는 과장된 표현을 하는 사조가 상충하는 이 시대에서 내일의 주인인 젊은이들의 사고엔 분명히 고민의 이유가 존재한다. 노인 공경의 전통이 무너진 이유가 ‘애들’의 잘못이 아니라 과거에 고착된 노인에 있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기 때문.

그러나 ‘님아~’가 그랬듯 ‘나부야~’는 시골 노부부의 순수한 인간미와 그에 근거한 진정한 애정이 넘쳐흐르는 청정미를 자랑한다. ‘너의 결혼식’처럼 눈이 호강할 비주얼이나 드라마는 절대 없지만 자신의 부모나 조부모 혹은 자신의 미래와 근접한 얘기이기에 스토리에 동화되고 플롯에 몰입하게 된다.

제목은 나비다. 끝부분의 남편의 허공을 응시하는 공허한 표정과 한 마리 나비의 비상은 ‘장자’의 호접몽이다. 홀로 남은 남편은 지난날이 꿈만 같은 것이다. 그 행복이 현실인지, 지금의 외로움이 진짜인지 생각하는 듯하다. 어쩌면 저승에서 아내를 만나는 피안이 진짜 삶일 수도 있다. 9월 20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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