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바이올리니스트 김광훈의 클래식 세상만사]

▲ Thomas Gerbeth

Intro
활에 대한 관심이나 기호는 직접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을 제외하면 극히 미비한 수준이다. 일반 대중은 물론이요, 소위 ‘음악 애호가’를 자처하는 이들조차 악기가 스트라드나 과르네리는 아닌지 여부에 관심이 있을 뿐, 정작 사용하는 활에 대해서는 무지한 수준이다. 아마도 활이란 물건은 모양새부터가 -악기에 비해- 단순하여 주목을 받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웬만한 저가 악기에는 그저 ‘딸려 나오는’ 물건 정도로 인식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일반인들에게 활이란 악기와 마찬가지로 ‘따로’ 구매해야 하는 물건이며, 전문 연주자들은 연주용으로 최소 두 개 이상에서부터 수집용으로 수십 개의 활을 구비하고 있는 사람도 있노라고 이야기하면 대개 놀라움을 표한다. 이에 더하여 전공자들이 선택하는 활의 가격은 최소 기백만 원에서부터 시작하여 수천만 원대에 이르며, 심지어 수억에 이르는 활까지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고작’ 나무 작대기 하나에 이런 가격이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라움과 더불어 허탈함(?)마저 표현하는 이들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활은 중요하다. 활은 악기에 그냥 ‘끼워주는’ 물건이 아닌, 독자적인 역사를 가진 현악기의 한 축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악기가 가진 장점을 강화해 주고 단점을 보완해 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제 악기를 더욱 효과적으로 살리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악기의 빛을 잃게 만들기도 하는, 활의 모든 것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 Domique Peccatte

활의 역사

활은 현악기의 탄생과 더불어 오랜 시간 지속되어 왔지만, 현대 활의 역사는 프랑수와 뚜르뜨(François Xavier Tourte, 1747 - 1835. 4. 25)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원래 시계 장인이었으나 곧 활 제작자로 변신, ‘활의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칭호를 받으며 아직까지도 최고의 활 제작자로 칭송받고 있다. 모던 활의 시발점으로서 뚜르뜨 활은 이전 활에 비해 훨씬 무겁게 제작 되었는데, 그 이유는 활의 헤드 부분에 더 많은 나무를 사용했기 때문이며 또 그에 대한 대칭으로 균형감을 주기 위해 프로그 역시 더 무겁게 제작되었기 때문이라 전해진다. 이에 대한 결과로 사용 가능한 활털의 길이는 약 65cm, 그리고 균형이 잡히는 ‘밸런스 포인트’는 프로그로부터 약 19cm 지점에 위치하는 뚜르뜨 판의 ‘현대 활’이 완성된 것이다. 이후 뚜르뜨를 뒤따르는 수많은 명 제작자들 -Dominique Peccatte, Jacob Eury, Nicolas Maire, François Lupot, Nicolas Maline, Joseph Henry, Jean Pierre Marie Persois- 이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악기나 활 공히 뛰어난 제작자들이 더 이상의 지역 구분 없이 도처에 포진해 있지만, 현악기의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활은 프랑스에서 유독 명보우들이 많이 생산되었다.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비록 같은 기능과 음색이라 하여도, 그것이 프랑스산의 활이라면 훨씬 더 많은 금액이 책정되어 있다. 뚜르뜨는 평생 약 2000개 안팎의 활을 제작하였고, 오늘날에도 고(故) 아이작 스턴을 비롯하여, 많은 전문 연주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뚜르뜨는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활은 제작장에서 즉시 부러뜨리고 결코 작업장을 나가게 내버려 둔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단 한 번도 활에 바니시를 입혀본 적이 없고 오직 파우더와 오일을 활대에 문지르는 것으로 마감처리를 하였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해진다.

활의 각 부위별 명칭

분명 악기에 비해 단순한 외관을 가졌으나 활 역시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고 제각각 제작자의 미의식과 스타일, 그리고 맡은 바 기능이 있다. 그림에서 보다시피 활의 머리(Head)는 악기의 스크롤(Scroll)에 해당한다. 헤드는 활의 플레잉 스타일이나 기능에는 -악기의 스크롤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제작자의 미의식이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활의 헤드만 보고 이것이 어떤 제작자의 것이고 어떤 스타일에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것은 비단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활대부분(Stick)은 활의 생명과도 같은 부분이다.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깎았느냐(라운드 활과 각활에 대한 차이는 차후에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어느 정도로 곡도를 잡아 주었느냐 등에 따라 그 활의 성격이 결정된다. 마감재를 감아두는 Winding 부분의 재료는, 활의 밸런스와 무게에 따라 결정된다. 보통은 은사로 감겨져 있으며, 금사를 감기도 한다. 금사는 밸런스의 이유로 이용되기 보다는, 보통 더 나은 재료(나무)로 제작자가 활을 제작했다는 것을 뜻할 때가 많다. 하지만 금사가 감긴 활은 은사의 활에 비해 소리가 강하며 컨트롤이 은사에 비해 더 어려운 경우도 있다. 나무 자체의 무게로 인해 은사나 금사로 밸런스를 잡아 주기 힘들 경우에는 이 부분에 고래힘줄(Whale Bone)을 이용하기도 한다. 고래 힘줄을 이용한 활들은 은/금사의 활과는 사뭇 다른 플레잉 스타일과 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적응에 시간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활의 프로그(Frog) 부분. 개구리를 뜻하는 단어와 같은 용어를 쓰는 것은 순전히 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프로그는 활의 기능적인 부분으로 대개 흑단으로 처리되나 역시 금사의 활과 마찬가지로 제작자가 특별한 나무를 선별하여 보다 컬렉션의 개념으로 제작한 활에 한해 거북 등껍질(Tortoise shell)을 이용하여 프로그를 제작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가죽을 덧댄 부분(Thumb Leather) 역시 거북 귀갑으로 처리가 된다. 하지만 서방 일부 국가 등에서는 야생 동물 보호 협약에 따라 거북 등껍질 활의 제작 및 반.출입이 금지되어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기실 거북 등껍질은 어디까지나 미의식을 위한 부분일 뿐, 실제 연주에는 활의 헤드와 마찬가지로 하등 영향을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흑단에 비해 재질이 몹시 약하여 파손의 위험이 크다. 끝으로 눈(Eye 혹은 Pariser Eye)과 흑단 끝의 활 조절 나사인 버튼(Button)을 통해서도 특정 제작자의 패턴이나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다.

▲ pernambuco wood

나무의 선택

저가의 활은 브라질우드 등의 재료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대개 활을 만드는 주재료는 퍼냄부코(Pernambuco) 나무이다. 브라질의 퍼냄부코 강 유역에서만 자란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어졌다. 가격이 아주 비싼 것으로 유명한데, 세계 유수 활 제작자들이 이러한 나무를 바로 수입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몇 십 년은 건조해야 제대로 된 활을 만들 수 있고 또 건조. 숙성된 퍼냄부코 나무에서 사용 가능한 부위는 중심부 극히 일부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기실 현대 활 제작자의 난제 중 하나는 바로 이 나무의 선택이다. 활은 그 특성상 좋은 나무의 선택이 전체 제작의 상당부분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한 부분인데, 무분별한 벌목으로 현재 퍼냄부코 나무는 멸종 위기에 처했으며, 세계의 활 제작자들은 연합회를 구성,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자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으나 쉽지가 않은 실정이다. 이에 더해 수출입과 무역의 제한마저 일어나고 있으니 활 제작자들은 이를 대체할 재료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통상 나무의 밀도가 높은 활은 소리가 화려하나 단단하여 발음이 억센 단점이 있고, 밀도가 낮은 나무를 사용한 활은 편안하고 안정적이며 유연하나 소리의 초점에 있어 밀도가 높은 나무에 비해 아쉬움이 있다. 요컨대 양자를 다 만족시키는 나무를 찾기는 쉽지가 않으며 때문에 각각의 특징을 가진 활의 단점을 보완하는 것은 나무를 다루고 제작하는 제작자의 솜씨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다.

▲ violin_bow_Rolland

각 활과 둥근 활

활은 최초의 제작 시에 각 활(Octagonal Bow), 그러니까 8면의 각이 있는 활의 형태이다. 이것을 다시 한 번 깎아 둥근 활(Round Bow)의 형태로 완성하는 것이다. 모든 조건이 완전히 동일한 경우, 각활과 둥근 활 사이의 음색이나 연주성에 차이점은 거의 없고, 실제 차이점은 다분히 심리적인 면에서 발생하는 것뿐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거나 연주자들은 대개 둥근 활을 보다 선호하는 편이지만 여기서 여러분들이 알아야 하는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뚜르뜨의 최고 수준의 활들 중 상당수는 각 활이라는 사실이며, 두 번째로는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각 활을 만드는 것이 보다 까다롭다는 사실이다. 대개 나무의 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활로 각 활을 제작하며 보다 높은 나무로 둥근 활을 제작한다. 현대 활을 포함, 최고 수준의 활들에서 각이냐 라운드냐를 구분하는 것은 사실 무의미해 보인다. 나탄 밀슈타인 등의 예에서 알 수 있듯 과거와 현대의 대가들의 연주나 기록을 보면, 각 활을 선호하는 이들도 둥근 활만큼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음색 적으로 둥근 활이 각 활에 비해 좀 더 다채롭다는 점, 반면에 각 활이 둥근 활에 비해 보다 탄력적이며 테크닉의 실현이 용이하다는 차이점은 있다.

▲ Voirin

활에 대한 기호

이름 난 악기와 마찬가지로 뚜르뜨나 페카트 같은 유명 활 역시 억대에 이르는 가격을 형성하고 있고, 그러한 유명세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하지만 악기와 활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활이 악기에 비해 보다 ‘주관적’ 이라는 사실이다. 때문에 전혀 이름 없는 제작자의 활을(중국 활을 포함하여) 주로 사용하는 전문 연주자들도 있고, 또 현대에 이르러서는 선호하는 (살아있는) 현대 활의 제작자들이 저마다 다르다. 밸런스나 무게에 대한 기호도 제각각인데 바이올린 활은 활털이 장착되어 있는 상태에서 보통 60에서 62 그램 정도를 일반적인 경우로 취급하나 더 가벼운 활을 선호하는 이도 있고, 심지어 핀커스 주커만의 예에서처럼 더 무거운 비올라 활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예도 찾아볼 수 있다.

▲ 그림 1 Albert Nuernberger

뛰어난 활이긴 하나 프랑스 명품이 아닌 독일의 ‘알버트 뉘른베르거’를 애용했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나 다양한 현대 활을 즐겨 쓰는 작금의 율리아 피셔, 혹은 아주 오랜 기간 독일 드레스덴의 활 제작자, 다니엘 슈미트(Daniel Schmidt)를 애용했던 오스트리아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안 라흘린 등이 이러한 좋은 예다. 하이페츠의 활, 키텔의 전수자를 찾던 후원자가 마침내 벤게로프를 점찍고 그에게 키텔을 물려주었으나, 하이페츠의 활이라는 상징성을 제외한다면 연주상의 불편함을 이유로 몇 년 뒤 활을 돌려준 벤게로프의 일화는 활에 대한 이러한 ‘주관성’을 잘 드러내 주는 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A에게 불편한 활이 B에게는 안성맞춤일 수가 있는 것이 활의 세계다. 활의 무게를 느끼는 오른손, 그리고 저마다 극명히 다른 보잉 테크닉 등으로 나에게 맞는 활은 오직 나 스스로만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 바이올리니스트 김광훈 교수

[김광훈 교수]
독일 뮌헨 국립 음대 디플롬(Diplom) 졸업
독일 마인츠 국립 음대 연주학 박사 졸업
현)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 정단원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겸임 교수
전주 시립 교향악단 객원 악장
월간 스트링 & 보우 및 스트라드 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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