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르씨엘 인스타그램

[미디어파인=유진모의 이슈&피플] 지난 19일 밤 방송된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한 남성듀오 르씨엘(문시온·25, 강지욱·28)은 1974년 발표된 박경희의 ‘저 꽃 속에 찬란한 빛이’를 재해석해 연주했다. 그들이 태어나기 한참 전에 유행된 곡으로 대형 가수 박경희의 엄청난 성량과 가창력을 앞세운 어덜트 컨템포러리 장르다.

르씨엘은 2달 전 미국 록그룹 유럽 스타일에 얼터너티브 록과 가요적 정서에 EDM을 더한 ‘스윗튠’으로 데뷔한 프로젝트 록 밴드다. ‘저 꽃 속에~’와 사뭇 다른 성격의 뮤지션이란 의미다. 그런데 그들은 왜 하필 이 곡을 선택했을까? 그들은 “음악을 공부하다 보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라고 말했다.

갓 데뷔한 신인이지만 그들은 꽤 오랜 기간 음악을 준비했다. 아이돌 그룹의 연습생 생활과는 달리 오직 가창, 연주, 작곡, 프로듀싱 등 음악의 본질적인 내용에만 전념했다. 록 밴드지만 록만 공부한 게 아니라 재즈, 블루스, 퓨전재즈, 컨트리 앤드 웨스턴 등 거의 모든 장르를 섭렵했다.

결국 그들의 결론은 ‘Oldies but Goodies’였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고 ‘묵은 장맛이 진짜’였던 것이다. 그래서 데뷔 즈음엔 가요에 푹 빠져있었고 그때 가요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자연스레 ‘저 꽃 속에~’를 접하곤 당시 뮤지션들의 뛰어난 음악성에 놀라 요즘 세대에게 알리고자 나선 것이다.

그들의 무대는 신인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의 완성도와 밀도를 보여줬다. 문시온은 오로지 잔잔한 피아노의 배킹을 받으며 전반부를 목소리 하나로 이어갔다. 신인답게 가능한 한 기교를 배제한 채 정확한 음정과 발음으로 가사의 의미와 멜로디의 정서를 전달하는 데만 충실했다.

호흡도 안정된 편이었고 뭣보다 연기하는 듯한 감정처리가 단연 돋보였다. 편곡에선 코러스 직전의 절정부를 원곡의 단조에서 장조로 변주해 코러스와 자연스레 맞물리도록 재편한 게 돋보였고, 간간이 일렉트릭 기타의 볼륨 주법으로 판타지의 요소를 가미한 점도 센스가 넘쳤다.

가창만 놓고 본다면 박경희와의 비교는 불가하지만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능력과 풍부한 성량, 맑은 음색, 고음역 등은 칭찬을 받을 만했다. 르씨엘이 Mnet ‘엠카운트다운’을 통해 데뷔한 지난 3월 29일은 고 최진영의 8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르씨엘은 프랑스어로 하늘이고 최진영은 프로젝트 그룹 스카이였다.

‘어둠에 묻혀 흘러간 그 세월의 눈물은’으로 시작되는 ‘저 꽃 속에~’는 ‘행복의 날개여 활짝 펴라’라고 끝난다. 르씨엘은 최진영을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존재와 안타까운 사연은 잘 알고 있다. 스카이를 제작했던 강민 제작 프로듀서에게서 트레이닝을 받을 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로 최진영이 떠난 날 데뷔한 걸 알게 된 그들은 최진영의 음악과 열정을 떠나보내지 말고 그대로 이으라는 계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꽃 속에~’를 통해 고인이 차안에선 그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을 만큼 아팠지만 피안의 세계에선 찬란한 빛이 되라고 명복을 기원하는 의미다.

르씨엘은 아직 데뷔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아이돌 그룹과는 달리 ‘느리게 걷기’를 고집한다. 1~2달 반짝 활동하고 신곡의 성패를 금세 가늠한 뒤 다음 레퍼토리를 고민하거나 아님 해체하는 아이돌 그룹과 달리 신곡 공개와 기성곡의 재해석 무대를 꾸준하게 대중에게 보여주려는 계획이다.

그들은 지나온 긴 시간의 연습과 공부가 언젠가는 반드시 대중과 소통하고 그들을 감동시킬 것이라 믿는다. 그 이유는 그들은 누구보다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걸 사랑하고, 어렵다고는 생각했지만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대중 역시 좋은 음악에 담긴 진정성은 귀신같이 알아본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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