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데드풀 2>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331만여 명을 동원한 영화 ‘데드풀’의 속편 ‘데드풀 2’(데이빗 레이치 감독)는 마블 마니아라면 당연히 반길, 전편에서 다소 아쉬움을 느낀 관객마저도 사로잡을 강력한 모습으로 재편됐다. 시작부터 충격적이고, 반전을 거듭하며, 3편에서 또 반전이 일어날 것을 예고하니 두 눈 크게 뜨고 봐야 한다.

악당을 물리쳐 돈을 벌어 연인 바네사(모레나 바카린)와 깨가 쏟아지는 삶을 사는 웨이드(라이언 레이놀즈)는 특별한 기념일에 일찍 ‘일’을 마치고 귀가해 선물을 교환한다. 바네사의 선물은 피임기구의 해제. 그들은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 꿈에 부푸는데 악당들이 들이닥쳐 쏜 총에 바네사가 죽는다.

더 이상 살아갈 목적도 의욕도 사라진 웨이드는 기름통 위에 누워 불을 붙인 뒤 산산조각이 난다. 그러나 강력한 힐링 팩터 능력을 지닌 그는 콜로서스의 도움으로 정상으로 되돌아온다. 그는 콜로서스의 설득으로 엑스맨 인턴이 돼 현장에 투입된다. 말썽을 부리는 뮤턴트 보육원의 소년 러셀 때문.

양손에서 엄청난 파워의 불을 뿜어내는 러셀은 분노조절장애가 심해 보인다. 웨이드는 간신히 그를 제압하고 보육원 직원은 그의 목에 초능력 억제 목걸이를 두른다. 그런데 웨이드는 그의 목에서 상처를 발견한다. 보육원 원장 및 지도자들이 아이들을 학대하고 있었던 것.

▲ 영화 <데드풀 2> 스틸 이미지

순간적으로 욱하는 마음을 참지 못한 웨이드는 콜로서스가 지켜달라던 살인 금지 규칙을 어기고 지도자를 살해한다. 정부는 러셀은 물론 웨이드에게까지 목걸이를 채운 뒤 뮤턴트 범죄자들의 감옥인 아이스박스에 가둔다. 러셀은 웨이드에게 친구가 돼달라고 간청하지만 웨이드는 그냥 암으로 죽을 생각만 한다.

미래에서 케이블(조슈 브롤린)이 날아온다. 성장한 러셀에게 아내와 딸을 잃은 그는 과거에서 러셀을 죽임으로써 미래를 바꾸려는 것. 아이스박스에 나타난 케이블이 러셀에게 총을 겨누지만 웨이드는 온몸을 던져 그와 함께 건물 밖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그때 목걸이가 벗겨진다.

집으로 돌아온 웨이드는 케이블로부터 러셀을 지켜주기 위해 엑스포스라는 성 평등 히어로 조직을 만들고 멤버를 공개모집한다. 여기에 언제 어디서든 모든 운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끄는 능력을 지닌 여인 도미노(재지 비츠)가 나타나 웨이드를 흡족하게 만든다. 과연 이들의 운명은?

흡사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우주전쟁만 뺀 축소판처럼 시작부터 충격을 주고 반전이 곳곳에 포진돼 자그마한 시퀀스 하나하나가 스포일러일 정도다. 데드풀 자체가 하나의 특허상품처럼 굉장히 유니크하지만 ‘어벤져스’에 익숙한 관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개성 강한 보조 캐릭터들을 포진했다.

▲ 영화 <데드풀 2> 스틸 이미지

‘데드풀’의 변별성은 키치다. 키치의 어원에 대해선 여러 설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비윤리’, ‘짝퉁’, ‘건방짐’, ‘우쭐댐’ 등을 의미한다. 영화는 관객을 속이는 게 기본이다. 작가와 감독이 쓰고 연출한 배우의 환경과 연기가 사실이라고 착각하게끔 만드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 ‘데드풀’은 대놓고 그걸 비웃는다.

마치 코미디 연극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자아비판에 자기학대까지 해가며 관객을 웃기고 말을 건다. 더 나아가 다른 작품, 배급사, 배우까지 조롱한다. 웨이드는 “엄마 이름이 마사인 망토 입은 놈(배트맨, 슈퍼맨)” “너 DC유니버스에서 왔냐? 왜 이렇게 어두워?”라고 말한다.

울버린은 그가 가장 경계하고 질투심을 느껴서 제일 미운 인물이다. 심지어 울버린이 죽었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낸 장난감을 갖고 논다. 똑같은 힐링 팩터 능력을 갖고 있는데 자신은 칼을 써야 하지만 울버린은 와칸다 공화국의 비브라늄에 필적할 아다만티움을 아예 몸에 보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자신은 전신 화상의 환자 같지만 울버린은 외모가 말끔한 데다 늙지도 않는다. 전편보다 더 하드 고어적인데 천연덕스러운 연출력 덕분에 오히려 웃음이 흘러나온다. 키치 자체인 웨이드의 캐릭터 때문이다. 뭐든지 성적인 코드로 인식하고, 질서나 규칙보단 순간의 감정과 느낌이 중요한 그다.

▲ 영화 <데드풀 2> 스틸 이미지

인트로와 아웃트로에서 그는 가족영화임을 강조한다. 맞다. 그가 즐겨 부르는 노래는 영화 ‘옌틀’에 삽입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Papa can you hear me’. 바네사와의 ‘2세 프로젝트’를 위해 분위기를 띄울 때 본 영화이기도 하다. 그는 어릴 때 무정한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트라우마가 심하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아버지가 되고 싶었고, 그게 무산되니 아버지가 그립다. 파괴본능을 제어하지 못해 빌런이 될 가능성이 99%인 러셀을 그토록 지키려 애쓰는 이유는 꿈꿨던 행복한 가정이 산산조각이 난 데 대한 보상심리이자 날아간 삶의 희망의 대안인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 선 웨이드는 바네사가 사는 공간으로 들어가려 애쓰지만 그녀는 받아주지 않고 “마음 둘 곳을 찾아”라고 위로한다. “고통은 역사 교과서”와 “아이는 우릴 과거보다 낫게 해주는 존재”라는 따로 떨어진 대사의 속뜻은 서로 연결된다. 고통을 유머로 승화시키는 연출은 역사의 중요성 때문.

역사는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교훈이다. 미래의 주인공은 아이다. 아이는 부모의 앞날에 희망을 주고, 부모는 아이의 장래를 위해 애쓴다. 그래서 웨이드가 세상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는 것이다. 게다가 살짝 선악의 경계를 묻는 존재론적 철학까지 저변에 까는 영특함이라니! 형보다 나은 아우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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