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이슈&피플] 코스닥 상장 연예 기획사 판타지오의 1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마이너스 11억 7455만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더 큰 적자 폭을 보였다. 판타지오는 (사)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이하 연매협)로부터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상 불법영업의 지적을 받았으며 일부 소속 연예인과의 전속계약 관련 분쟁 중이다.

연매협은 지난달 말부터 이달 8일까지 3회에 걸쳐 판타지오에 대중문화예술기획업의 합법적 이행 및 업체 운영에 대해 묻고 자료를 요청했으나 아무런 회신이 없었고, 이 회사가 자격 미달 업체임을 한국콘텐츠진흥원으로부터 확인, 불법 행태에 강경한 조치를 취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회원사 자격 박탈도 수순.

또 판타지오 소속 배우 강한나, 최윤라, 강해림, 임현성 등이 연매협 산하 상벌조정윤리위원회에 전속계약 해지에 대한 조정을 신청함으로써 이를 검토해 내규에 따라 신속한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내부 방침이다. 사태가 커지자 판타지오는 지난 15일 이에 대한 해명의 공식 입장을 내놨다.

요지는 ‘해당 법안의 자격 요건을 갖춘 임원의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인해, 자격 요건을 갖춘 신규 임원을 선출하는 과정이고, 상장회사라는 특수성상 주주총회 소집에 필수적인 시간이 소요돼 현재까지 임원 등록 변경을 진행하지 못했을 뿐’ 의도된 불법행위가 아니라는 것.

또 ‘관할 행정부처 및 유관 기관과 지속적인 협의를 진행해왔으며, 최근 행정부처 및 법률전문가에 유권해석을 의뢰한 결과 해당 법에 따른 등록요건을 갖추고 적법하게 운영됐으나 이사 사임에 따른 변경등록이 지연됐을 뿐이므로 불법영업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일반 기업은 기술력이나 제품의 퀄리티만 갖추면 사람이 바뀌어도 조직의 힘, 즉 시스템으로 원만하게 돌아간다. 하지만 연예 기획사는 아무리 몸집이 커지고 경영이 안정돼도 소속 스타가 떠나면 풍선에 불과하다. 매번 계약기간이 끝날 때마다 재계약에 공들여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연예계 사람들 및 소속 연예인과의 관계가 좋고, 그만큼 관리를 잘해주며, 신인을 발굴해 스타로 키울 수 있는 충분한 실력을 갖춘 매니저가 경영의 최우선이다. 나병준 대표가 국내 자본으로 출범시켰던 판타지오는 2016년 홍콩 및 중국 등에 4개의 상장사를 가진 글로벌 투자그룹 JC에 인수됐다.

JC 워이지에 대표는 나 대표에게 경영을 일임하고 투자와 중국 영업만 지원한다고 약속했는데 1년여 만인 지난해 말 나 대표 및 임직원 다수를 사임케 해 반발을 샀다. 많은 직원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원상복귀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파업을 예고하는 등 내부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이다.

최근 일련의 잡음의 결정적인 이유다. 연매협, 판타지오, 전속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배우들 등의 의견이 모두 옳다는 전제하에 이번 사태를 분석해보면 포인트는 ‘법’보다 ‘돈’이다. 연매협은 회원의 ‘권리장전’이 최고의 목표다. 회원 및 회원사와 그 소속 연예인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주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나 대표 등 타의적 사임자들은 처지를 연매협에 호소했을 것이고, 연매협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판타지오 대주주 및 새 경영진의 불법영업 여부를 조사하고, 협회 차원에서 취할 수 있는 합당한 제재를 가함으로써 ‘피해자’들에게 최대한의 성의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게 정체성이다.

JC 측은 큰돈을 들여 회사를 인수했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큰 이익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나 대표 등 기존 임직원들의 능력을 의심하고, 그들이 능력에 비해 많은 돈을 쓰고 과한 임금을 가져간다며 아까운 생각을 할 수 있다. 이에 회사의 정상화를 위해 극단의 조치를 취했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건 한국의 연예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패착이었음은 현재의 후폭풍이 바로 증명한다. 우리 연예계는 미국과 일본 스타일의 중간 지점에 있다. 미국은 스타 한 명이 회사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모든 시스템이 스타 위주로 움직이는 데 반해 일본은 스타도 월급쟁이일 정도로 회사 시스템이 철저하다.

우리는 미국, 일본과 비교해 한국적 정서가 차별성이다. 매니저의 인간관계가 매우 중요한 영업 및 경영 전략이다. 가수의 음반 판매에 외국의 실력파 프로듀서가 영향을 끼칠 순 있지만 스타를 관리하고 신인을 발굴, 육성하는 덴 외국의 그 어떤 매니저라도 한국 매니저만큼 실력을 발휘하기 힘든 구조다.

회사의 적자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하거나 임금을 삭감하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충분히 타당하다. 주주총회를 통해 대표이사 등 임직원의 급여와 법인카드 사용액이 지나치게 많다는 걸 지적하고 삭감하거나, 불필요한 인원을 정리하는 건 전체 임직원 및 연예인을 위해 바람직할 수도 있다.

하지만 JC 측이 행여 1~2년 만에 한국 연예계를 충분히 파악했고, 직접 경영해도 매우 승산이 있다는 확신이 들어 내린 결정이라면 그건 다른 사업의 성공이 낳은 착각임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듯하다. 어느 나라건 그 민족과 국가 특유의 정서가 있다. 심지어 홍콩조차도 본토와 좀 차이가 난다.

'연예사업'은 '공장사업'과 달라 정서가 매우 중요하다. 연예인이 예술가로 분류되는 이유는 감성, 감각, 감정, 이념 등 정서가 유별나기 때문이다. 대중이 그런 그들의 특질을 살린 감수성에 감동을 느낌으로써 시장이 돌아가는 것이다. 매니저는 그 양측에 개입하는 ‘요람을 흔드는 손’이다.

혹여 수백, 수천 년 동안 쌓인 정서적 교류를 돈의 논리로만 규정짓고 다스릴 수 있다는 '기업정신'만 앞선다면 그건 패착으로 귀결되는 오류일 것이다. 삼성도 두 손 든 한국 연예계다. 연매협이 매니저들의 합법적인 권리 보호를 위해 앞장서는 건 비영리 사단법인으로서의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