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암수살인>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암수살인’은 곽경택 감독의 조감독 출신 김태균 감독이 피해자는 있지만 신고도 시체도 수사도 없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살인사건을 쫓는 실제 형사의 얘기에서 모티프를 얻어 완성한 치밀하고 치열한 미스터리 심리전이다. 눈부신 액션이나 뒤통수를 때리는 맥거핀이 없음에도 강렬하다.

부산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 형사 형민(김윤석)은 한 ‘뽕쟁이’의 주선으로 태오(주지훈)를 소개받는데 그 자리에 들이닥친 강력계 형사들이 태오를 체포하는 걸 눈앞에서 본다. 그는 최근 발생한 살인 및 시체유기 사건의 진범. 3달 뒤 형민은 태오의 요청으로 그를 면회하면서 충격적인 제보를 받는다.

이번 피해자 외에도 6명이나 더 죽이고 암매장을 했다는 것. 형민은 형이 운영하는 회사에 지분이 있는 관계로 나름대로 넉넉한 형편. 태오의 자백에 호승심이 생긴 그는 윗선에 요청해 형사계로 옮긴 뒤 자비로 태오에게 영치금 등 금전과 편의를 제공해가며 단서 하나라도 더 건지려 노력한다.

그러나 태오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형민이 태오의 암수살인 혐의 2건을 허탕 침으로써 결과적으로 재심에서 5년이 감형된 징역 15년형이 선고된다. 이에 담당 검사 수민(문정희)과 형사들의 화만 돋우는 결과를 낳는다. 그럼에도 그는 태오의 광기에서 연쇄살인에 대한 믿음을 지우지 못한다.

▲ 영화 <암수살인> 스틸 이미지

형민은 태오가 죽였다는 여섯 명 중 가장 신빙성이 드는 한 실종자의 가족을 만난 뒤 살인을 확신하고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야산에서 유골을 발견한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대의 결과는 태오가 지목한 여자가 아니었다. 모든 걸 체념한 채 짐을 정리하던 형민은 자신이 간과했던 한 가지를 발견하는데.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하면 범인이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마지막에 뒤통수를 치는 진범의 정체(반전)로 재미를 주는 게 주류였는데 이게 진부해지자 ‘추격자’처럼 애초부터 밝혀놓고 상황극으로 스릴을 주는 방식으로 진화했다면 이 영화는 한 차원 더 높아졌다.

살인범이 태오인 건 처음부터 확실하다. 형민이 찾는 건 첫째, 피해자의 시신이고 둘째, 태오의 진실이다. 태오의 능동적인 자백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를 형민이 힘들게 밝혀나가는 여정에 담긴 궁금증, 긴장감, 괴로움 등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하는 연출 솜씨가 돋보인다.

일반적으로 성공을 위해서 불법과 악행을 자행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자를 소시오패스로 규정한다. 계산적이고, 자아의 위장에 뛰어나므로 감정조절 능력이 좋다. 어린 시절의 비정상적이고 불안한 환경이 원인. 이에 반해 사이코패스는 선천적이고, 감정조절이 미숙해 매우 충동적이다.

▲ 영화 <암수살인> 스틸 이미지

태오는 소시오패스 쪽에 가깝지만 충동적이면서도 버릇처럼 살인을 저지르고 시신 훼손마저도 정당화하는 점에선 사이코패스 성향도 동시에 지녔다. 변신은 배우의 당연한 임무이자 생존의 수단이라지만 주지훈의 진화는 ‘공작’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로도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남자 배우에게 악역은 신인 혹은 조연에서 도약할 기회(‘추격자’ 하정우)이거나 주연배우로서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을 즈음의 전환점(‘악마를 보았다’ 최민식, ‘7년의 밤’ 장동건)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주연배우를 진행 중인 주지훈의 이번 선택은 ‘오빠’에서 ‘대’배우로 일취월장하는 계기가 될 듯하다.

그의 존재감이 워낙 커서인지 김윤석은 오히려 감정 관리로 캐릭터를 완성했다. 시신이 난도질당하고 변변한 장례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채 구천을 떠돌 불쌍한 영혼들에 대한 인간적 연민과 형사로서 그들과 유족들을 위로해주지 못한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하는 속내를 담아내는 솜씨는 보증수표다.

의외로 팽팽한 균형을 이루는 김윤석과 주지훈의 연기 대결, 혹은 태오와 형민의 치열한 심리전과 신경전은 두고두고 회자될 매스터피스다. 독방에 법과 불교 서적 및 부처 등을 모신 치밀한 이중인격의 태오가 저 높은 유리한 위치에 있는 형민보다 훨씬 정신력이 강하다는 게 재미를 탄탄하게 만든다.

▲ 영화 <암수살인> 스틸 이미지

고민 없이 태오의 미끼를 덥석 무는 바람에 비슷한 케이스로 나락으로 떨어진 선배들의 전철을 밟을 것이 뻔한 형민은 그걸 알면서도 끝까지 가보고자 하는데 그 이유는 출세욕도 공명심도 사명감도 아니다. 사랑하던 아내를 뺑소니 사고로 잃은 뒤 재혼하란 주변의 조언에 큰 거부감을 갖는 데 있다.

아내를 지켜주지 못했고, 범인을 잡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과 자괴감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심리학과 철학에서 말하는 ‘투사’이자 ‘반영’이다. 폭력적인 아버지에게서 나고 자란 태오 역시 마찬가지 심리다. 그래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종착역은 멀쩡한 사람의 분노를 유발하는 이 사회의 부조리다.

시신을 훼손하는 이유가 “이리저리 찢어놔야 못 찾지”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답하는 태오가 태어나면서부터 살인자고 소시오패스는 아니었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주신 아멘-라 문신을 하고 불경을 외우는 아이러니가 이를 증명한다. 최소한 그는 신화와 종교를 믿는다는 것이다.

시작의 바다와 끝의 강은 그런 복잡다단한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의미한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진선규의 티셔츠의 ‘PINK FLOYD’는 앨범 ‘THE DARK SIDE OF THE MOON’에 담긴 자본주의의 병폐 등 현대 사회의 어두운 면의 비판이다. 110분. 15살 이상. 10월 3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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